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09화 (109/111)
  • #109

    “난 옳은 일을 한 거겠지?”

    제이스의 시체를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자리에 묻어주고 귀환한 헨리는 울다가 지쳐 탈진해버린 클로에를 궁에 데려다준 뒤에 샐리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스테판 공작가에는 괴물들이 침입한 흔적이 없었으며 사용인들 모두가 무사한 상태였다.

    분명히 모든 일을 해결한 뒤에 후련함만이 남아있어야 하는 상태일 텐데 헨리의 얼굴에서는 착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난 당신의 판단을 믿어요. 설령 그게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일이라도 말이에요. 물론 이번 일에 있어서 당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애초에 공식적인 기록으로도 남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헨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누가 봐도 클로에 때문이었다.

    이제 클로에는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

    두 사람이 보통의 관계가 아니란 것을 샐리와 헨리 두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홀로 남은 클로에가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특히나 슬픔에 탈진까지 해 쓰러진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내일 같이 찾아가요.”

    “내가 가도 괜찮겠소.”

    “당신만이 할 수 있어요. 분명히 클로에도 속으로는 납득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헨리를 다독이면서도 샐리 역시도 속이 그리 편치 않았다.

    “그보다 신전에서는….”

    헨리와 셀바가 자리를 비운 이유는 신전에서 발견된 수상한 고치 때문이라는 것을 샐리도 언질을 받아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두 사람이 제법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고, 샐리는 당연하게도 그 조사 결과에 대해 물으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샐리는 머리가 멍해지며 눈앞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어지러움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샐리?”

    샐리가 쓰러진 자리가 푹신한 침대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헨리는 당혹스러운 손길로 샐리를 흔들어 깨우려고 하던 찰나에 그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백색의 꽃에 손을 멈췄다.

    “이건….”

    기이한 현상에 헨리는 곧바로 샐리가 어째서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헨리?”

    조금 전까지 헨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샐리는 갑작스럽게 뒤바뀐 공간과 사라진 남편의 존재에 여전히 멍해진 머리가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과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 샐리는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이색적인 공간에 떨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야.”

    “부르는 방법이 꽤나 과격하시네요.”

    “하하, 미안. 이번에는 배려가 없었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남편이 걱정할 것 같아서 얼른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불렀다는 걸 그 사람도 알 테니까.”

    이전보다 훨씬 더 또렷해진 이목구비에 샐리의 눈에는 여신의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가 보였다. 인자한 어머니가 떠오르는 따스한 미소에 샐리는 왠지 모르게 가슴 한 편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참고로 오늘은 너만 부른 것도 아니야.”

    “그게 무슨….”

    말하기가 무섭게 샐리의 옆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클로에가 나타났다.

    “샐리?”

    “클로에?”

    “두 사람 모두 이전보다 많이 친해졌던데 다행이야. 그대 둘 덕분에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마족의 잔여병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었어. 거기에 나 여신 카넬로 아스트리아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야.”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샐리와 클로에는 허리를 숙여 본인들에게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는 여신의 모습에 몹시 당황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상대가 여신이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러러볼 고귀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한낱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너무 그렇게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돼. 나는 그대들의 공헌에 마땅한 감사인사를 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명색이 여신씩이나 되는 인물인데 나를 대신해서 그런 막중한 임무를 해낸 자네들에게 말로만 고마움을 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저 고치는 분명히 신전에 있던 것 아닌가요?”

    “맞아, 내가 여기로 가지고 왔어. 저 고치의 정체가 뭔지 알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요.”

    샐리와는 다르게 클로에는 고치가 나타나자마자 방 전체에 퍼져나가는 불쾌한 기운에 영문조차 모른 채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고치가 생겨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 뭐야. 애초에 나를 모신다는 신전이 그렇게 된 것도 그렇고 이번 사태는 내 무능의 원인이 커.”

    여신의 자책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발언에 샐리와 클로에 두 사람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신이라는 존재라 함은 전지전능하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여신이라는 존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원래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이렇게 허물이 없을 줄은 두 사람 모두 몰랐다.

    “이번 일에는 나 역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영민한 너희 둘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과거 마족과의 전쟁에서 나는 대부분의 힘을 써버렸거든. 지금도 그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회복기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제야 샐리는 어째서 신전이 그런 상황에 몰릴 때까지 여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저희한테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요.”

    “하하, 그 부분에 있어서는 너희 둘을 믿었다고밖에 말을 못할 것 같아.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인간들에게 관여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물론 지금보다 사태가 더 위중했다면 바로 나도 관여를 했을 거야.”

    “그 말은 어째 저희가 겪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 같이 들리는데요.”

    “얼추 알고 있었다고만 해둘게.”

    빙긋 웃는 저 미소가 능구렁이처럼 느껴졌다.

    “제 힘에 대해서나 설명해주세요.”

    “아, 그거 역시도 내가 미안하게 생각해.”

    여신은 샐리가 충분히 곤혹스러울만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말에 힘을 실어 사용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달콤한 힘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만, 마족이 그 힘을 막아낼 방도를 알았다는 것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이 샐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구요.”

    “내가 설명을 더 잘해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대에게 마력을 타고나게 한 건 맞아. 그대의 혈통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니까. 다만, 그대의 몸이 구조적으로 강대한 마력을 온전히 다 감당해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은 게 문제였어.”

    그 말은 샐리가 본인의 몸에 내재된 힘만큼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째서죠?”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신이랑 다를 게 없거든. 그대도 그 정도의 파괴력을 원했던 건 아니지?”

    그 말에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기….”

    샐리와 여신의 대화에 끼어들 틈을 보며 눈치를 살피던 클로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둘이나 불러놓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여신의 존재도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봐도 여신이라는 고귀한 존재보다는 평범한 인간에 가까워 보이는 행동에 샐리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봤다.

    “흠, 흠. 이야기를 너무 오래 끌어버렸네. 어쨌든 그대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노고를 치하하기 위함이야. 내가 지금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여신의 권능은 사라지지 않으니 원하는 게 있다면 편하게들 말해.”

    “그게 뭐든 상관없나요?”

    “응, 그대라면 뭐든 상관없어.”

    형체만 이전보다 또렷해졌을 뿐인데도 클로에에게 향한 여신의 시선에서 측은한 감정이 느껴졌다.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실 수 있나요?”

    클로에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소망. 그 소망이 무엇인지는 샐리도 그렇고 여신인 카넬로 아스트리아도 그렇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가능하기는 한데….”

    카넬로는 샐리 쪽을 슬쩍 쳐다보며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괜찮을까요?”

    그래서인지 클로에도 덩달아 샐리 쪽을 쳐다봤고, 샐리는 그런 시선이 곤란했는지 괜히 눈을 피했다.

    “음, 한 가지 조건만 수용해준다면 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샐리는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고, 긍정적으로 도출된 결론에 클로에는 반색하며 샐리의 두 손을 꼬옥 붙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

    “음? 뭐지?”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

    천장과 벽이 구분이 되지 않아 그 끝을 알 수 없는 독특한 공간에서 제이스는 눈을 떴다. 분명 자신은 죽었는데 이렇게 자아와 육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사후세계라는 생각에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사후세계인 건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건물 하나 없는 공간에 제이스는 당황스러웠다.

    특히나 이곳이 사후세계가 맞다면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가게 될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상황에서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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