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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40화 (40/97)

00040 외전2. 스킨십 적응훈련 =========================

도란이가 집에 오는 걸 기다리면서 이렇게 떨렸던 적이 있었나. 나름대로 거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럴 걸 대비해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손발이 벌벌 떨린다. 긴장하지 마, 권이소! 릴랙스, 심호흡.

으아아아, 릴랙스는 개뿔! 떨려서 죽을 것 같아. 토깽아. 엄마한테 힘을 줘, 빨리!

소파에 누워있던 토깽이를 꼭 끌어안으니까 조금 안정되는 것 같다. 토깽이 정수리에 얼굴을 파묻고서 마음을 가다듬는데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왔다. 품속에 있는 토깽이를 소파에 도로 눕히고는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 토깽이 눈 감아.

“이쏘, 나 왔어.”

“왔어? …여기 앉아봐.”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가리킨 자리에 앉는 도란이다. 미치겠다. 평소에는 마주 보는 것 정도는 괜찮았는데, 왜 오늘은 이것도 떨리고 난리야. 청심환이 아니라 흥분제를 먹었나.

“근데 집에는 왜 오라고 한 거야?”

“그… 일단 란아, 손.”

손을 내밀자 도란이가 곧바로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올린다. 강아지냐고! 귀여워죽겠네! 머리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도란이 손을 조심스레 만졌다. 기다란 손가락도 한 번씩 쓸어보고, 손가락만 잡아도 봤다.

손가락만 만지는데도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드러운 감촉이 살짝살짝 스치니까 오히려 이게 더 괴롭다. 그래, 과감하게 가자! 눈을 꼭 감고서는 깍지를 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견딜만한 거 같아. 천천히 눈을 뜨는데 도란이 목소리가 들린다.

“뭐해?”

“살기 위한 적응훈련.”

도란이를 쳐다봤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너는 아무렇지가 않겠지만, 나한테는 이것도 엄청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서 그렇단다.

…좋아, 이제 연습게임은 끝났고, 실전이다.

“란.”

“응?”

“내 손 가지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봐.”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자 아까보다 더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란이다.

“…하고 싶은 거라니, 뭐?”

“그냥 만지든, 지지고 볶든 너 알아서 해보라고.”

도란이는 잠시 볼을 긁적이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손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아, 미치겠다. 왜 이게 더 긴장되지. 지켜보지만 말고 차라리 뭐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내 텔레파시가 전해졌는지 도란이가 내 손에 자기 손을 맞댔다.

“내가 너보다 한 마디 정도 더 크네.”

“…그러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유독 손가락이 길고 예쁜 도란이다. 쭉 곱다고만 생각했지, 손 크기에서 남자라고 느낄 줄은 몰랐는데. 당연한 사실인데도 자각했더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상황에서 얼굴까지 새빨개지면 회생 불가다. 어떻게든 침착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필사적으로 명상에 잠겼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 1절을 끝내고 애국가 2절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도란이 손이 내 손목으로 옮겨갔다.

뭐하려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아직 진정이 되지 않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시금 명상에 잠기려는데 손바닥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느껴진다. 손바닥을 살포시 간질이는 숨결도 함께.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말캉하면서 도톰하고, 피부보다 따뜻한 무언가가 손바닥 끝에서 느껴진다는 것.

황급히 고개를 들었더니 내 손을 자기 얼굴에 대고 있는 도란이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손바닥 끝부분이 도란이의 입술과 맞닿아있다. …살려줘.

“뭐하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네 손 차가워서 이러고 있으니까 시원해서 좋은데.”

아니! 내가 맘대로 하라고 한 건 맞는데… 란이 얘는 왜 항상 내 예상범위를 초월하는 걸까. 이러니까 내 심장이 버티겠냐고! 아, 몰라. …됐으니까 다음.

도란이 볼을 감싸고 있던 손을 빼낸 후, 묵묵히 도란이만 바라봤다. 두 번째, 시선 마주하기. 이 정도는 참을 수 있긴 하지만, 종종 참지 못할 변수가 생길 때가 있다.

“대체 아까부터 뭐하는 거야.”

