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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41화 (41/97)

00041 38. 이러니까 꼭 신혼부부 같아. =========================

역시나 내 예상대로 밀가루 체 치기를 능숙하게 해내는 도란이다. 나는 저거부터 막혀서 생일 주인공을 불렀는데…. 아무래도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것 같다. 나처럼 퍽퍽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면.

“응? 네가 하게?”

신기해서 빤히 쳐다봤더니 내가 해보고 싶어서 보는 줄 알았나 보다. 저렇게 말하니까 시도해보고 싶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란이가 하는 걸 눈으로 익혀뒀으니까 비슷하게나마 따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시도… 했는데 또다시 밀가루가 사방에 흩날리며 고공비행을 한다.

“…권이소 씨.”

“…네.”

“너 이거부터 막혀서 나 불렀지.”

“…응.”

잠시 나를 흘겨보던 도란이가 이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웃기냐. 솔직히 나도 좀 웃기다. 한참을 웃은 우리는 서로에게 묻은 밀가루를 대충 털어주고는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다.

도란이는 밀가루 체 치기, 나는 버터랑 우유 녹이기.

도란이가 불조절을 해준 대로 계속해서 저었더니 버터가 우유에 사르르 녹아든다. 오, 신기해. 웬일로 내가 태우지 않고 사진이랑 똑같이 만들었어! 단박에 의기양양해져서는 도란이에게 이것 좀 보라고 자랑했다. 내 결과물을 보더니 도란이가 피식 웃으면서 “잘했네.”라고 말했다.

오예, 칭찬 들었다.

도란이 쪽도 끝난 건지, 밀가루를 카운터 구석에 놓고는 레시피를 보는 도란이다. 뭔가 막히는 게 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이소야, 너희 집 혹시 핸드믹서 있어?”

“그게 뭔데?”

“…없구나? 큰일이네. 우리 집도 없는데.”

“응? 왜? 그거 없으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도란이가 난감해하면서 레시피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머랭을 준비하라고 되어있다. …머랭?

아, 설마 그건가. 거품기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구 저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기계의 힘이 필요하다는…. 요리 프로에서 셰프들이 손으로 머랭을 치다가 애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거 기술이 필요한 거야?”

“글쎄? 찾아보니까 그냥 빠르게 10분 이상 젓기만 하면 된다는데.”

“나도 볼래. 혹시 동영상 있어?”

태블릿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던 도란이가 동영상을 찾아서 열었다. 동영상을 보니 손목 스냅을 이용해 엄청 빠른 속도로 거품기를 휘저어야 하는 것 같다. 다행히 기술보다는 노가다, 힘, 팔 근육이 중요한 것 같네.

“이거 내가 해볼래.”

“응? 이소 네가?”

“너도 알잖아. 권이소 하면 힘, 힘 하면 권이소 인 거. 간만에 실력발휘 좀 해보실까나.”

취직하고부터 운동을 쉰 게 좀 걱정이지만, 기본 피지컬이 어디 가겠어? 뭣보다 생일 주인공한테 힘쓰라고 할 수는 없지. 가볍게 팔 스트레칭을 하고는 비장하게 거품기를 잡았다.

이윽고 도란이가 달걀흰자를 볼에 담아서 내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어깨를 한 번 돌리고는 빠른 속도로 젓기 시작했다. 움직여라, 이두박근, 삼두박근! 동영상보다 빠른 속도로 휘저어서 그런지 도란이가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점점 거품이 생기자 도란이가 손뼉까지 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자극을 받아 더욱 빨리 젓는 나다. 왠지 지금이라면 사육사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재주를 부리는 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중간중간 설탕과 소금을 넣어가며 10분 정도 젓자, 사진과 얼추 비슷한 모양으로 머랭에 뿔이 솟았다.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뒤집어서 흐르지 않으면 성공이라던데. 살짝 긴장하면서 볼을 뒤집자 제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머랭이다. 만세! 첫 시도인데도 성공!

“란아, 이거 된 거 맞지! 응?”

“…와아. 고생했어, 이소야. 너 땀난다. 아무래도 에어컨 다시 틀어야겠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도란이다. 으아, 어떻게 해. 너무 좋아. 이 기세라면 머랭 열 번도 더칠 수 있어. 핸드믹서인지 뭔지 절대 안 사야지.

