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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확실하게-103화 (103/106)

103화

황후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레나드가 황궁을 떠난 것이 아침이었는데, 오후의 차를 마실 시간이 되자 별궁에서 기별이 온 것이다.

“황후 폐하께서?”

씨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을 보니 리프네가 걱정을 담은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출정 준비를 하는 레나드의 곁에서, 황후가 공격해 올 가능성에 대해 말할 때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충분히 이 부름에 대해 의심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곧 티타임을 가질 예정인데, 전하가 안 계시니 아가씨를 챙기는 건 어른인 자신이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리프네가 아닌 씨씨를 부른 것도 일부러 그런 것일 터였다. 새로 온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 확인하고, 지금 하려는 일을 그대로 진행해도 문제가 안 생길지에 대한 확인.

리프네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닐 테니까.

“안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이것이었을 겁니다.”

리프네는 걱정이 앞서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쪽에서 준비한 자리에 간다는 것은, 마음껏 파 놓은 함정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과도 같았다.

아스릴이 보기에도…… 이건 분명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대단한 것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프네, 황궁에서 어른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큰 실례인가요?”

아스릴의 마음은 벌써 별궁으로 가는 복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눈치챈 리프네만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체했다고 하십시오. 아픈 사람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먹길 강요하지는 못할 겁니다.”

결국 그녀의 질문에 대답해 주면서도 리프네는 가지 말라는 말을 머금은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스릴의 얼굴은 풀어질 줄 몰랐다.

“씨씨, 아가씨를 좀 말려 봐요. 황후는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때 황태자 전하께 먹이려고 했던 그 독약도…… 굉장히 무서운 것이라고 했어요. 심지어 심부름을 시킨 시녀에게 이게 독약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리프네는 아스릴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씨씨를 향해 말했다. 데모트 저택으로 일부러 가서까지 데려왔다는 이 하녀라면 그녀를 말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죠. 기왕이면…… 나를 건드려 주면 좋겠네요.”

아스릴의 굳은 눈동자에서 시린 푸른빛이 스쳤다.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만 보아 왔다는 것을…… 웃음을 잃은 그녀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녀를 미소 짓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레나드였다는 것도.

“내가 그녀를 무시한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없는 궁에서 그녀만이 내 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녀를 돕는 세력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렐린의 아이라며 칭송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분명 날카로운 시선은 있었을 것이다.

레나드가 며칠 만에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황궁 내의 분위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레나드는 일찍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돌아왔을 때 다른 부분은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일을 하길 바라요.”

로나르드를 잡고, 그것을 토대로 클로이가 반역을 저질렀음을 밝힐 것이었다. 그때까지 이곳을 지키는 건, 자신이었다.

* * *

별궁으로 가서 그녀가 안내받은 곳은 2층이 아닌 1층의 응접실이었다. 그 안에서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아스릴을 기다리고 있던 클로이는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그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려다 당황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다 뭐지?”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러 주실 줄 모르고……. 안 그래도 선물로 드리려 두툼한 이불 두 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자수를 놓았거든요. 따뜻하게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레나드가 자신을 좋게 이야기했을 리가 없었을 텐데, 선물이라니…….

시녀 둘이서 낑낑대며 커다란 이불을 들여와 클로이가 앉은 소파 근처에 내려놓았다. 여차하면 눈앞에서 꺼낼 기세이기에 클로이는 손을 슥 들어 보였다.

“내가 나중에 확인해 보겠다. 이런 것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었는데. 고생이 많았어. 바쁜 와중에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지?”

애써 웃음을 머금고 물어보는 말투가 다정했다. 아스릴은 겨우겨우 처세를 변화한 그녀를 바라보며 은은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궁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후 폐하께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잠을 주무셨으면 해서…….”

아스릴은 매우 평온했다. 갑작스럽게 황후가 불러서 온 자리임에도 선물을 챙겨 오고는 매우 동요 없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클로이는 아스릴의 기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되지. 클로이는 맞은편 자리를 권하며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이불 두 채를 들고 오느라 지쳤을 시녀들마저 고요하게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뭐가 이렇게 차분하고 조용한 거야.

