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07화 (107/111)

#107

클로에는 만신창이 된 제이스를 보자마자 울음을 바로 멈추고 자신의 성력을 사용하여 그를 치료하고 나섰다. 그리고 제이스는 그런 클로에가 대견하다는 듯이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셔츠로 대충 닦아낸 다음에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조금 움직일만하네. 이렇게나 처리했으니 아마 더 없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여기서 체력을 보충한 다음에 움직이죠.”

일단 제이스 덕분에 한숨을 돌린 것은 사실이었다. 내색하고 있지만 않을 뿐 샐리 역시도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며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터였다.

“콜록, 이거 그때 그 방해꾼이구만.”

“당신은….”

“마침 여기 내가 원하던 셋이 모여있어서 다행이네.”

“조금만 더 일찍 오지 그랬어. 난 이미 회복 다 한 상태인데 괜찮겠어?”

제이스는 곧바로 검을 마법사가 있는 방향으로 겨누며 말했다. 샐리 역시도 언제든 언령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힘도 없는 내가 뭐하러 자네들이랑 정면에서 붙겠나.”

시름시름 앓으며 힘없는 목소리 속에서도 간사한 욕심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명히 차가운 시체로 변했던 괴물들이 자기 손으로 떨어졌던 목을 붙이며 일어섰고,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찾아온 난관에 아찔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하아, 이건 또 뭐야.”

“크흐흐,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을….”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마법사는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비틀거렸다.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기는 했으나 지금 피를 토해내는 것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을 세 사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사람 빛이 엄청 탁해요.”

“탁하다는 건 뭘 뜻하는 거죠?”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어쩌면 조금만 버티면 저희한테 승산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거 어쨌든 난이도가 아까보다 올라간 느낌이기는 하네.”

“내가 마법사를 조종할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도 알잖아.”

“아, 그 소리였군.”

제이스는 곧바로 샐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미지의 힘을 사용한다는 뜻이었고, 마법사를 조종할 수만 있다면 괴물들의 존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 괴물들은 당신이 만든 건가요?”

“그래,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 내 자신을 희생했지. 수도에 마법진을 만드느라 마력을 거의 소모한 상태에서는 이게 내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었지.”

예상과는 다르게 술술 불어대는 것이 아무래도 상황판단이 완벽하게 되는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마력도 거의 없다면서 이런 강력한 괴물들은 어떻게 만들어낸 거죠?”

그것은 마법사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마법사가 나타나자 죽어있던 괴물들이 다시 깨어난 것을 보아하니 괴물들과 마법사의 존재 여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예상치도 못한 대어를 낚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샐리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과감하게 질문을 던졌다.

“내 피를 통해서 만들었지. 이것들은 나와 한 몸이야. 내가 근처에 있으면 죽은 놈들도 다시 살아나게 되지. 마족만이 쓸 수 있는 일종의 비술이랄까.”

“그렇다면 당신을 죽인다면 지금 황궁에서 날뛰고 있는 괴물들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거네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이 정도의 대화만으로도 이미 정답은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샐리가 무언가 하기도 전에 결단을 먼저 내린 제이스는 곧바로 회복된 몸을 이끌고 마법사에게로 달려들며 그의 목을 치기 위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칫.”

“그 정도 노림수도 내가 읽지 못했을 것 같나? 지금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라도 그런 뻔한 수에 당할 정도는 아니야."

마법사는 마족임이 분명한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로 제이스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이내 자신을 호위하는 괴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성녀를 제외하고는 전부 죽여버려.”

“크어어어!”

자신들을 만들어준 주인이 곁에 있자 자신감을 얻기라도 한 것인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괴물들이 샐리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그러나 제이스가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마법사를 향하고 있던 검을 재빨리 회수한 그는 곧바로 샐리와 클로에의 앞을 막아서며 달려드는 괴물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마법사가 곁에 있다고 해서 괴물들의 힘이 더 강화되거나 하는 것은 없었기에 약점을 눈치챈 제이스는 그들의 목을 차례차례 베어나갔다.

“뒤를 조심해!”

“뭐?”

그러나 괴물들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그들의 전투력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개인만 놓고 봤을 때 제이스의 힘은 괴물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가 워낙 많을뿐더러 마법사가 나타나자 발생하는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괴물들의 부활이었다.