도란이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말없이 자기만 빤히 바라보자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는 도란이다. 머리를 헤집으며 한숨을 쉬던 도란이는 이내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아까부터 뭐해. 권이소.”

…네가 이렇게 기습하길 기다렸다.

내가 참지 못하는 변수 첫 번째. 이렇게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할 때.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심장이 아주 폭풍 비트박스를 한다. 지금도 죽, 죽겠… 아니, 그래도 각오했더니 평소보다는 좀 버틸 만한데?

“란아.”

“…왜.”

“웃어봐.”

“갑자기?”

난감해하면서도 웃으라는 내 말에 노력은 하는 도란이다. 하지만,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는 표정은 억지웃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네가 웃는 걸 좋아해도 그런 억지웃음엔 하나도 설레지 않거든요.

평소엔 잘 웃으면서 막상 웃으라니까 못하겠나 보네. 쪽팔리지만 서포트해야지. 양손으로 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셀프 얼굴 개그를 시전하자 그제야 빵 터진 도란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란이가 웃는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응, 이건 절대 못 버티겠다. 불가항력.

더 보면 심장에 해로울 것 같아서 그대로 도란이를 끌어안았다. 그랬더니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가 멎어 들었다. 엄청 아쉽긴 하지만, 내 심장의 안위를 위해 내구도를 비축해둬야 해.

이렇게 내가 끌어안는 건 괜찮은데, 이상하게 란이가 안는 건 심장이 아플 정도로 벌렁거린다. 대부분 기습 공격이라서 그런가. 그렇다면 각오를 한 상태에서 란이가 나를 끌어안으면 괜찮으려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일단은 안고 있던 걸 풀고는 도란이와 조금 떨어지면서 말했다.

“란아, 나한테 안겨.”

“엥?”

“안겨, 빨리.”

내가 양팔을 뻗으며 재촉하자, 도리어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뒷걸음질 치는 도란이다.

“야! 안기라니까 왜 멀어져!”

“그러니까 아까부터 대체 왜 그러냐니까?”

“안기면 말해줄게.”

“…알았어.”

한숨을 쉬면서도 순순히 안기는 도란이다. 진짜 가설이 맞나보네, 그럭저럭 견딜 만해.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도란이 팔이 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싼다. 이거구나! 급격하게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원인이! …죽, 죽겠 …헬프, 헬프 미!

“이제 됐어?”

망할 2연타! 귓가에 대고 한숨 쉬면서 말하지 말라고! 가뜩이나 고통스러운데! 아아, 온몸에 힘이 빠진다. 리타이어, 항복.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란이에게서 떨어졌다.

나는 이렇게 심장 떨려 죽을 것 같은데, 도란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다. 그 모습에 어쩐지 열이 받는다. 진짜 나만 좋아하고, 나만 신경 쓰는 것 같잖아. 친구로만 여기고 있다는 걸 확인사살 당하는 것 같다.

나는 너한테 이성으로는 요만큼도 자극을 주지 못 하는 거냐? 도란.

“안겼으니까 아까부터 왜 이러는지 설명 좀 해봐.”

“도란.”

“왜.”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표정 변화가 전혀 없이 “뭐가.”라고 되묻는 도란이다. 이런 거에 둔감한 건지, 아니면 나는 여자로도 안 보이는 건지. 면역력 기르자고 시도했다가 괜히 속만 상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랑 안거나, 손잡거나 하면 심장이 뛴다거나!”

“심장은 늘 뛰는데.”

…하아, 단언하는데 지금 내뱉는 한숨은 지구 내핵까지 뚫고도 남았다. 야, 이 답답… 성질을 내면서 따지려고 했다가 꾹 참았다. 이 주제로 말 섞었다가, 진짜 날 이성 취급도 안 하는 걸 깨닫게 되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좋아. 네가 나한테 감흥을 느끼지 못하면, 느낄 수준까지 스킨십을 시도해주마. 괜한 오기가 발동한 나는 도란이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한쪽 손은 도란이 어깨에 고정한 채, 반대쪽 손을 도란이의 가슴에 갖다 댔다. 그런 나를 눈을 반쯤 내리깐 채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도란이다. 그 시선에서 묘하게 농염한 색기가 느껴진다.

