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라이 연애 시뮬레이션-1화 (1/97)
  • 00001 1. 이웃집 또라이 =========================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어느 조직이든 사람이 몰려 있다면 반드시 일정 수의 또라이가 존재하고, 만일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어? 또라이가 없는데?" 라고 생각한다면 또라이는 바로 자신이라는 무시무시한 법칙.

    나는 이 법칙을 상당히 신뢰하지만, 나 자신이 또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정신 나간 또라이가 내 옆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붙어있으니까.

    그것도 한평생을.

    부모님들께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친밀하셨다. 그도 그럴게 바로 옆집이고, 부모님들의 나잇대도 비슷하다. 게다가 서로 공감대가 맞는 부분이 많아 자주 왕래를 하다 보니 친구 같은 관계가 되셨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아주머니 품에 안겨서 온 그 녀석과 마주했다. 왜냐고? 나는 녀석보다 반년 늦게 태어났고, 우리 엄마는 녀석 집에서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진통이 왔기 때문이다.

    차가 밀려 늦게 도착한 우리 아빠보다 그 녀석이 나를 먼저 봤다. 종종 부모님들끼리 모여 그 주제로 얘기를 나눌 때, 이전 같으면 따라 웃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네버 아니다. 그게 지긋지긋한 인연의 시작이라는 소리였으니까.

    나는 우리가 설마하니, 이 정도까지 붙어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동창. 그나마 여중, 남중을 지원해 학교가 달랐던 중학생 시절은 학교 건물이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등교도 같이, 하교도 같이. 운동장에서 마주치는 일도 잦아서 학교가 다른 게 아니라 반만 다른 느낌이었다.

    뭐, 그래도 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집도 바로 옆집인 데다 동네가 좁아서 학교 수가 적었으니까.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까지! 각자 집에서 독립했음에도! 옆에 붙어있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직장도, 직업도 다르다.

    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고, 녀석은 꼭 저를 똑 닮은, 해괴한 것만 써대는 대도 그럭저럭 인지도 있는 괴기소설 작가. 문학계에서 일한다는 건 같았지만, 출판사는 많고, 우리 출판사에서 주로 출판하는 장르가 아니기에 마주칠 일이 없다고 여겼건만!

    망할 회식 자리에서 녀석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게 탄로 나는 바람에 편집장님이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도록 녀석을 꼬시셨고, 녀석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멍청한 얼굴로 "넹!"이라고 단번에 대답했다.

    그리고… 빌어먹게도 녀석이 우리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렸다.

    물론 기쁜 일인 건 맞지만, 문제는 베스트셀러가 되자 반은 모험으로 제안했던 편집장님의 신뢰도가 100%가 되었다는 거다. 게다가 신뢰만큼의 퀄리티를 계속 보여준 탓에, 지금 녀석은 우리 출판사에서 3번째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녀석의 담당 편집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다.

    친한 사이라 출판사의 의견을 말하기도 편하고, 휴일마다 어느 정도까지 썼는지 확인하는 게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지긋지긋한 얼굴 보기 싫어서 짜증이 나는데! 하지만 이런 의견을 편집장님께 말하기엔 '돈'이라는 자신감이 부족했다.

    망할 자본주의.

    설상가상으로 첫 번째 책 출간이 끝나고, 두 번째 책 출간을 준비했을 때, 녀석이 본가에 놀러 와 이렇게 말했다.

    "일일이 너희 집 찾아가서 원고 보여주기 귀찮은데, 이참에 너희 집 근처로 이사 갈까?"

    물론 내 반응은 "오지 마, 꺼져." 였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의 의견은 달랐다.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우리 부모님은 쌍수를 들며 녀석이 내 자취방 근처로 이사하는 걸 찬성했다.

    "그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여자애 혼자서 사는 게 좀 걸렸는데, 란이 네가 근처에 살아주면 우리가 안심이지!"

    "엄마! 저 새… 아니, 저 자식이 뭐가 도움이 된다고! 오히려 내가 지켜줘야 할 것 같거든?"

    거기서 내가 깨달은 건 나는 우리 집에서 서열이 가장 낮고, 엄마는 여전히 건재하시다는 거였다. 결국, 부모님께 융단폭격 급으로 시달린 나는 항복을 선언했고, 녀석이 내 바로 위층으로 이사 오는 걸 허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지긋지긋하게도 군대에 간 2년 반을 제외하고, 내 옆에 딱 달라 붙어있는 녀석의 이름은 도란. 처음에는 이름이 독특하고 예쁘다 여겼지만, 지금은 이름 때문에 애가 미쳐버린 건가 싶을 정도로 또라이스러운 이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지겨워 죽겠는데, 꿀 같은 주말에도 내 얼굴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녀석은 오늘도 우리 집에 쳐들어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아, 참고로 글을 쓰는 중이긴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 자기가 덕질 중인 카페에서 댓글 다는 데 한창이다.

    “야, 일하러 온 거 아니면 내 집에서 꺼져!”

