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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34화 (34/97)
  • 00034 33. 도란 꼬시기 프로젝트 개시  =========================

    소득보다는 찝찝한 기분만 왕창 가지고서 집에 돌아왔다. 멍하니 있으니 자꾸만 우울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어서, 정신을 차리려고 얼음 동동 띄운 냉수를 들이켰다. 얼음까지 와드득 소리를 내며 씹어 먹으니 우울한 게 좀 가시는 것 같다.

    진정하자, 권이소. 이미 지나간 과거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한 거니까.

    열이 좀 받긴 하지만, 도란이가 좋아했다던 그 여자의 정보를 참고하기로 했다. 도란이와 잘 맞는 부분이 있던 사람이라는 거. 내가 도란이와 어느 정도로 잘 맞는 부분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잘 맞는 부분이 생기도록 상대에게 맞춰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발상을 역전시켜서 내가 도란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이해하도록 하자.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 내가 도란이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거다.

    도란이가 자식 같은 아이라고 주장하며 10년 넘게 애지중지하고 있는 존재이자, 도란이의 방 책상 한쪽에 놓인 인형 집에 인형 옷을 걸친 채, 고이 자리 잡고 있는 반질반질한 하얀 돌멩이.

    풀네임 ‘북한마운틴 도 마리안느 2세’

    대체 돌멩이를 애지중지하는 심리가 뭔지 알아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근데 돌 키우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다?

    아예 전문적으로 애완용 돌멩이만 판매하기도 한다는 걸 보고 그야말로 기겁했다. 다른 애완생물과 달리, 깨지지 않는 이상은 죽지도 않고, 자꾸 보다 보면 정이 간다는 이유로 키우는 듯하다. …뭐, 좀 특이하긴 해도 개인의 개성이니 존중해줘야 하는 거겠지. 남한테 폐 끼치는 것도 아니고.

    돌이면서 집도 있고, 방석도 있고 별것이 다 있네. 그러고 보니 십자수로 방석도 만들지 않나? 이참에 십자수로 마리안느 전용 방석을 만들어 선물해볼까. 조신함도 어필하고, 호감도도 쌓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

    크, 이런 생각을 하다니. 권이소, 내가 생각해도 넌 정말 천재야.

    근처에 십자수 가게가 있나 뒤져보니 다행히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 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퇴근하자마자 들려서 사야지.

    ***

    생각보다 십자수 용품 종류가 많아서 마리안느 크기에 맞는 방석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방석이라기보다는 납작한 쿠션에 가깝긴 하지만. 넌지시 널 좋아하고 있다는 어필을 하기 위해 화려한 하트 도안으로 골랐다. …솔직히 이걸 보고 란이가 눈치챌 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안 든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십자수 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지만, 집에 와서 하려니 가게에서 배웠던 것처럼 되지 않아 인터넷을 찾아봤다. 하지만, 동영상이건 사진이건, 강의를 계속 봐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그냥 감으로 열심히 하는 중이다.

    조금 더 완성하고 나서 약속을 잡는 게 어떨까 고민하긴 했지만, 내 더딘 진행속도를 보건데 아무래도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려면 한참은 먼 것 같다. 그때까지 도란이를 보지 못하면 상사병으로 말라죽어 버릴 것 같아서 그냥 이번 주 일요일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 별다른 일정이 없었는지 흔쾌히 수락하는 도란이다.

    아, 미치겠네. 설레서 잠이 안 올 거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약속을 좀 늦게 잡을 걸 그랬나. 아니, 늦게 잡았다가 도란이한테 선약이 생겨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오히려 잘한 거야. 그나저나 옷은 뭘 입지, 슬슬 날도 더우니 여름옷 꺼내놓기도 할 겸, 옷장 한 번 뒤져볼까.

    결국, 아닌 밤중에 옷장 정리를 하고 깨달은 결론. 옷은 많은데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왜 눈에 보이는 여름옷은 수두룩한데, 입고 나갈만한 옷은 없는 것 같지? 여러 가지 옷을 매치해보며 새벽까지 실랑이했지만, 영 맘에 드는 게 없다. 잠시 갈등했지만, 이내 컴퓨터를 켜고 쇼핑몰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살면서 남자랑 데이트한다고 새 옷을 구매했던 적은 없는데. 도란이한테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 한다 싶으면서도 장바구니에 옷을 채워 넣는 나다.

    주말까지 설레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바람에 내심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약속 당일이 되니 피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전날 도착한 새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는 집 근처 번화가 광장. 주말인 데다 가뜩이나 번화가라 그런지 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여기서 도란이를 어떻게 찾나. 벤치에 앉아있다는 말에 벤치 쪽을 집중적으로 찾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하얀 스냅백이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도란이라는 확신이 든다. 태블릿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게 보이니까. 그나저나 쟤 핑크색 맨투맨 입었어. 읔, 미치겠다. 뒷모습도 저렇게 귀여운데 정면을 마주하면 심정지 오는 거 아닐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천천히 앞쪽으로 다가가는데, 새카만 선글라스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다. …젠장. 높은 곳인 줄 알고 바짝 긴장했더니, 다리만 쭉 뻗으면 바닥에 닿을 수 있는 곳인 걸 눈치챘을 때보다 더 허무하다.

    툴툴거리며 선글라스를 내렸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꼭 감는 도란이다.

    “으으응, 다시 끼워줘.”

