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98화 (98/111)

#98

“하아, 제대로 이해한 줄 알았더니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거야?”

셀바는 본인이 말하는 바를 아직 정확히 짚지 못하는 두 사람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 남아있는 흔적은 자신들의 진짜 위치를 지우기 위한 가짜라는 거야.”

“그럼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진짜 위치를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 가짜 흔적들로 덮어놓은 상태에서 이것들을 풀기 위해서는 위에 덮여있는 마법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뜯어 봐야 했다. 순간이동과 함께 사용된 다른 마법들도 포함되어 있어 제아무리 셀바라고 하더라도 단시간에 이것들을 풀어버리기에는 힘들었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는 건데. 저쪽이 좋은 목적을 가지고 두 사람을 모셔갔을 리는 없을 거 아니야.”

저들이 결코 좋은 목적을 가졌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대담한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저들의 꼬리를 잡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옆에서 헨리와 셀바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제이스도 초조한 마음으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었다.

“그건 걱정할 것 없어. 제대로 추적만 할 수 있다면 시전자의 위치를 찾는 거니까.”

“순간이동의 목적지인 좌표를 찾는 게 아니란 거지?”

“넌 이 멍청이보다는 똑똑한 것 같네. 시전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니 시간이 조금 걸리는 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야. 알아들어?”

“그래,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 속을 긁는 특유의 건방진 말투는 헨리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헨리는 본인이 멍청해서 이해력이 느리다는 결론을 대충 인정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지금부터 이 더러운 흔적들을 치워내야 하니까 다들 나가봐. 내 집중력 흩트리지 말고.”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몰라, 이 건방진 녀석아. 내가 너보다 밥을 먹었으면 몇 백 끼니는 더 먹었다, 이놈아.”

“뭐라는 거야, 이 건방진 꼬맹이가.”

“둘 다 상황 파악은 하면서 싸우지. 지금 이렇게 티격태격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헨리는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어쨌든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이 허비되는지는 알려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느긋하게 기다리는 처지는 아니니까.”

헨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허비되는 지금 자신의 아내가 어디서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본인은 위기에 빠진 아내를 구하기는커녕 그녀를 위해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속으로는 어떤 의미를 지니던 육두문자가 쉴 새 없이 나오고 있었다. 단지 이런 모두가 조급해하는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깨는 행동은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에 참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두 사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한 답.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기 위해 곰곰이 생각에 잠긴 셀바를 바라보며 헨리는 속으로 조금이라도 시간이 단축될 수 있기를 절실히 기도했다.

“아무리 빨라도 해가 저물 때쯤은 되어야 해.”

“그렇게나 걸린다고?”

“너무 느린 거 아니야?”

셀바의 입에서 나온 결론에 헨리와 제이스 모두 두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변했다. 특히나 제이스의 경우 나름 침착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이미 실핏줄이 터져 충혈된 눈과 더불어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모습에서 얼마나 긴박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나 정도니까 이렇게 빨리 풀어낼 수 있는 거야. 여러 가지 장소가 겹쳐있는 것도 모자라서 남아있는 마법의 흔적이 한 종류도 아니니까.”

아무리 급하더라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였다.

셀바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째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투자되어야 하는 것인지 하나하나 다 따져가며 설명을 내놓았다. 결국 헨리와 제이스는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흔적만 찾아내면 그 뒤로는 문제 될 거 없어.”

“그건 정말이겠지.”

“그래, 아까 말했다시피 시전자의 위치를 쫓아 우리가 역으로 그들을 덮치면 그만인 거야.”

걸리는 시간에 비해 계획은 단순하고 간결했다.

위치를 찾아서 그곳으로 데려가 줄 테니 알아서 날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헨리와 제이스가 가장 원하고 있는 바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본인들의 소중한 사람을 납치해간 이들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으니 말이다.

***

“크헤헤, 너무 그러지 말고 얌전하게 있어. 그럼 상냥하게 해줄 테니까.”

병사들 중에서도 대장급은 되는 듯 보이는 남자가 군침을 흘리며 샐리에게로 다가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항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 속에서 그들은 샐리의 앙칼진 저항에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으며 조롱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여자 주제에 나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내가 오늘 진짜 여자로 만들어줄 테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꺼져!”

샐리는 남자의 얼굴을 정확히 조준해 침을 뱉었다.

“이게!”

당연히 이런 저항은 무의미함을 넘어서 상대방의 화를 돋우었고, 화가 난 남자는 곧장 샐리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온 힘을 다해 때렸으니 가녀린 체구의 샐리에게는 그것이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뇌가 흔들리며 머리가 핑 돌았다. 얼얼하게 부은 뺨과 샐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극악무도한 인간들 앞에서 나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충분히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하고 도움을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며 무력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미 서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짐승과도 같은 인간들에게 유흥거리를 제공해주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샐리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았다.

“역시 말 안 듣는 개는 한 대 쥐어박아야 한다니까.”

한 대 맞고 나니 저항 의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샐리를 바닥에 눕힌 남자의 손이 샐 리가 입고 있는 옷을 찢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샐리는 이 순간을 견디기 위해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반드시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와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 어떤 시련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무슨 수를 써서든 정신을 부여잡고 견디겠다고 마음먹었다.

콰앙!

“뭐, 뭐야”

그런데 그때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조그만 오두막은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당황한 남자들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상황 파악을 위해 안간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샐리는 먼지가 서서히 거치며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에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설마….’

서서히 걷히는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 중에는 샐리가 애타게 찾던 이가 있었다. 반드시 구하러 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던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맹세했던 사람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무사해서 다행이오."

헨리는 어떻게 지금 이 시간까지 이성적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수만 가지의 안 좋은 경우의 수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헨리의 강인하던 마음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전히 영롱하면서도 올곧게 빛나는 샐리의 눈동자와 더불어 안심한 듯 자신을 향해 지어 보이는 미소에 헨리는 그제야 조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뭐야, 이건. 저것들이 여길 어떻게 온 거야.”

헨리의 등장은 레너드의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이곳에 샐리를 찾으러 온 헨리를 마주한 순간 그의 머릿속은 백지마냥 새하얘지면서 완전히 사고가 멈춰버렸다.

“저기 성녀도 있는데?”

“뭐야, 그럼. 그 사람이 당한 거야?”

이 일을 계획한 장본인 역시도 사고가 멈춘 상황 속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는 똘마니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서로가 한마디씩 거들면서 생기는 소음 탓에 어두운 저녁 들판에서의 웅성거림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그들을 진두지휘하던 마법사가 데려갔던 성녀가 저들에게 있다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샐리를 저렇게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동감이야.”

헨리의 말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 셀바는 금방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샐리의 주변에 불투명한 원형의 막이 만들어졌다.

“젠장! 저거 당장 막아.”

레너드의 지시에 정신이 번쩍 든 병사들은 이내 숨기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순식간에 샐리에게로 달려들었다. 워낙 사나운 기세에 흉측한 무기들을 들고 있는 터라 샐리 역시도 움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얇은 원형의 막은 거칠게 달려드는 짐승과도 같은 남자들 무리의 공격에도 조금의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샐리를 감싸고 있던 원형의 막이 공중에 뜸과 동시에 샐리의 몸도 함께 떠올랐다.

“너희 쪽에 붙어있던 마법사라면 이미 꽁무니를 뺀 뒤야.”

셀바는 하찮은 벌레들을 보는 눈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남자들을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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