대부분 도란이가 만들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는데, 큰 공헌을 한 것 같아서 엄청 뿌듯하다. 힘으로 일궈낸 머랭과 준비해둔 재료를 섞으니 그럴듯한 반죽이 완성됐다. 준비해둔 케이크 틀에다가 반죽을 부은 뒤, 미리 예열해둔 오븐에 넣었다.

내심 잘 익을까 불안해서 힐끔힐끔 오븐을 쳐다봤다. 다행히 우리 둘의 첫 작품은 성공적으로 오븐 안에서 부풀고 있다. 요리 같은 거, 한평생 관심 없었는데 이렇게 해보니까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혼자서 했다면 흥미는커녕 신경질만 냈겠지.

옆에서 레시피만 뚫어지라 보고 있는 도란이를 쳐다봤다. 저렇게 골똘히 궁리하는 모습도 마냥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솔직히 숨 쉬는 것도, 눈 깜빡거리는 것도, 아니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엄청 사랑스럽지만.

…누가 보면 진짜 팔불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좋은 걸 어쩌겠어. 저 남자, 철저히 제 취향이라서 그럽니다. 존중해주시죠?

“케이크 만드는 거 은근히 손 많이 가네. 아직도 한참 남았어.”

“진짜? …반 이상은 한 줄 알았는데.”

“보니까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은데?”

도란이가 가리킨 곳을 보니 …맙소사. 아직 남은 게 여태 한 것보다 많잖아. 아까 했던 말 급 수정. 혼자 만들었다면, 온종일이 아니라 내년을 기약했을 거다, 분명.

“감사합니다, 도란 님. 저를 케이크 지옥에서 구제해주셔서.”

“아하하! 케이크 지옥이라니 그게 뭐야. 그나저나 내 생일케이크는 왜 만들려고 한 거야?”

“그냥 그… 해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특별한 걸 해주고 싶었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고백이나 매한가지잖아!

…응? 할 걸 그랬나? 나 방금 고백하기 딱 좋은 절호의 기회를 발로 뻥 차버린 건가? 아니, 하지만 도란이 생일날 차이고 싶진 않단 말이야. 차이면 그야말로 영구 흑역사 박제 감이라고.

“별일이네. 요리 같은 거에 관심 없었으면서.”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관심 없던 것도 해볼 수 있는 거지. …왜, 싫어? 불만이야?”

“아니, 좋아. 맛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뭘 두고 봐야 알아. 분명 맛있을 거거든?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와, 권 셰프 님. 자신감이 넘치는데?”

자신감이라기보다는 각오에 가깝거든요.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어서 너한테 먹여주고 싶으니까.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하는 걸로도 행복한데, 현실이 되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만들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떻게든 실현하고 싶다고.

속으로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는 레시피를 살펴봤다. 시트 만드는 건 끝났고, 이제 케이크 무스 만들 차례구나. 내가 레시피를 보고 있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재료를 준비하는 도란이다. 요리하기 쉽도록 재료들을 계량해 그릇에 담는 모습이 꼭 참한 새색시 같다.

나는 그럼 주방에서 요리하는 아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새신랑인가? 엄청 오그라드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오글거려도 좋은 걸 어떻게 해. 새색시·새신랑 거리니까 꼭 신혼부부 같잖아.

응? 신혼부부?

…순간 온몸의 열이 얼굴로 확 옮겨진 느낌이 들었다. 볼을 만지니 진짜로 화끈거린다. 도란이 체온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 분명 내 얼굴, 옆에 있는 딸기보다 새빨개졌겠지. 도란이가 보기 전에 찬물에 세수라도 하고 와야겠다.

“이소야, 이거 생크림도 휘핑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어? 응? 내, 내가 할게. 세수하고 올 테니까 그동안 준비해줄래?”

“응, 알았어.”

다행히 도란이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욕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식혔다. 아직도 좀 빨간 것 같네. 언젠가는 이렇게 기 쓰면서 숨기지 않아도 될 날이 오려나. 도란이랑 신혼부부 같다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행복해할 수 있는 날.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

“이소야, 준비 끝났어.”

“알았어, 갈게.”

아직 좀 빨갛긴 하지만, 열심히 휘저으면 힘쓴다고 빨개진 줄 알겠지. 아까보다 더 열심히 저어야겠다. 그러니 분발하렴, 내 팔 근육들아.

한 번 해봤다고 처음 했을 때보다 요령이 생긴 것 같다. 아까보다 힘을 덜 들였는데도 금세 생크림에 뿔이 솟아오른 걸 보면. 이러다가 나, 휘핑 계의 달인이 되는 거 아닐까.

