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01화 (101/111)
  • #101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쳤던 마법사는 마족인 건가.”

    “평범한 인간은 결코 마석을 다룰 수가 없어. 특히나 여신의 축복을 받은 이들이라면 말이야. 그런데 그런 마석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도 모자라서 그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불쾌감을 놓고 추리해본다면 결론은 그거 하나밖에 없지.”

    “그렇다면 마족이 무슨 이유로 성녀와 내 아내를 납치한 거지?”

    정신이 없어 샐리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헨리는 마족이 성녀는 몰라도 샐리까지 납치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쪽에 원한이 있는 인물을 떠올려 봐.”

    “그렇다면 1 황자의 짓인 건가.”

    “말이 되잖아. 황궁에 침입해 감옥에서 1 황자를 탈출시킬만한 힘이 있는 마법사. 우리가 생각했던 게 딱 들어맞지 않아?”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군.”

    헨리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퍼즐 조각들이 완벽하게 합쳐졌다. 상대가 마족이라면 자신이 마석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처럼 여신의 힘이 깃든 이들에게 느끼는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샐리에게 여신의 힘이 있다고 판단하여 직접 제작한 목줄을 채웠던 것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 소탕해야겠어.”

    제국을 집어삼키고자 하는 야심만만한 인물인 오언과 더불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를 마족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이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샐리가 목숨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는 큰 위기를 겪는 것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는 것이 헨리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의 위기조차도 그에게는 너무 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일 신전을 간다고 했나? 아무리 제국의 고위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신전에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없을 텐데.”

    “그쪽에 허락을 맡고 가는 게 아니야.”

    “하하,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신전이라 함은 대륙을 통틀어 신성하면서도 절대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대륙의 그 어떤 국가라도 신전과 대놓고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정도였다. 최근에야 제국의 선대 황제의 야망에 동참하면서부터 다른 국가들이 서서히 신전에 대한 불만을 하나씩 터트리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불만을 터트린다고 해서 신전에 납세하던 지원금 등을 끊어버리는 등의 대담한 행동은 차마 실행에 옮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 대륙 탄생의 근원인 여신을 모시는 이들이 상주하고 있는 장소라는 것만으로도 전해지는 위압감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헨리가 하는 말은 예의 따위 차릴 생각 없이 그냥 대문을 뜯어버리고 들어가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턱대고 들어가서야 성과를 낼 수가 있나.”

    “그래서 당신이 조치를 취한 거 아니었나.”

    헨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샐바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그러니 나도 데려가도록 해. 너희 둘이 시간을 끄는 동안 내가 그것들의 더러운 부분을 찾아내 줄 테니까.”

    “들어온 정보가 있는 건가?”

    “알면 놀랄 걸.”

    스테판 공작가로 돌아오기 전 셀바는 똘마니들이 전부 무참히 살해당한 것을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아 실금까지 해버린 레너드와 한 가지 계약을 맺었다.

    [날 도와준다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어때.]

    [저, 정말?]

    [그래, 이쪽에서도 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상부상조하자고. 너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너희 쪽에 붙어있는 마법사를 위해 제 어미를 살해한 버러지한테 박쥐마냥 이곳저곳 붙어먹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여신의 기운이 흩뿌려진 대륙에서 마족은 결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제외하면은 말이다.

    그 조건은 셀바도 정확히는 모르는 것이었는데, 어떤 기준을 충족한 인간의 심장을 먹으면 힘을 되찾아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셀바는 잠시나마 들여다본 레너드의 기억의 파편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상대방의 기억을 훑어보는 것은 금기의 마법이기에 아무리 셀바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 중 극히 일부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당한 게 있으니 그만큼 돌려줘야지.”

    셀바의 말에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헨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샐리가 곤히 자고 있는 침실로 향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아내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 난 뒤에야 본인도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이런, 제국의 공작께서 이리 신전을 방문해주시니 참으로 영광이오.”

    제국의 공작이 갑작스럽게 방문한다는 사실에 대신관은 뻔뻔하게 웃는 얼굴로 직접 마중 나와 샐리에게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건넸다. 저 위선과 가식의 가면이 어찌나 역겨웠는지 샐리는 그 자리에서 구역질을 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이리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직접 행차하신 것이오.”

    “그냥 제가 제국의 공작이라는 고위 귀족 자리에 오르고 난 뒤에 신전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약소하지만 제 성의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이리도 참한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 제국의 공작자리에 앉으시다니 제국의 앞날이 참으로 창창한 것 같소.”

