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05화 (105/111)
  • #105

    “뭐야,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갑작스럽게 자신을 덮치는 갑옷을 둘러 입은 병사들에 제이스 역시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은 황궁 내부에 보이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고, 제이스 역시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절대적인 방어체계의 수도에 존재하는 황궁.

    그곳에 갑자기 나타난 적들의 존재는 사람들을 패닉에 너무나도 손쉽게 빠트렸다. 궁 안에 있던 사용인, 귀족, 기사들 할 것 없이 모두가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적들에게 손쉽게 자신들의 목숨을 허용하는 것에서 오언의 계획은 말 그대로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말해. 너희들의 목적이 뭔지.”

    그러나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제이스는 침착하게 적들을 제압하며 역으로 그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눈알 하나를 파내야 말할래?”

    “마, 말할게. 2 황자와 스테판 공작을 죽이고 성녀의 신변을 확보해서 황궁을 차지하는 게 우리의 계획이야. 그리고 수도로 돌아오는 헨리 크리스토퍼까지 죽이면 우리의 계획은 끝이라고….”

    “그래, 알았다.”

    남자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제이스는 그의 목을 자신의 검으로 그어버렸다.

    “클로에.”

    제이스의 눈에는 주변에서 죽어 나가는 다른 사람들 따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명의 여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점거당했다고 말해도 무색할 정도로 황궁에서 날뛰는 많은 적들을 뚫는 것은 제이스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

    “황궁에 마법진을 설치해놨다고?”

    “그래, 설마 눈치를 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모르는 것 같더군. 거기에 힘을 너무 많이 쏟지만 않았어도 팔이 날아가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마법사는 아직도 무기력하게 당하고 도망친 것이 분했는지 이를 갈았다. 물론 완벽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셀바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법사 본인도 알았으나 그저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네가 말했던 그 대단한 마법사라면 황궁의 마법진을 진작에 눈치채지 않았을까?”

    “내 안에 남아있는 마력을 쥐어짜면서까지 설계해둔 거야. 그 발언은 날 무시한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난 그저 확실한 걸 원하는 것뿐이야.”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언은 굳이 숨을 죽이고 이런 시골 동네에서 훗날을 도모만 하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혹시라도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곧바로 병력을 움직여 상대가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황궁을 단숨에 집어삼킬 수도 있을 터였다.

    “하핫, 그 좋은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성녀와 공작을 납치하는 데 성공만 했어도 굳이 사용하지 않았어도 되는 방법이니 아껴뒀을 뿐이야. 그런데 이제는 아니잖아.”

    “그렇지. 황궁 쪽에 심어둔 첩자에게 일러둘 게 있을까?”

    “그걸 굳이 내가 설명해야 하나.”

    마법사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오언은 그냥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기로 했다.

    ***

    “내셔스 백작님?”

    “공작님과 성녀님 두 분이서 도대체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황자궁에요. 방금 폭발음 들으셨죠? 지금 한시가 급해요.”

    “기사들이 이미 황자궁으로 향하고 있으니 두 분은 저와 함께 어서 피신하시지요. 황궁 안에 비밀의 문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면 됩니다.”

    “그걸 백작님이 어떻게….”

    “황궁의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는 귀족이라면 혹시라도 벌어질 불상사를 대비해 알아둬야 할 생존 수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든 길게 얘기할 시간도 없습니다.”

    내셔스 백작의 굳건한 다짐은 팔목을 부여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졌다.

    ‘어떻게 할래요.’

    ‘백작님이 이렇게까지 하셔서 뭔가 뿌리치기도 어려워요.’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샐리와 클로에 두 사람은 호랑이굴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몰랐다. 특히나 샐리의 경우에는 경계해야 할 1순위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의 존재의 위치도 정확히 짚이는 부분이 없었다.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그냥 피신하죠. 본궁으로 가기에는 거기까지 가는 것부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샐리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내셔스 백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곧바로 근처에 보이는 행정부 건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근처의 건물이 행정부의 건물이라 그런지 많은 서류와 책들을 보관하기 위해 건물의 구조 자체가 제법 복잡했다.