완성된 생크림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데, 도란이가 요거트가 담긴 볼을 들고 내 쪽으로 왔다.

“금방 했네? 고생했어. 제누와즈 오븐에서 꺼낼 동안 이 요거트랑 생크림 좀 섞어줄래?”

“응, 이것도 막 저어?”

“아니, 이건 살살 부탁해.”

“오케이.”

살살이라고 하니까 왜 머랭 치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그냥 생크림이랑 섞이도록 조심스레 섞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최대한 신중을 기하면서 살살 섞고 있는데,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오븐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식힘 망에 예쁘게 잘 구워진 제누와즈가 올려져 있다. 와, 대박. 저 정도면 완전 성공한 거 같은데. 도란이도 제누와즈를 보면서 흡족한지 미소 짓고 있다.

“란아, 그거 다 됐으면 이것 좀 확인하러 와주라. 대충 섞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알았어.”

도란이가 주방장갑을 벗고 손을 씻은 뒤, 내 쪽으로 왔다. 무스가 담긴 볼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이리저리 휘저어보는 도란이다. 꼭 숙제검사 맡는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긴장된다. 나름대로 정성 들여 섞은 건데도 왜 이렇게 간이 쫄리지.

얼추 완성된 건지 도란이가 스푼에 묻어있는 무스를 새끼손가락으로 덜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에 묻은 무스를 음미하듯 천천히 핥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섹시해서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진다.

아, 저 새끼손가락이 되고 싶… 안 돼. 음란마귀야 참아. 대낮이라고. 아직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와, 이거 생각보다 엄청 맛있는데.”

“헐, 진짜? 맛있어?”

다행히 맛있나 보다. 오히려 기대 이상인지 도란이 눈이 커졌다. 도란이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긋 웃었다.

“응. 아직 안 먹어봤어?”

“…혹시나 맛없을까 봐 건들지를 못했거든.”

“…내가 무슨 기미 상궁이냐.”

“응, 일일 기미 상궁. 나도 먹어볼래, 먹여줘.”

한숨을 쉬면서도 손가락으로 무스를 덜어 내 쪽으로 다가오는 도란이다. 잔뜩 기대하면서 입을 벌리자, 도란이가 짓궂게 웃더니 내 코에 무스를 발랐다.

“야! 뭐야! 먹여줄 것처럼 굴더니. 나 방금 세수했다고!”

“아하하! 혀가 코끝에 닿으면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씨, 죽었어, 도란.”

“아? 이쏘 누님, 항복, 항복! 딱 정량만 해서 이 이상 장난쳤다가는 부족할 거라고!”

응, 안 들려. 무스가 담긴 볼을 들고는 도란이에게 다가갔다. 계속해서 항복 선언을 하는 도란이를 가뿐히 무시한 채, 도란이 양 볼에 무스를 정성스레 발라줬다.

“햐, 입체적인 핑크 볼 터치네. 그거 최신형 화장품이라, 볼에 혀가 닿으면 먹을 수도 있는 볼 터치다?”

“…되로 줬더니 가마니로 받아 치냐.”

한숨을 쉬더니 자기 볼에 묻은 무스를 닦고는 내 쪽으로 다가오는 도란이다. 결국, 우리는 케이크는 잠시 뒷전으로 둔 채, 한동안 요거트 무스 묻히기로 실랑이를 벌였다.

============================ 작품 후기 ============================

시눙님// 이렇게 좋아하시면 강도를 더 올려버리고 싶어지잖아요 *-_-*

soae님// (모니터를 두드리며) 도란아? 왜 나오질 못해? ㅠㅠㅠㅠㅠ

샤냥꾼님// 헉, 샤냥꾼님. 진정하세요! 릴랙스!

마카로나주님// 란이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갔다면 (검열삭제) 새 역사ㄱ.....

sn님// 저도 얘네가 절대 부럽지 않아요!! 절대 부러워서 느낌표가 나온거 아님!!

빗자루계인님// ㅋㅋㅋㅋㅋㅋㅋㅋ 로판으로 장르를 바꿔야 하나요?!

일주일 풀로 연재해서 그런가. 평소처럼 이틀만에 온 건데,

왜 이렇게 연재를 미룬 것 같은 느낌이 들죠. ;ㅅ;

오늘도 재밌게 봐 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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