…미치겠다. 저 눈빛에 도리어 내가 포기할 것 같아.

근데 이대로 멈추면 진짜 지는 것 같잖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천천히 도란이의 가슴팍을 쓸어 올린 뒤, 양팔을 목에 감았다. 원래는 이 정도로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다.

그 모습에 화가 나서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맞댔다. 까딱하다가는 입술이 닿을 위태로운 거리. 처음으로 나를 올곧게 바라보던 도란이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권이소.”

“…왜.”

“저쪽에 바퀴벌레 기어 다니는데.”

…미, 미, 미친. 바, 바, 뭐? 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고선 도란이에게 매달리다시피 안겼다. 으아아아, 미친. 대체 어디서 기어 나온 거야! 더우니까 별것이 다 튀어나오네! 으아아악, 한 마리가 발견되면 집 안에 바퀴벌레 수천 마리가 거주 중이라던 카더라가 있는데!

“…숨, 숨 막혀.”

“아아아아악! 어디야, 어딘데! 잡아, 빨리 잡아줘!”

“뻥인데.”

“…뭐?”

“뻥이라고.”

도란이 목을 감고 있던 팔심을 스르르 풀자 콜록거리며 기침하는 도란이다. 그 모습에 살짝 미안하긴 했지만, 열 받은 게 더 크다. 내가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는 거 알면서 그딴 뻥을 쳐?

“야! 십년감수 했잖아! 죽을래? 진짜 장난칠 게 없어서….”

“너도 방금 장난쳤잖아.”

…오기로 그런 거긴 하지만, 장난으로 한 건 아니었거든. 나는 필사적으로 시도한 거였는데, 너한테는 고작 장난처럼 여겨졌어? 아, 진짜 짜증 나고 서러워서 울 거 같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를 드는데 도란이가 한숨을 쉬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저기, 이소야.”

“뭐.”

“우리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보고 지낸 소꿉친구기는 한데, 그… 일단은 나도 남자거든. 그러니까 그런 장난은 좀 자제해주라.”

도란이가 천천히 내뱉는 말에 금방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이 뚝 멈췄다. …얘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순간 환청인가 싶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그런 장난 자제해달라고.”

“그 말 하기 전에!”

“…일단은 나도 남자라고.”

도란이의 한숨이 내 어깨를 간질인다. 그리고 도란이의 말이 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저 말은 곧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긴 한다는 거잖아. …충분히 동요하고 있다는 걸로 봐도 되는 거지? 여태 들이댔던 게 맨땅에 헤딩한 건 아니라는 거지? 나한테 희망이 있다는 거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심장에서부터 북받친다.

내 어깨에 기대고 있는,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남자를 꼭 끌어안았다.

“알았어, 그런 장난 안 할게.”

“…응.”

“대신… 나랑 가족 말고, 다른 여자들한테 절대로 오늘 나랑 했던 것들은 하지 마. 포옹이라든가, 손잡는 거라든가. 아니, 아예 스킨십을 하지 마.”

“애초에 너 말고는 할 상대도 없거든.”

있어도 하지… 아니, 생겨도 상관없어. 나 말고는 아무도 건들지 못하도록 내가 전부 차단할 거니까. 나한테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전보다 더 안 놓아줄 거야.

…내가 평생 널 가져야 되겠으니까.

============================ 작품 후기 ============================

시눙님// 헉, 코멘트를 이렇게나 많이 달아주시다니. 감동 /ㅅ/ 언제나 새로운 독자님과의 만남은 즐겁답니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D

soae님// 엄마가 예비아빠한테 고백 대신 작업거는 중이에요! 토깽이... 눈 감아...

샤냥꾼님// 독자님을 행복하게 하는 글을 쓰고 있다니 /ㅅ/ 저도 엄청 행복해요

저녁에 온다 해놓고 새벽에 왔네요 죄송합니다 ;(

대신 빠방한 분량으로 왔으니 용서해주세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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