    애교 섞인 칭얼거림에 선글라스를 원위치로 복구하고는 그대로 도란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만나자마자 이성을 잃을 뻔했다. 미치겠다! 갑자기 그런 식으로 칭얼대지 말라고! 귀여워서 돌아가시겠네! 참아라, 권이소. 필사적으로 딴생각을 해! 평정을 유지하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 후, 최대한 도란이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태연한 척 물었다.

    “뜬금없이 선글라스는 왜 끼고 있는 거야?”

    “오랜만에 해 떴을 때 밖에 나왔더니 눈이 시려서.”

    “왜? 글이라도 썼어?”

    “아니, 혁이랑 같이 시작한 게임 때문에.”

    …얼씨구? 게임 때문에 야행성 인간이 되셨어요? 어쩐지 요새 혁이랑 부쩍 붙어 있더라.

    내가 자기 양 볼을 붙잡고 째려보자, 잔소리 들을 걸 직감했는지 헤헤거리며 무마하려고 시동을 거는 도란이다. 웃는 게 귀엽다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그런데 왜 일전에 TV에서 봤던, 자식이 귀여워서 뭐든지 용서된다고 말씀하던 아주머니가 떠오르는 거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밤낮 바꿔가며 게임을 하셨겠다?”

    “…아니, 밤낮 바뀐 게 아니라 그냥 게임을 낮에만 했을 뿐인데. 낮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렉이 덜 걸리니까.”

    “믿어도 돼?”

    “네, 믿어도 됩니다. 편집자님. …글을 안 쓰고 논 건 인정하지만.”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글이라는 게 자기가 쓰고 싶다고 떡하니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기에 잔소리는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다. 밤낮 바뀐 게 아니면 됐지, 뭐. 도란이 얼굴을 붙잡고 있는 손을 내려놓으려는데 갑자기 내 손목을 꽉 쥐는 도란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린다. 가뜩이나 네 앞에 서 있는 걸로도 심장 떨려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이런 건 예고 좀 하고 해줄래? 내 간이 쪼그라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란이는 내 손목을 잡고는 유심히 보느라 여념이 없다.

    “…역시. 얼굴 보고 혹시나 했는데, 이소 너 살 빠진 것 같다. 요새 바쁘다더니 밥은 잘 챙겨 먹은 거야?”

    “어? …뭐, 대강 먹기는 했는데, 너무 바쁘게 이리저리 후다닥 돌아다니다 보니 빠진 건가?”

    널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 때문에 한동안 삽질하느라 끼니를 걸렀다고 절대 말 못 하지. 어설프게나마 즉흥적으로 둘러댔다. 슬금슬금 도란이 눈치를 살피니 다행히 둘러댄 게 먹힌 모양이다.

    그나저나 살 좀 빠진 것 가지고 걱정하지 말라고. 괜히 사람 설레게끔 하고 있어.

    “아무래도 너 뭐 좀 먹여야겠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사줄게.”

    “…어, 글쎄.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게 없어서. 으음, 초밥?”

    “초밥? 그럼 전에 먹었던 데 갈까? 너 전에 거기 괜찮다고 했었잖아. …근데 이 시간에 영업하려나.”

    “전에 갔던…? 아아, 생각났다. 사거리 근처에 조그만 초밥집. 저번에 갔을 때도 이맘때쯤이었으니까 아마 영업할 거 같은데.”

    “응, 그럼 일단 가보자. 아직 오픈 안 했으면, 다른 데 돌아다니다가 영업시간 맞춰서 들어가면 되니까.”

    도란이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가방 안에 넣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나는 도란이가 일어나자마자 도란이의 손을 잡았다. 어쩌다 도란이와 손을 잡은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도란이 쪽에서 먼저 잡았지, 내가 먼저 잡은 건 어릴 적 이후로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도란이도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내 손을 꽉 잡는다.

    …따뜻하다. 아기처럼 체온이 높은 도란이라서 그런지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기분 좋으면서도 온몸이 간질간질해지는 온기가 손끝을 타고 내 온몸을 감싼다.

    부디 내 사소한 행동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알아채 주길. 아직 드러내지 못하는 내 마음이 서로가 나누는 체온을 타고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한 걸음, 두 걸음 발맞춰 걸을 때마다, 이루어지길 바라며 간절한 바람을 담는 나다.

    ============================ 작품 후기 ============================

    샤냥꾼님// 정말 화요일에 왔습니다 :D 아아, 이제 두팔벌려 환영받기 위해 수요일 연재분을 준비해야 해....

    빗자루계인님// 이소만 나와서 아쉬워하시는 것 같길래 핑크색으로 단장한 도란이를..! (하지만 후반부에만 나왔다고 한다)

    3분컵라면님// 란이가 좋아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언제쯤이면 나오겠죠? (두근두근)

    soae님// 그쵸/ㅅ/ 저돌적인 매력, 멋짐이 뿜뿜하는 이소입니다. 물론, 란이도 귀엽습니다. 그긋드 으즈므니...*

    여러분들이 이렇게 환영하시면... 자주 오고 싶어지잖아요 /ㅅ/.. 아이 참, 수요일에 올리려 했는데 (츤츤)

    다음 연재는 수요일입니다! 오늘은 마왕의 남자 비축분 만들려고 했는데..

    여기서 격일 연재했다간 독자님들이 힘들어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고생을 사서하기로 한 작가였어요 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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