괜히 이쪽이 더 긴장되는 분위기에 클로이는 턱을 꽉 물었다.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됐다. 클로이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정말, 이렇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여자 마음을 알아주는 건 여자밖에 없어. 그렇지?”

클로이는 자신의 반말이 깔보는 것이 아니라 친근함의 표현으로 느껴지기를 바라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황녀도 황태자비도 없는 황궁에서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 잘 알아주니 고맙네. 자, 여기 황궁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티를 내와 봤어. 이걸 함께 나눌 사람도 많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꺼낸 거니 한번 마셔 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권했다. 의심하는 눈초리가 보이면, 그것은 레나드가 당부를 하고 나갔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의심을 하고 있다면……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살짝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움직이지도, 떨리지도 않았지만…… 그게 다였다.

호감을 가지고 미소를 짓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얼굴은 자세히 들여다보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귀한 차를 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벌써부터 향이 좋아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아스릴은 그런 묘한 미소를 지은 채 클로이의 시녀가 차를 따라 준 찻잔을 들었다. 눈을 살짝 감고 향을 들이마시는 것을 끝으로 바로 입에 댔다.

홀짝 마시고 조금 더 입꼬리를 올려 웃는 모습은 여느 귀족가의 영애와 비슷해서 클로이의 눈꼬리에 어린 날카로운 기색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아침에 레나드까지 출정했다고 들었어.”

순순하게 나오는 김에 질문을 던져 보았다. 예언을 전달하는 데다가 비로 맞이하겠다는 여인에게 진짜를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하지만 클로이가 장담했던 것과 다르게 아스릴은 질문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예. 아무래도 전쟁이라고는 겪어 본 적 없는 황자 저하의 안위가 걱정되신다고요.”

대외적으로는 동쪽에 나가 있는 3만의 숫자가 불안하다면서 병력 지원에 나선 것이었다. 지난번 3만의 아그로드 제국 군대를 맞아야 했던 아도피트가 그냥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왔을 리 없다면서 말이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딱히 어색하지 않았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가진 그는 보란 듯이 황궁을 나섰다. 그리고 바깥에서 더 많은 수의 군대와 만나 동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형이 아닌가, 그래. 응? 동생을 구하러 전장으로 향하고 말이야.”

클로이는 그녀를 따라 부드럽게 웃었다. 이쪽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를 살피다가,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고 해도 흔들려선 안 되는 때다.

클로이는 괜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레나드 황태자 전하도, 로나르드 저하도요.”

차분한 아스릴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지그시 짓는 미소가 미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클로이는 결국 입꼬리를 내리고 턱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니, 무슨 저런 애가 다 있어?”

아스릴이 물러난 별궁의 응접실에서는 클로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를 죽여 놓으려고 불렀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살살 웃으면서 차분하게 응대하니까 이쪽에서 세게 나가지 못하고 속내부터 살피게 돼 버렸다.

“계획대로 못 하고 속내부터 살핀 건 좋은데, 어쩜 그렇게 표정이 안 변해, 어? 이거 무슨 지가 이렐린도 아니고…….”

왠지 진 느낌이 자꾸 들어서 신경질이 나는 걸 참고 또 참아야 했다.

“뭐? 다 살아서 돌아오면 좋아? 이게 진짜 어디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진짜!”

살살 웃으면서 건네는 말에 확실한 뼈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기색을 살피는 것은 관두고 황실 생활에 대한 겁을 좀 주려고 마음먹었던 차에 그녀가 던진 말이 도화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분명히 뒷이야기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로나르드의 목숨을 가지고 나한테 협박한 거야, 금방. 하아!”

길길이 날뛰는 황후의 옆에서 시녀장은 차분하기 위해 두 손을 꽉 쥐고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건, 보냈어?”

그러다 날카롭게 던져진 질문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예, 예. 전하러 갔을 때 이미 건넸습니다. 금방…… 좋은 소식 들릴 겁니다.”

시녀장의 대답에 클로이는 그제야 거친 숨을 골랐다. 씩씩대던 숨이 가라앉을 때쯤 클로이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매운맛을 좀 봐야 정신들 차리겠지. 하아…… 로나르드도 좋은 소식을 전해 줄 거야. 기다려 보자고.”

겨우 화를 가라앉힌 클로이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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