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06화 (106/111)
  • #106

    “클로에는 어딨어.”

    “바로 옆에 있는 방에요. 내셔스 백작님과 같이 있어요.”

    “혼자 이런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던 거야?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그건 나도 몰라요. 그보다 지금 이렇게 오순도순 대화나 나눌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우선 이 괴물들이나 처리해줘요.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고.”

    “하,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

    “내가 따로 부탁할 것도 없잖아. 여기서 이 괴물들 막지 않으면 그다음 차례가 누군지는 잘 알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이스와 샐리 두 사람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성향의 맞지 않는 사이인 것 같았다. 이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기세를 굽히지 않고 말싸움을 하며 투닥거리는 것이 둘 다 보통의 정신머리는 아니었다.

    “온다!”

    카앙.

    “이거 뭐야.”

    “뭔데요.”

    “이것들 정상이 아닌데?”

    제이스의 입에서 이런 엄살이 섞인 표현이 나온 것은 가히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금도 멈추지 않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괴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보통의 전투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신도 안으로 들어가. 이거 제대로 해야겠어.”

    “괜찮은 거 맞죠?”

    “당신은 날 잘 모르나 본데. 당신 남편만큼 강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다면 믿어볼게요.”

    제이스를 믿고 샐리는 곧바로 클로에와 내셔스 백작이 숨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제이스는 오랜만에 전력을 다할 상대를 찾았다는 생각에 고양되는 긴장감과 떨림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괴물들에게로 달려들었다.

    ***

    “기, 기사님. 괜찮으세요?”

    “크윽, 괜찮지 않으니 말 걸지 마.”

    “네, 네!”

    여자아이는 고통스러운 신음 끝에 겨우 입을 연 야닉의 대답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것들은 도대체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괴물들의 습격은 비단 황궁에 국한되지 않았다. 황궁 안에서 들린 폭발음을 신호로 수도의 모든 지역에 설치된 공간이동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이 무자비하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륙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야닉은 곧바로 황궁을 뛰쳐나와 수도에서 날뛰는 괴물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숫자에 점점 벅차기 시작했다.

    지금 샐리가 황궁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이렇게 황궁 밖으로 뛰쳐나와 날뛸 수 있는 데는 하나의 근거가 있었다.

    [날 못 믿는 거 알겠는데 나한테도 싸워야 할 이유가 있어. 이건 알아줄 수 있지 않아?]

    [그래, 지금 여기서 너와 말싸움을 할 시간 따위 없다.]

    [상황 파악이 빨라서 편하네. 저쪽은 걱정하지 마. 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넌 황궁 밖에 날뛰는 녀석들을 처리해. 알겠어?]

    [그래, 알았다. 그 대신 우리 마님 몸에 생채기라도 하나 생기는 날에 대장 명령이든 뭐든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걱정하지 말고 제국의 시민들 목숨이나 잘 챙기셔.]

    무슨 이유에서인지 헨리는 아직 성녀의 시종이라는 수상한 작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야닉이 제이스와 길드의 건물에서 마주치고 난 그다음에 있었던 일이었다. 야닉의 눈썰미로 곧바로 황궁에서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고 있는 제이스를 낚아챈 것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곧바로 야닉은 제이스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신의 대장인 헨리에게로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헨리는 이미 제이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처분 보류라는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야닉은 오랜 기간 헨리와 함께 해왔기에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이라도 언제나 따랐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장은 이런 상황이 올 거란 걸 예상이라도 한 건가.’

    실제로 제이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야닉은 선택의 길에 놓였을 터였다. 물론 그 선택의 길 속에서 야닉은 높은 확률로 샐리를 구하는 방향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아이러니하게도 제이스의 존재 덕분에 지금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꾸어어어!”

    “제길, 아주 미친 듯이 몰려오는구나. 그래, 날 죽여야 너희들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거냐?”

    이성 따위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라고 해도 본능적으로 우선순위로 처리해야 할 대상 정도는 안다는 듯이 주변 사람들을 죽이던 다른 괴물들도 이내 야닉에게로 전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압!”