    “그렇게 좋은 말씀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게다가 이렇게 대신관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와주시다니. 저희 가문에게 더없는 영광이 될 거예요.”

    “우리가 안면도 없는 사이도 아니지 않소, 공작.”

    샐리와 대신관은 서로의 얼굴에 미소를 띤 채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뜨거운 불꽃이 튀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전에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리 찾아오는 것은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대신관의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을 봐서는 고위 신관쯤 되어 보이는 인물인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신관께서도 황궁에 기별도 없이 찾아오시길래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어 신관 분들을 신경 쓰이게 만들겠습니까.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신관도 제멋대로 황궁을 드나들었는데 신전이 뭐 대단한 장소라고 멋대로 방문도 못 하겠냐는 뼈가 담긴 말투에 먼저 입을 열었던 신관은 괜히 헛기침하며 샐리와 눈을 마주치기를 꺼렸다.

    “공작께서는 신전에 처음 방문하셨으니 어떻게 안내인이라도 따로 붙여드려야 하나.”

    “괜찮습니다. 제 남편이랑 천천히 둘러볼게요. 혹시 저희가 들어가면 안 되는 장소라던가 할 곳이 있을까요?”

    “하하, 신전은 모든 것이 투명해야하지요. 신경 쓰실 필요 없이 편하게 둘러보시지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샐리와 헨리는 대신관과의 대화를 곧바로 끝마치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대신관님.”

    “문제가 될 게 뭐가 있겠나. 신전을 생각해서 이렇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는 모습부터가 여신을 숭배하는 제국인으로서 참된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허허, 신경 쓸 것 없어. 그보다 이렇게 많은 지원 물품이 왔으니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리겠군.”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하하, 자네들이 있어서 나는 참 든든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도 신전 건물로 들어가는 샐리와 헨리를 향한 신관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제국인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현재 신전에 머무르고 있는 제국의 다른 귀족들을 향해서는 모두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정중하게 대우했다.

    ***

    콰앙!

    “뭐, 뭐야.”

    “뭐긴 뭐야. 이 범죄자 새끼들아.”

    샐리와 헨리가 신전에 가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이스가 이끄는 범죄자 길드가 머무는 건물에 굉음과 함께 벽이 뚫리며 안에 있던 인원들이 패닉에 빠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습격 사건에 많은 인원들이 당황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눈앞에는 거대한 대검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야닉이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상주하는 것들이 수도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것들아.”

    수도 방위대로서의 임무는 말 그대로 수도의 치안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1 황자 오언의 카지노 건을 시작으로 야닉은 샐리의 소꿉친구이자 최고의 정보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레귤러즈의 리더인 페드로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 덕분에 야닉은 뒷골목의 범죄조직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카지노에서 나왔던 각종 무기들의 거래처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제이스의 길드의 꼬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오늘부터 이곳 제국의 수도에 너희 같은 것들이 머무를 곳은 없어. 그러니 선택해라. 얌전히 잡힐지 아니면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을지 말이야.”

    이미 지금 길드에 가담한 인물들 중에서 목숨을 구걸할 인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미 그들은 제이스와 함께 하면서 목숨을 담보로 이 일을 하는 것이었기에 목숨이 아깝다는 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야닉의 위협이 효과적으로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만 될 뿐. 야닉의 위협에 길드원들은 수긍하기는커녕 오히려 각자 품속에 숨기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곧장 야닉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압!”

    우렁찬 기합 단 한 번.

    그것으로 이 싸움의 견적이 전부 나왔다. 야닉은 기합과 함께 지금까지 무수한 적들을 낙엽처럼 쓸어온 본인을 상징하는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그러자 야닉에게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모든 인원은 야닉이 지금까지 쓰러뜨린 상대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그것을 본 야닉은 애초에 긴장하지도 않았지만, 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날뛰기 시작했고 결국 투항이 아닌 싸움을 선택한 모든 길드원들은 야닉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비명과 함께 무참히 쓰러져갔다.

    “네가 우두머리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샐리와 마찬가지로 납치 사건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클로에를 위해 달콤한 디저트를 사러 나온 제이스가 때마침 길드의 건물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저 별 생각 없이 한 번 둘러보고 지나갈 생각으로 왔을 뿐인데 그곳에서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대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길드원들을 상대로 숙청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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