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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확실하게-105화 (105/106)

105화

회의장은 웅성대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요 한 달 동안 긴급하게 회의장으로 모인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놈의 예언과 아도피트 때문에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본래 황태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저들끼리 그날의 안건으로 나올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했지만, 오늘은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서 황태자와 황자가 황궁을 비웠다. 아무리 승산밖에 없는 전쟁이라 하더라도 후계자들이 전부 전쟁터에 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그 시기에 이렐린의 아이, 아스릴에게 변고가 생기고 만 것이다.

그녀는 단순한 귀족 영애가 아니었다. 이렐린의 사랑을 듬뿍 받아 축복이라 불리는 능력을 두 가지나 가지고 있었으며, 신뿐 아니라 황태자의 사랑까지 받는 예비 황태자비였다.

그녀가 독을 먹고 쓰러졌다는 이야기는 황실에서 알리지 않아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바람에 그것을 숨길 수도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누가 독을 썼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돌았지만, 누구든 나서서 누구일 것이다 하면서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귀족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여느 때처럼 황후가 자리를 잡고 나자 황태자가 들어왔다.

한껏 어두워진 얼굴에는 웃음기는커녕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건드리면 폭발하여 터져 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레나드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이번에 출정한 이유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마저 평소보다 몇 배는 서늘하고 위압적이었다. 평소였다면 누구든 나서서 그의 말에 대답해 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 위압에 눌려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한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가 강가에 주둔해 둔 군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내 군대의 수가 부족하다며 병력을 보충하겠다던 나의 아우가 있었지.”

레나드의 말투에는 숨기지 않은 적의가 가득 넘쳐났다.

“사실 아스릴의 예언에는 밝히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이번 전쟁이 아도피트에서 단순히 영역 확장을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그 뒤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본래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읊어 주도록 부탁하고자 했는데…… 아스릴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게 되었군.”

분노마저 갈무리한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음산하게 퍼지는 가운데 그의 시선이 황후에게로 향했다. 가소롭게 지친 척 앉아 있는 그녀를 보던 레나드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들여라.”

크지도 않은 그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리자 문이 열리고 바깥에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기사 둘과 그 사이에 팔짱으로 억압된 채 들어오는 이는 로나르드였다.

“로나르드!”

지쳐서 딛는 걸음마저 휘청이는 그의 모습에 황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 그에게로 달려오려는 걸음을 한쪽 기사가 팔을 들어 막았다.

기사들은 그렇게 끌고 들어온 로나르드를 회의장 한가운데에 가서야 뿌리쳐 내려놓았다. 험하게 다뤄지는 황자를 보고 모두들 숨이 넘어갈 듯이 놀라 다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숨겨진 내용 중 하나가 내 아이를 노리는 이들에 의해 동쪽의 파도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거였다. 처음엔 아스릴을 방치하며 키운 그녀의 부모를 의미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지.”

문제는 그다음 이어진 다른 예언이었다.

“장벽을 무너뜨리는 허술한 끈은 서쪽에서 날아온 활에 단번에 끊어지고 말리라. 활의 주인은 아그로드의 정통을 잇고 있는 자이다. 이어지는 예언은 더 어려운 내용이었다.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워서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때마침 로나르드가 출정을 한다지 않겠나. 그 덕분에 ‘내 아이를 노리는 이들’의 범위가 딱 정해져 버리고 말았지.”

회의장의 귀족들은 전부 숨을 멈춰 버리고 말았다.

“로나르드, 그대를 반역의 죄를 물어 직위를 박탈한다. 황제 폐하께서 심각한 병환에 누워 계시고 그를 대신하여 아그로드를 이끌어 가고 있는 내가 적국을 몰아내기 위해 주둔시킨 군대를 공격한 혐의를 가지고 있다. 적국인 아도피트의 싸움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도륙 내는 그것은, 나의 군대를 훼손하고 나에게 덤비기 위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는 그들의 상식선에서 월등히 어긋나는 일이었다. 애초에 로나르드는 레나드의 군대를 섬멸하고 황궁으로 돌아와 스스로가 황태자가 되려 했던 것이다.

“그,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증거가!”

이제껏 무슨 일이 터져도 얌전하게 입 다물고 앉아 있던 황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지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나드는 꿈쩍하기는커녕 그녀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자, 기사여. 그대가 말해 보아라.”

