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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확실하게-3화 (3/106)

3화

아스릴은 재빠르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키 큰 나무들만 듬성듬성 심어진 이곳에서는 마땅히 숨을 데도 없었다.

결국 아스릴은 수풀 뒤에 최대한 몸을 욱여넣고 숨었다.

그 기척은 규칙적이지 않았으나 결국 사람의 발소리였다. 턱, 터벅, 턱, 터벅 하는 발소리 사이사이로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멀리서 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이는 그는 숨을 몰아쉬며 걸음마다 휘청이고 있었다.

남자였다. 어디 농사를 짓는 사람일까, 그보다는 몰락 귀족일까. 입고 있는 행색이 조금 누추해서 대략 그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있었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건가……. 피는 안 흘리는데.

아스릴은 점차 이쪽으로 가까워지는 남자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도무지 왜 저러는지를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파 보인다는 것.

“아, 그쪽은…….”

남자는 숲에서 바깥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호수로 가려는 것일까. 그것까지는 상관이 없었지만, 숲 너머 호수에는 언니와 하녀들이 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아스릴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수풀에 숨겼던 몸을 일으켰다.

“저, 저기요…….”

용기를 내 그를 불렀지만, 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그저 비틀거리는 걸음을 이을 뿐이었다. 간혹 가슴을 붙들고 괴로워하기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저 남자는 자기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스릴은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다가갔다. 아예 숲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씨씨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 생각이었다.

아스릴은 천천히 그 곁으로 다가갔다. 작은 몸이지만 그의 옆으로 바짝 붙어 휘청이려는 그를 지탱해 주었다.

“으, 으아 무거워…….”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단단한 몸에 아스릴은 그대로 짜부라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는지, 남자의 휘청임이 조금 덜해졌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물.”

역시 호수로 가고 있는 거였어. 아스릴은 그를 붙든 팔에 좀 더 힘을 주며 말을 붙였다.

“여기 숲에서 나가면 호수가 있어요. 거기까지만 가면 돼요……. 조금만 더요.”

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았다. 아니면 어, 하고 대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 제 착각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아스릴은 그를 붙들고 숲을 나섰다.

저 호수 너머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아스테리아가 보였다.

호수도 여기가 시작점이라 반대편이라 해서 호수를 건너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살짝만 둥글게 걸으면 반대편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거리.

서로의 생김새 정도는 파악이 되는 거리였다.

아스테리아가 뭐라 외치는 듯한데 여기서 잘 안 들렸다. 게다가 그의 몸이 버거운 나머지 그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를 서둘러 호숫가로 데려간 아스릴이 그를 내려놓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물…….”

“자, 잠시만요. 움직이지 말아 봐요.”

아스릴은 물을 떠먹일 무언가를 찾아보았지만, 호숫가에 뭔가 적절한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문득 건너편에 있는 씨씨가 떠올랐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스릴은 너무 힘을 주어서 달달 떨리는 손을 감추고 얼른 호수 저편으로 걸어갔다.

아스테리아는 벌써부터 험악한 얼굴로 아스릴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건? 황태자 전하 흔적을 찾으라니까 저런 건 어디서 주워 온 거니!”

제가 원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려 주고 싶은데, 아스릴이 그런 말을 할 새도 없었다. 아스테리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야, 저거 사람은 맞아? 전염병 같은 거 옮는 거 아니야?”

온갖 호들갑을 떨던 아스테리아는 아스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난 이런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는 남자랑 뭐 어쩌라고, 가자!”

아스테리아가 간식이고 책이고 모두 내팽개치고 빠르게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말 그대로 이런 남자를 피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씨씨, 물을 떠먹일 만한 그릇이 필요해요.”

아스릴은 또박또박 침착한 목소리로 씨씨에게 말했다.

이럴 땐 차라리 아스릴이 데모트의 후계가 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어린 하녀가 멀어지는 아스테리아를 보고 기겁해서 자리를 정리하는 사이 씨씨는 아스릴의 부탁대로 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찾아다가 아스릴에게 내밀었다.

