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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3화 (3/97)
  • 00003 3. 연애를 가르쳐주세요. =========================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목이 탔는지, 부엌에서 냉수를 떠와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성준이가 해명을 늘어놓았다.

    해명인즉슨, 자신은 그저 실전처럼 연애코치를 받고 싶다는 말에 응했을 뿐이고, 본인이 여장하고 해야 하는 건지는 정말로 몰랐다는 것. 그리고 도란이 녀석의 계획을 알게 되고 결사반대를 했으나, 뇌물의 유혹에 이끌려 눈 딱 감고 저질러버렸다는 거였다.

    결국, 하기로 한 건 맞잖아, 미친놈아.

    내 표정이 점점 썩어가자 성준이가 뇌물이 너무 치명적이었을 뿐이었다며, 법정 최후변론하듯 절박하게 호소했다. 그 말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대체 그 뇌물이 뭐냐며 물어보았다.

    “30만 원.”

    “….”

    30만 원이면 괜찮은 장사 같기도 하고, 성별의 존엄성을 팔아치우기에 애매한 금액 같기도 하고. 내가 똥 씹은 얼굴로 진지하게 고민을 했더니, 아직 탐탁지 않아 하는 줄 아는지 30만 원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웅변하는 성준이였다.

    “야, 30만 원이 얼마나 장난 아닌 액수인데. 그거만 있으면 음반을 20장 가까이 사고! 콘서트도 첫콘, 중콘, 막콘 다 갈 수 있는 금액이거든?”

    성준이가 침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내게는 하나도 공감이 가질 않았다. 그저 이런 생각이 들 뿐이다.

    저 답도 없는 빠돌이 새끼.

    하지만 괜히 건드려봤자 “콘서트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라면서 스마트폰 갤러리에 있는 아이돌 사진들을 보여주며, 몇 시간 동안 아이돌 자랑을 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런 뻘짓을 할 바에 차라리 소개팅을 시켜주지그래?”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개고생 아니겠냐? 저건 연애에 한해서는 머리가 완전 텅텅 빈 놈이라고.”

    하긴 아까 그 펭귄 어쩌고를 회심의 멘트라고 날린 걸 보면 말 다했지…. 아직도 그 멘트를 날리면서 의기양양했던 도란이 녀석의 표정이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잊히지가 않는다.

    저 상태로 소개팅을 한다면,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인 여성분께는 엄청난 결례다. 여차하면 소개해준 사람한테도 불똥이 튀겠지. 나였어도 저런 놈이 소개팅 상대로 나왔다면, 주선자 멱살을 잡고 한동안 연락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을 거다.

    “그래서 일단 30만 원은 쳐드셨고, 도저히 네가 감당 못 하겠으니까 나한테 폭탄을 넘기시겠다?”

    “응, 데헷.”

    “데헷은 무슨. 미친놈아! 죽어라, 진짜!”

    옛말에 미친놈은 매가 약이랬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네 발로 집까지 기어갈 정도로만 맞아라.

    나는 소파 위에 놓인 쿠션으로 성준이를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두들겨 팼다. 그 모습을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던 도란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쟨 또 뭐하는 거래?

    “사부!”

    “…뭐?”

    “제게 연애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 쟤 지금 뭐라는 거냐?

    나는 도란이의 말에 얼이 빠져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도 하는 것처럼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그걸 놓치지 않은 성준이는 내 손에서 쿠션을 슬쩍 빼내고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성준이를 보고 성질을 내야 하는데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도란이는 무술 영화에 나오는 고수에게 무술을 배우려는 제자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수업료는 지급할 테니까 제발 나 연애 좀 가르쳐 줘!”

    “…미친. 나보고도 실전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해달라는 건 아니지?”

    “어…. 어렸을 때 자주했던 소꿉놀이 확장판 정도로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지 않을까?”

    그 말은 곧 나한테도 실전 연애코치니 뭐니 하며 시키겠다 이거네, 지금.

    어이가 없음과 동시에 연애와 소꿉장난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멍청한 발상에 이 녀석이 정말 심각한 연애 고자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나였다.

    아니, 연애 고자가 아니라 정상인의 사고 범주를 벗어난 걸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잠시, 나는 이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미친 짓에 가담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애초에 생각을 하지 말자, 응.

    난 나 자신의 현명함에 감탄하며 도란이에게 단호하게 엄포를 놓았다.

    “난 저 심각한 빠돌이처럼 30만 원에 그딴 미친 짓 할 만큼 멍청하지 않거든?”

    “아니, 30만 원 말고 다른 걸로 딜을 할 생각인데.”

    좋은 패를 들고 있는 타짜처럼 눈을 반짝 빛내며 말하는 도란이 녀석. 의심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모습에 경계심이 싹틈과 동시에, 호기심도 같이 피어올랐다.

    28년 동안 함께 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저 자식이 저런 표정을 지을 경우, 페이스에 말려들 확률이 90% 이상이다. 하지만 바보도 아니고서야 그딴 미친 제안에 응할 리가.

    나는 이번에야말로 녀석의 승률을 8할대로 떨어트릴 기회라고 여기며 녀석이 들고 있는 패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뭔데?”

    “만일 네가 도와줘서 로맨스 소설을 쓴다면, 그 소설 수익의 절반을 평생 너한테 줄게.”

    …오, 신이시여.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나는 저절로 벌려지는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도란이 녀석만 빤히 쳐다봤다. 도란이는 자신의 패가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라고… 넘어가지 않겠다고 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는 이미 돈방석에 올라앉아 있는 내 모습이 자꾸만 상상이 됐다.

    그도 그럴게, 녀석이 난생처음으로 로맨스를 시도하는 거긴 하지만, 필력 하나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데다, 나름대로 인기도 있는 작가이니 못해도 중박은 칠 확률이 높다.

    게다가 평소 녀석이 생활하는 걸 보면 벌이가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오늘처럼 이상한 헛짓거리에 아무 거리낌 없이 돈을 쓴다던가, 방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피규어와 프라모델을 사둔다거나, 히어로를 모으는 게 꿈이라며, 첫 수익으로 1000만 원 가격의 거미맨 1:1사이즈 등신대 피규어를 사 핑크리본으로 장식해둔 걸 생각하면 꽤 여유롭다는 소리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전자계산기보다 빠르게 계산해나가기 시작했다. 인세에, 계약금에 저작권료. 만약에 녀석 말대로 드라마화까지 된다면 판권까지.

    만일 진짜 잘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다달이 꾸준히 들어오는 연금 복권!

    아까까지만 해도 녀석의 페이스에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나였지만, 안정된 수익이 들어올 절호의 기회라면 절대로 놓칠 수가 없다.

    “콜, 내 친히 너의 스승이 되어주도록 하지!”

    “앗싸! 진짜지? 무르기 없기다? 야, 성준아 계약서 가져와, 계약서.”

    도란이 말에 30만 원에 친구와 영혼을 팔아버린 성준이가 내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A4용지를 들고 나왔다. 속전속결로 진행하려는 두 미친놈의 모습에 살며시 후회가 싹트긴 했지만, 조금만 고생하면 평생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데 그걸 놓칠 수야 없지.

    그리고 며칠 뒤의 내가, 돈 때문에 미친놈한테 가담한 일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지옥행 익스프레스 계약서를 작성하고야 말았다.

    ============================ 작품 후기 ============================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은 마왕의 남자와 달리 분량을 좀 적게 하는 대신 자주 올리는 방향으로 가볼까 해요 :D

    오늘도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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