    이미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충분히 피로한 상태였다. 그러나 야닉은 지금 여기서 본인이 쓰러진다면 그 후에 발생할 참사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적어도 헨리가 수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본인만큼은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큰소리로 기합을 모으고 이내 자신을 덮치려는 괴물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커헉.”

    그동안은 하나씩 상대하느라 버틸 수 있었던 몸도 수많은 괴물들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려니 곧바로 심장에 무리가 갔다. 결국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야닉은 더 이상 싸울 힘도 없는지 거친 숨만 몰아쉬며 상황과 맞지 않게 유난히도 파랗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때아닌 사색에 잠겼다.

    “미안하다, 주안. 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니 야생의 맹수 그 자체로 보이던 야닉도 감성적인 면모를 보이며 이미 죽고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주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복수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굳센 다짐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것이 억울하기라도 한 것인지 야닉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야닉!”

    서서히 흐려지는 눈앞에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충분히 마친 야닉은 어디선가 들려온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대장?”

    “상황 설명은 나중에 듣겠다. 지금까지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못해주겠군.”

    “하하,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그보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황궁으로 가세요. 사람 하나 붙여놓기는 했지만, 마님께서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헨리는 곧바로 지금 수도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요상한 생김새에 강력한 힘을 가진 괴물들의 존재는 신전에서 보고 온 그것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마왕의 졸개들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들이야. 다만, 일반적인 괴물들이랑 근본부터가 다른 것 같군.”

    “그렇다는 건 우리가 놓쳤던 마법사가 꾸민 일이란 거로군.”

    “그렇겠지. 그런데 그 녀석의 마력 정도로는 이런 괴물들을 다수 양산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괴물들을 이렇게나 만들었으니 마력이 약한 걸 수도 있지.”

    “어쨌든 여기는 부탁하지.”

    “뭐라고? 야!”

    결론은 간단했다.

    신전에서 셀바와 함께 조사한 결과 겨우 잔존한 일부 마족들이 마왕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전은 이미 마족들의 성지가 된 지 오래였고, 대신관으로 변장한 마족에 대한 믿음이 영민한 신관들과 성기사들의 뇌를 완전히 지배해 버렸다.

    다행히도 신전을 지배하던 마족을 셀바가 처치하고 난 뒤에 그들은 다시 원래의 정신상태로 돌아왔다. 헨리는 신전의 대리인이 신전 지하에 있는 마왕의 고치에 대한 것을 불문에 붙이는 대신 수사에 협조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헨리의 입장에서도 신전의 위상이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발 무사하시오.’

    즉 이번 일을 벌인 배후에 있어서 1 황자의 존재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수도와 황궁에 이런 순간이동의 마법진들이 대거 설치되어있었다는 것은 큰 변수이기는 했으나 진짜 위험은 그에게 붙어있는 마법사였다.

    그것은 지금 황궁을 향하는 헨리의 발길을 계속해서 붙잡는 괴물들로부터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샐리를 찾아 달려가는 헨리의 발걸음에 조급함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

    “대충 정리했으니까 이제 나와도 돼.”

    샐리는 안에서 제이스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클로에를 겨우 진정시켜서 나왔다. 그 뒤를 얌전히 따라 나온 내셔스 백작은 목이 잘려 바닥을 뒹굴고 있는 무수한 괴물들의 시체에 그 자리에서 그만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내셔스 백작님!”

    “겁을 집어먹고 기절한 모양이네. 하긴 이런 끔찍한 광경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뭘 그렇게 봐요.”

    “그냥 당신은 이런 게 무섭지 않은가 해서.”

    제이스는 엉망진창이 된 몸을 겨우 벽에 기대며 털썩 주저앉았다. 널린 시체를 보아하니 처음 봤던 괴물들의 수보다 훨씬 더 몰려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괴물 같은 남자는 끝끝내 언령의 힘도 통하지 않던 괴물들을 전부 처리해버린 것이었다.

    “참을만해요.”

    “하하, 선택받은 자는 다르다는 건가.”

    “선택받은 자라니요.”

    “숨길 것도 없어. 어차피 클로에한테 대강 들어서 아는 이야기니까.”

    “확실히 실력 하나는 대단하네요. 이 괴물들을 어떻게 죽인 거죠?”

    “목을 잘라야지만 죽더라. 그래서 고생 좀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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