마음이 급한 아스릴은 씨씨에게서 그것을 재빨리 건네받았다. 그다음에야 제 손에 꼭 붙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언니를 따라가 줘!”

크게 소리친 아스릴은 다시 그에게로 걸어갔다.

아니, 그보다 먼저 호숫가로 향했다. 손에 든 유리컵에 맑은 호수 물을 가득 담아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무릎 꿇고 앉은 자세 그대로 아스릴에게서 물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마시는 것보다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스릴은 다시 한번 일어나 호숫가로 달려갔다.

“어디가 아픈 거야…….”

어디가 아픈 건질 알아야 뭐라도 해 줄 텐데.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남자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아까보다 훨씬 진정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채 일정한 호흡을 내기 시작했다.

“아파…….”

“에? 예? 아파요?”

중얼거리는 작은 목소리를 잡아챈 아스릴은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아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톡 대었다. 온몸이 뜨거워 열이 올라 있는 탓에 시원한 제 이마에 열기가 전해졌다.

아스릴은 그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려 하다가 맞닿은 이마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맞닿은 맨살이 점점 열기를 더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마로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뭔가 기운 같은 게 흘러 들어오고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드는 것 같았다.

“독에…… 당하셨군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은…….”

아스릴은 말끝을 흐렸다. 이마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기운, 이걸 믿고 움직여 봐도 될까, 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아니, 이대로 두면 이 남자가 죽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다.

“저기, 독이 엄청 빨리 퍼지고 있어서 나름…… 조치를 취해 보려고 해요. 괜찮아요?”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으나 오뚝한 코와 선이 분명한 입술을 가리지는 못했다.

눈을 뜨면 참 잘생긴 얼굴이 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웃는 얼굴을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스릴은 그의 이마에 천천히 제 손바닥을 얹어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워 있는 그는 어딘가가 조이는 듯한 압박을 느끼는지 이따금씩 숨을 멈추는 것 같았다.

자꾸만 마음이 급해지려고 해서 아스릴은 마른침을 삼켜 가며 맞닿아 있는 손과 이마의 감각에 집중했다.

뭔가를 넣어야 하나? 아니야. 이걸 빼내야 하겠지? 아니, 밀어 넣어서 빠져나가게 해야겠다.

실체도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스릴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생각했다. 이 손바닥을 통해 무언가를 막 집어넣어서 이 남자의 몸 안에 있을 독기를 바깥으로 빼내는 상상을 계속했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열기는 그녀의 몸 어딘가를 흐르고 흐르다가 손바닥을 통해서 그의 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떠난 힘이 그의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안에서도 제가 상상한 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면서 계속해서 열기를 넣어 주었다.

“큽……!”

그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움찔거린다 싶더니, 남자가 약하게 기침을 할 기세를 보였다.

이거다. 이 남자는 지금 이걸 토해 내야 하는 거야.

아스릴은 뭔가 깨달은 듯이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 주었다.

뜨끈한 열기가 손을 따라 그에게로 흐르기를 수 분째,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를 느끼며 지치지도 않고 힘을 쏟고 있을 때였다.

“쿨럭! 큭, 하악! 쿨럭쿨럭!”

갑자기 남자가 격하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피는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라 아주 검붉은 색이었다.

독이…… 독이 빠져나왔어!

아스릴은 그를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까 아물었던 입술이 다시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입 아래가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조금 지나자 기침도 멎고 호흡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아스릴은 그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하, 하악. 하아…….”

“괜찮아요? 이제…… 좀 정신이…….”

어, 어라…… 이게 아닌데……. 눈을 뜨는 그를 바라보며 이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눈앞이 점멸하듯 깜빡깜빡하더니만 아스릴의 몸은 그대로 옆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겨우 눈을 뜬 그는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여자의 몸을 팔로 받았다. 자신이 온전히 누워 있는 상태인지라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받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쌔액쌔액 몰아쉬던 숨을 잠깐 멈추자, 미약하게나마 그녀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의 몰골을 확인한 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호숫가는 고요하기 그지없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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