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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확실하게-45화 (45/106)

45화

“물론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스릴 영애.”

아스릴이 내는 ‘설마’ 하는 소리를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의심이라고 생각했는지 미카엘이 손을 내저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아, 저, 미카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게…… 아, 그렇지. 성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굉장히 대단한 힘이잖아요. 독을 몰아낸다는 것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 그런 힘으로 내가 누굴 살렸는지 아마 너도 알면 깜짝 놀랄걸,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맞아요. 그게 이렐린의 축복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면서도 많지 않은 이유인 것 같아요. 이렐린은 항상 균형을 말씀하시니까.”

미카엘이 짚어 준 것이 정말 딱 명확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유 같았다.

이렐린께서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이을 사람들을 엄선해서 힘을 내려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 것마저 평등하지 못하다 하려면 차라리 이 제국을 아예 계급 없는 사회로 만들어 버려야 하지 않을까.

“뭐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힘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평등할 수 없죠. 어떤 것은 일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 공평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이야기가 귀족 간의 계급 이야기로 빠질 뻔했다가 미카엘의 미소를 보자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라는 말도 되니까, 영애가 했던 말도 틀리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가진 자가 올곧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죠.”

심지어 위대한 힘이고 어마어마한 축복이다, 하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일 또한 없었다. 적합한 사용법의 이면에는 어둠이 존재하게 마련이었으니까.

“오히려 감출 수밖에 없을 정도라면…… 실제로는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라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물론입니다. 악용되면 가장 나쁜 작업들도 종종 있어서 하다가 보면 진짜 힘을 가지고 있는 양 사기를 쳐서 사람들의 금전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이르렀어요.”

“막을 만한 힘이기는 하네요.”

애초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력을 많이 부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력을 쓸 수 있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가 정말 성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속임수를 쓰는 것인지 구분하게 하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스릴은 작은 위기에 봉착했다. 우선은 자신이 쓰는 힘이 진짜 성력인지를 알아봐야 하겠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봐 달라고 하거나 도와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런 힘을 쓴 적이 있었다는 걸 알려 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과연 사기꾼의 누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실제로 확인해 주는 사제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실제 성력을 사용하는 분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제대로 파악해 주시는 것이죠.”

아주 소수의 집단이기도 할 테고.

아직 아스릴은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진짜로……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영애는 수업을 참 열심히 들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스릴이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미카엘이 또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로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아, 여러분들처럼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제가 혹시 방해가 되진 않을까요?”

그가 말한 것은 오늘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는 의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릴은 지금 배우고 싶은 것들은 많았는데, 열심히 자주 들으러 가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있었다.

명예 신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물론 신학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있었다.

이렐린에 대해서 그렇게 알아 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몫이었다.

그렇지만 수업에 들어가다 보면 분명 자신을 불편해하는 존재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었다.

강의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사람 하나로 서서히 미묘한 분위기가 퍼져 나가곤 했다.

그래서 아스릴은 강의에도 잘 따라나서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또 혼자서 책 좀 들여다보겠다면서 다른 곳을 헤매다가 다시 가게 되는 뭐 그런 연속이었다.

오늘 큰맘 먹고 참여했던 수업이었는데 이렇게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수업은 저도 자주 듣고 싶어요. 명예 신녀가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항상 수업이 듣고 싶어요. 저를 신경 쓰는 여러분들에게 해가 될까 봐 자주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미카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한 명의 존재로 인하여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변명하는 건 그냥 끝났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끝났……다는 이야기요?”

“한 명이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집중을 못 하고 못 배우고 방해가 된다 하는 이들은 어차피 그 이상의 배움을 얻지 못한 채 끝이 나는 것이지요.”

그것은……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얌전히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사람 하나 때문에 내가 우려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이미 끝장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녀가 없어도 그는 똑같을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강의 자주 들어가도 되겠네요. 나름 재미있었어요.”

두 사람은 숲 속의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수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 나누었다.

어떤 수업이 재밌는지, 어떤 수업이 따분한지, 어떤 수업에서 교수가 신기한 걸 많이 보여 준다든지.

수업이 그렇게 다양하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활기찬 목소리로 설명하는 미카엘 덕에 매우 다채롭게 느껴졌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와 볼 걸 그랬군.”

따스하고 즐겁고 유유히 흘러가던 대화 중에 불청객 아닌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 아스릴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예를 올렸다. 사람이 누구인지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눈은 더더욱 마주치지 않은 채였다.

“……그래.”

너무나도 깍듯한 인사를 받은 그의 대답은 떨떠름했다. 단단하게 담을 쌓은 그녀는 아직도 그 단단한 담 너머에 있었다.

“오셨습니까, 황태자 전하.”

미카엘은 아스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를 바라보다가 꼭꼭 누른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었다.

레나드는 아스릴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다가 자신에게 인사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았을 땐 분명 아스릴에게 눈을 휘어 가면서 잔망스럽게 웃고 있었는데, 그를 마주할 때면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짙은 적대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바깥에서 볼 때만 해도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아스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그 중간중간 그녀 또한 말을 꺼내고 질문도 하면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매우 이상적인 대화의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에게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셨군요. 황궁이 이토록 평화롭다니 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은 맞는 일인가 봅니다.”

나긋나긋하게 비꼬는 내용을 서슴지 않고 말하는 그녀는 참 알 수 없는 여인이었다.

“황태자 전하. 오늘은 제가 신전을 안내해 드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때 미카엘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서로에게 미묘한 시선과 말을 얽고 있던 레나드와 아스릴이 모두 그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카엘이…… 전하의 안내를요?”

아스릴이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자 레나드는 순간 눈썹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그녀는 제게 꼬박꼬박 예의를 지켰다. 항상 자신을 편하게 대해 달라, 이름을 부르라 할 수는 없어도 그냥 편하게 대해 달라 말하고 또 말했지만, 그녀는 항상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곤 했었다.

저렇게 헤실헤실 실없이 웃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편안히 대하는 것일까. 질투가 샘솟아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차피 저도 지금 수업이 모두 끝이 난 상태인지라 시간이 남아돌고 있거든요. 오늘은 아스릴 영애께서 좀 자유의 시간을 가지시고, 전하의 안내는 제가 맡는 것으로. 어떠십니까?”

미카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면서 레나드를 바라보았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게 자신의 제안이 꽤 맘에 드는 듯했다.

전엔 혼자 다녀도 충분하다는 듯이 말하더니 오늘은 노선을 변경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녀를 제게서 떨어뜨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같은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그가 하는 행동 뒤에 숨은 생각이 어떤 것일지 빤하게 추측할 수 있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아마 자신이 그 행동을 읽고 있다는 것부터…… 그의 계산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저 자신만만한 표정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딱 잘라 거절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그건 어렵겠어요, 미카엘. 명예 신녀의 일로서 부여받은 것이라서. 수업도 잘 안 들어가는데 이거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어요?”

먼저 단호하게 그 말을 거절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아스릴이었다.

“아스릴 영애…….”

당황하는 그를 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아스릴은 고개를 돌려 레나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피하면서도 또 필요할 때는 다른 곳도 아닌 그의 두 눈을 정확하게 응시한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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