샐리는 목이 잘린 채로도 움직이는 괴물이 뒤에서 제이스를 덮치려는 것을 보고 곧바로 소리쳤다. 제이스는 아슬아슬하게도 그 목소리에 반응해 자신을 덮치려는 괴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내 피를 받은 괴물들은 내 명령이라면 그것이 시체일지언정 들을 수밖에 없게 되지. 여신의 힘이 통하지 않아서 당황스러운가 보지? 그 힘이 위협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춘 거라면 대비를 못할 것도 없어.”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더라도 당신에게는 먹히겠지.”

애초에 샐리의 노림수는 괴물들이 대상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스스로가 곧이곧대로 괴물들의 약점에 대해 나불거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괴물들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겠고 그냥 알아서 죽어주세요.”

마법사가 아차 싶어 무슨 수를 쓰기도 전에 샐리는 언령을 사용하여 마법사에게 죽음을 명령했다. 괴물들에게 언령의 힘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설명으로 확실히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괴물들의 주인인 마법사에게 언령의 힘을 사용하면 될 뿐이었다.

“자, 잠깐.”

“됐으니까 빨리 죽어요. 그쪽이랑은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으니까.”

이제야 정신이 든 것인지 마법사는 손사래를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샐리를 불렀지만, 샐리는 자비 따위를 베풀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그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그렇다면 그 속죄를 죽음으로라도 갚아야 했다.

그리고 샐리의 언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법사는 곧바로 피를 토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마법사가 쓰러짐과 동시에 괴물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힘없이 몸을 늘어트리며 제 주인을 따라 생명이 다했다.

“뭐야, 끝난 거야?”

“끝났어요. 지난번에 봤을 때는 저렇게 멍청하지 않았는데. 덕분에 손쉽게 해결했네요.”

“그 정도 힘이 있으면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잖아.”

“언질을 주기도 전에 달려든 게 누군데요. 그리고 어차피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지금처럼 언제 1 황자가 습격할지 몰라 그냥 두고 봤을 뿐이지.”

샐리가 헨리와 함께 제이스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던 날 두 사람 모두의 입에서 나온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것은 1 황자인 오언이 언제 무슨 수를 부릴지 모르니 전력이 될 수 있는 인물은 일단 두고 보자는 것이었다.

“클로에가 있어서 당신의 악행이 억제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그대로 들어맞았네요.”

샐리의 예상대로 더 이상 클로에를 외면할 수 없으면서도 샐리의 등장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제국에 의미 없는 살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제이스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할 거지? 그 말이 맞다면 내 쓰임은 여기서 끝났을 텐데.”

“그건….”

그에 대한 처분은 이제 전적으로 헨리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그대 괜찮소?”

“보시다시피 괜찮아요.”

바로 옆에 클로에가 있기에 이야기를 꺼내는 데 눈치가 보여 어려움을 겪는 샐리의 앞에 거짓말과도 같은 타이밍에 헨리가 나타났다. 그는 피로 적셔진 검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샐리에게로 달려왔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대로 달려온 헨리는 그대로 샐리를 품에 안으려 했다. 그녀가 정말로 무사한 것인지 직접 온기를 체감해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옷이 괴물들의 피로 범벅이 됐다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뒷걸음질 치며 당황스러움에 말이 꼬여버렸다.

“뭘 고민하고 있어요.”

샐리는 오히려 피로 범벅이 된 옷이라도 벗어야 하나, 고민하는 헨리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그의 품에 안겼다. 확실히 역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르기는 했지만, 그것조차 참을 수 있을 정도로 헨리의 따뜻한 품 안은 금방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켜줬다.

“오는 길에 1 황자의 시체를 봤소.”

“1 황자의 시체라니요? 제 힘으로 그 사람을 구속해두기는 했는데 죽었다고요?”

“완전히 뭉개진 시체를 보아하니 괴물들이 벌인 짓이겠지. 아무래도 저기 쓰러져있는 마법사의 소행이 아닐까 싶소.”

“괴물들이 죽인 거라면 마법사가 벌인 짓이 맞겠네요. 이곳 제국을 차지하고 나면 1 황자는 쓸모가 없을 테니까요.”

“그런 것 같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인 건가?”

헨리는 제이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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