    “아, 알았어. 누나, 한 시간 연장이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이미는 도란이 녀석. 나는 그걸 낚아채듯이 빼앗아 녀석의 이마에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붙였다. 녀석이 작업할 때마다 착용하는 하얀색 뿔테안경 위에, 걸쳐진 천 원짜리는 이마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녀석은 그게 또 뭐가 좋다고 킬킬대며 “오, 꼭 강시 같아.”란다. 이제는 아예 폰을 들고선 별 또라이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셀카 삼매경에 빠져있다. 븅신.

    “미친 짓 작작하고 네 집으로 꺼지라고. 휴일인데 나도 좀 쉬자!”

    “싫어, 싫어. 혼자는 싫어, 심심해. 심심해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내가 죽으면 우리 마리안느는 누가 키워주지? 흑흑. 불쌍한 마리안느. 아빠가 여태껏 널 돌봐줄 엄마를 만들지 못해 미안해!”

    참고로 저 녀석이 말하는 마리안느는 살아있는 동물도, 식물도 아닌 반들반들하게 생긴 돌멩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놀러 갔던 계곡에서 그물로 낚시하다가 얼떨결에 득템한 돌멩이.

    여름방학 때, 친한 반 친구들끼리 모여 당일치기로 근처 계곡에 갔었다. 남자애들은 물고기를 한 번 잡아보겠다고 그물을 챙겨와 낚시에 한창 빠져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낚시에 열중했던 나머지, 도란이 녀석의 바지 주머니에서 산 지 일주일 된 최신 휴대폰이 퐁당 소리를 내며 물로 수직 낙하했고, 이 미친놈은 그걸 주울 생각은 안 하고 멍청한 얼굴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답답했던 내가 그쪽으로 가서 폰을 주웠고, 도란이 녀석에게 폰을 건넸다. 그런데도 녀석은 폰을 본체만체하더니 별안간 폰이 떨어진 자리에 있던 돌을 주워들었다.

    계곡에서 흔히 보이는 돌과는 달리 반질반질하고, 동글한 하얀 돌멩이였다. 녀석은 그 돌멩이를 잠시 쳐다보더니 제 품 안에 꼭 끌어안으며 행복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

    “찾았어, 내 마리안느 2세.”

    “뭐? 마리안느? 미친놈아, 언제는 이 폰보고 마리안느라며.”

    그렇다. 사실 돌멩이의 풀네임은 북한마운틴 도 마리안느 2세. 참고로 마리안느 1세는 이미 물에 절어 제 기능을 상실한, 신형 휴대폰이다. 언제는 휴대폰 보고 마리안느라는 의미 모를 유치찬란한 이름을 붙여서 애지중지하던 주제에 웬 돌멩이를 주워들고선 마리안느라고 꼴값을 떨어대니 나로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이가 반쯤 가출한 상태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이 인간이 나랑 같은 세상에 사는 인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영문 모를 논리를 시전 했다.

    “그거 작동돼?”

    “아니. 물에 그렇게 오래 빠져있었는데 될 리가 있냐?”

    “그렇다는 건 마리안느, 아니 마리안느 1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거잖아. 하지만 마리안느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장소에서 발견한 이 마리안느 2세! 마치 마리안느 1세의 혼을 계승한 듯한 화이트 컬러! 다른 돌들과 차원이 다른 동글한 디자인! 분명 마리안느 1세가 나를 위해 남기고 간 선물인 게 틀림없어!”

    “…이 미친놈아.”

    “그리고 고장 난 휴대폰을 장식장에 두고 애지중지 여기는 것보다 예쁜 돌멩이를 애지중지 여기는 게 뭔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활용하는 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을까?”

    “…너 폰을 장식장에 두고 애지중지 여기고 있었냐.”

    “어쩐지 방학 때 전화를 안 받더라.”

    다른 애들도 이미 녀석의 4차원 또라이 기질에 익숙해진 건지 ‘쟤라면 그럴 만하지.’ 라는 얼굴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심지어 저 미친 의견에 동조하는 준(準)또라이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들은 몰라도 아저씨만큼은 정상인이었다는 거다.

    사준지 일주일 만에 골로 간 휴대폰을 허탈하게 바라보시던 아저씨에게 녀석은 마리안느 2세를 보여주며 계곡에서의 논리를 곧이곧대로 설명했다. 물론 결과는 등짝 강스파이크.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새 폰은 없다고 못 박아두신 아저씨는 이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돌멩이를 애지중지하고 싶으면 침대도 만들어주고, 집도 주고, 옷도 입히고 해라! 이 자식아!”

    …그 말만은 하지 마셨어야 했는데. 아저씨가 그 말을 듣고서 깨달았다는 듯, 얼굴에 화색이 돌던 또라이 아들자식을 눈치채셨어야 했는데!

    다른 건 죽어도 아저씨 말을 안 듣는 주제에 그것만 어찌 그렇게 지금까지도 잘 듣는지. 녀석의 방 책상에 놓인 수제로 만든 인형 집에는, 수제로 만든 공주 옷을 걸친 마리안느 2세가, 마찬가지로 수제로 만든 침대 위에 고이 누워있다.

    진짜 또라이 새끼.