“저는…… 로나르드 황자 저하께서 이끄는 제2 부대에 속해 있던 사람입니다. 애초에 성을 나서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기사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떠나는 길은 어딘지 모르게 살벌했습니다.”

누군가를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하려 가는 길, 그것이었다.

“그때 분명 로나르드 황자 저하가 외치셨습니다. 아그로드의 모든 것을 싹 쓸어 담아 자신의 것이 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인원들이 들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싸우는 데에 사기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씩씩한 대답에 남은 것은 경악에 찬 얼굴들이었다.

“몇 명이고 더 들여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군. 이로써 로나르드는 반역자임이 증명되었다.”

“전하! 그럴 리가, 반역이라니……!”

“조용!”

클로이가 또 반박하고 나서려 하는데, 레나드의 일갈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의 포효하는 소리가 회의장 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너무도 놀라 눈과 입이 떡하니 벌어져 버린 그녀에게로 기사들이 달려와 그녀 또한 포박했다. 그러고는 아들의 옆에 내팽개치듯이 내려놓았다.

갑자기 자신을 향한 이런 대접에 클로이는 화가 나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아, 아니, 이게 지금……. 하아, 전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레나드의 서슬 퍼런 눈동자가 대번에 그녀에게 향했다. 그동안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야 대부분은 이쪽에서 먼저 간파하고 무마시켜 버렸다. 대항할 이유는 놔두고 조용히 넘어가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해할 사람을 잡았는데도 찝찝함을 숨길 수 없었다. 로나르드를 잡아두었는데도……. 상대가 노리는 것이 나뿐 아니라 아스릴도 함께라는 점을 놓칠 수가 없었지.”

그들의 신은 매우 철저했다. 그 이야기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놓았듯이.

“클로이 황후, 그대를 황태자에 대한 반역과 예비 황태자비의 살인미수로 고발하겠다. 감히 황후의 이름으로 황실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것으로 반역을 꾀했으니 매우 엄중하게 처리를 할 것이다!”

청천벽력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갑자기 살인미수의 혐의를 쓰게 된 클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레나드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나머지는 모두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반역을 꾀했다니, 전하가 무슨 수로 안다는 겁니까! 그것이 어떻게 저의 탓입니까!”

황후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질리게 하는 모습에 레나드는 혀를 찼다.

“들라 하라.”

그의 말에 또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오래된 본궁의 시녀장이 하나, 이번에 아스릴을 통해 돌아왔다는 씨씨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작아 보이지 않았던 자그마한 시녀 하나가 따라오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엿새 전 황후께서는 아스릴 아가씨를 부르셨습니다. 씨씨와 저는 그분을 따라 별궁으로 다녀왔고.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다. 일은 다녀와서 어린 하녀들이 준비해 준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녀들을 색출해 내어 실제 독약을 받아 아가씨가 드실 차에 탔다는 아이를 물색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뒤에 있던 아이는 쭈뼛쭈뼛 앞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울먹거리는 눈을 하고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제가 약을 찻잔에 탔습니다. 하지만 그걸 전해 준 이가 제게 좋은 약이라고 했습니다! 저…… 저기 저분이었습니다!”

아이가 주저 없이 황후의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시녀장을 가리켰다.

시녀장은 하마터면 얼굴을 죄다 가리고 내려갔는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며 따질 뻔했다. 황후는 물론 시녀장까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갔다.

“그, 그런, 말도 안 됩니다, 전하!”

“그럼, 내가 나서야 일이 말이 될까요?”

그때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회의장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정문이 아니라 항상 황태자가 드나드는 문에서 들려왔다.

“마, 마,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시녀들은 그쪽을 향해 허리를 숙였으며, 아직 보지 못한 끄트머리의 귀족들은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도 이쪽을 확인하려 들었다.

“저는 그날 별궁으로 떠나기 전, 제게 그 소식을 전하러 왔던 황후 폐하의 시녀장이 제 어린 하녀를 통해 별궁 초대를 전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조심하자 했죠. 별궁에 들러 황후 폐하를 만났을 때가 아닌, 그분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가…… 문제가 될 것임을 예감했어요.”

그곳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아스릴이었다.

독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져서는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를 듯한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그녀가 제 발로 회의장에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에게 독을 먹인 것은 황후입니다. 이전에 황태자께 쓰려 했던 그 독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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