    “그냥 다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건물 안에 숨죽이고 있어요.”

    샐리는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거의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관리들을 진정시키며 내셔스 백작과 클로에를 데리고 건물의 가장 깊숙해 보이는 장소로 향했다.

    “여기라면 안전할까요.”

    “일단 이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두 분께서는 몸을 반드시 보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예상과는 달리 행정부의 건물에 적군의 병력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자, 잠깐만요.”

    “잠깐은 뭔 잠깐이야. 그냥 죽어.”

    적군의 무자비한 칼날이 힘없고 죄 없는 관리의 목을 베어버리기 직전.

    “멈춰!”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등장한 샐리는 곧바로 자신의 언령을 이용하여 자기보다 2배 정도는 덩치가 커 보이는 병사를 멈춰 세웠다.

    “이, 이게 뭐야.”

    “괜한 사람들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하하하하, 상황 파악도 못하고 건방진 태도를 보아하니 그쪽이 스테판 공작 되시는 모양이구려.”

    “맞아요. 그쪽이 볼일이 있는 건 나잖아요. 무고한 사람 건드리지 말고 차라리 날 건드리세요.”

    “그쪽한테 볼일이 있는 것도 맞지만 우리한테 떨어진 명령에는 다른 것도 있어서 말이야.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거.”

    뒤이어 들어와 아직 언령의 힘이 적용되지 않은 병사들은 샐리의 태도에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들의 손에 들고 있는 둔기를 관리들에게 휘두르려 했다.

    “전부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으세요!”

    말 한마디에 기세등등한 적의 병사들은 모두 샐리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언령의 힘을 듣도 보도 못했을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녀린 여자의 명령대로 자신들의 몸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 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의 심리는 서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거라면 내가 지킬 수 있을지도 몰라.’

    샐리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여 사람들을 지켜내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에 따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 말은 샐리에게 해당되며 그녀로 하여금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마법사의 위치를 말하세요.”

    지금 황궁을 이런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유력 인물은 1 황자인 오언에게 붙어있는 마법사임에 틀림없었다. 다시 말하면 마법사만 제압할 수 있다면 지금 이 난장판도 생각했던 것보다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샐리의 생각이었다.

    “2 황자를 죽이기 위해 황자궁으로 먼저 간다고 했어. 그런데 그 뒤의 계획은 우리도 몰라. 우리 보고 스테판 공작을 죽이고 성녀를 확보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어.”

    언령의 힘을 사용한 것이니 저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마법사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일이 심하게 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샐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뇌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줘.”

    그런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등장했으니 초록의 피부색에 뚫릴 것 같지 않을 단단한 피부와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난생처음 보는 괴물의 존재. 인간과 같은 몸에 붙어있는 돼지의 머리.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으로 태어난 생명체가 아닌 것 같았다.

    “멈춰!”

    그러나 샐리는 지금 여유롭게 눈앞의 괴물의 정체에 대해 탐구할 시간이 없었다. 상대의 정체 따위는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샐리는 곧바로 정신을 다잡고 다시 한 번 우렁찬 목소리로 언령의 힘을 사용해 뚜벅뚜벅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괴물들의 발걸음을 멈추고자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언령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괴물들의 전진하는 발걸음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샐리는 자연스럽게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구석으로까지 몰리게 됐다.

    ‘어째서 내 힘이 통하지 않는 거지.’

    언령의 힘은 말 그대로 절대적이었다. 단순히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로 하는 것을 그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지금 샐리가 가진 힘의 장점인데 그 장점이 발휘되기는커녕 완전히 틀어 막혀버렸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네.”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 순간 제이스가 적의 병사들을 뚫고, 황궁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뒤지던 끝에 샐리에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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