    또라이는 천재 아니면 바보라더니. 저 자식은 천재 쪽인지 어떤 일이든 손만 댔다 하면 평균 이상은 해낸다. 인형 집도, 옷도, 침대도 전부 도란이 녀석이 만들었다. 처음엔 어설픈 아마추어 솜씨더니 이제는 가히 수준급이다. 기분 나빠.

    “심심해서 디졌다면 진즉 디졌겠지. 아, 진짜 걸리적거리지 말고 네 집으로 꺼져.”

    “싫엉. 성준이도 여기로 온다고 했단 말이야.”

    성준이는 나도 잘 아는 애다. 우리랑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니까. 지금이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정상인 범주에 들어섰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학창시절에는 얘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였다. 아니, 그보다 얘들은 지들끼리 놀면 되지, 왜 내 집에서 만나기로 정한 건데?

    “내 집이 동창 모임 장소냐? 아, 네 집에서 만나라고!”

    “칠리새우 사줄게.”

    “…칠리새우?”

    “크림새우랑 세트로, 콜?”

    ***

    그렇다. 나는 고작 5만원에 귀중한 휴일을 팔아치운 한심한 식충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새우는 언제나 옳은걸! 내가 괴로운 얼굴로 새우를 입안에 집어넣는 게 그리 웃긴지 도란이가 히히거리며 웃었다. 모임 장소 생겨서 좋냐?

    그러고 보니 이 맛있는, 빨간색과 하얀색이 쌍으로 영롱하게 침샘을 자극하고 있는 새우의 향연을 눈앞에 두고도, 도란이 녀석은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 나만큼이나 새우에 환장하는 주제에.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죄책감이라도 느껴 먹지 않는 건가 싶어 하나를 건넸더니 고개를 저었다.

    “난 됐어, 그거 뇌물이니까. 너 혼자 먹어.”

    “뭔 뇌물, 모임 장소로 집 빌려주는 거? 됐으니까 먹어.”

    내가 기껏 호의를 베풀어주었건만, 녀석은 “아니, 그거 말고.”라고 일축했다.

    아니, 집 빌려주는 거 말고 뭐 있는데…. 설마, 이번 작품 못 쓰겠다고 편집장님께 말해달라고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요새 통 글을 쓰지 않고 있는데.

    아, 젠장. 순간적으로 식욕이 뚝 떨어졌다.

    그런 말을 했다간 난 편집장님께 들들 볶일 게 뻔하고, 계약 문제로 엄청 번거로워질 것도 뻔하고, 준비하던 것도 말짱 도루묵.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안 돼.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와 함께 반 협박 조로 안 된다고 못 박았더니 녀석이 그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다. 나는 제 뿔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데 필요한 일이야, 좀 도와줘.”

    “작품 구상? 편집자 입장에서 도와줄 수 있다면 당연히 최대한으로 도와줘야지.”

    크림새우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 집 크림새우 진짜 맛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게 먹어본 것 중에 베스트. 왠지 공짜로 얻어먹으니까 몇 배로 맛있는 것 같아. 물론 업무의 일환과 관련된 뇌물이긴 하지만.

    “있잖아, 다음 작품은 색다른 장르를 써보고 싶거든?”

    “올, 줄곧 기이한 소설만 써대던 네가? 무슨?”

    “로맨스.”

    풋! 아, 순간 먹던 새우를 장외홈런 날릴 뻔했다. 기껏해야 그나마 스타일이 비슷한 추리 쪽이겠거니 했는데 뭐요? 로맨스?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얘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하긴 늘 제정신 아니긴 하구나.

    아니, 뭐. 물론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건 좋은 거긴 한데 문제는 저 녀석이….

    “태어나서 연애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놈이 무슨 로맨스를 쓴다고.”

    그렇다. 도란, 저 녀석은 28년 동안 단 한 번도 애인을 사귀어본 적이 없는, 내일모레면 대 마법사이자 솔로 부대 원수 계급을 달 수 있는 모태솔로다.

    인간적으로 연애를 해본 사람이 로맨스를 쓸 수 있지 않나? 아니, 물론 로맨스 소설도 일종의 판타지라고 하지만, 그래도 기초적인 밑바탕이 있어야 뭐가 완성되는 거 아니냐고. 도란이 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쏘 네 말대로 연애 관련 책부터 순정만화까지 줄줄이 쌓아놓고 읽어봤는데 경험조차 없으니까 전혀 못 쓰겠어. 그래서 말인데.”

    “뭐, 설마 여자 소개…”

    “나랑 연애할래?”

    도란이 녀석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자마자 아까까진 잘 버티고 있던 새우가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분명 맛있던 크림새우가 조금 전까지 내 입안에서 뛰어놀고 있었는데도 입에선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놀라서 미각신경까지 굳어버린 듯했다.

    로맨스 소설 쓰고 싶다고 연애를 하자니….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또라이 아냐, 이거?

    ============================ 작품 후기 ============================

    전개가 긴 소설을 쓰다가, 문득 가볍고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쓰고싶어 쓰게 된 소설입니다. :D 잘 부탁드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