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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91화 (91/111)
  • #91

    애초에 오언은 지금 상황이 정말 현실인지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따뜻하고 넓은 방이 아닌 작고 초라한 실내와 자유가 박탈당한 쇠창살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몇 번이고 난동을 피우곤 했다.

    처음에는 감옥을 지키던 병사들도 황자이다 보니 예의주시하며 신경 써주기는 했으나 행패가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그들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보고를 받고 있는 헨리의 명령이 있었다.

    헨리는 전쟁터에서 잡은 포로들에게 꽤 자비로운 편이었다.

    물론 그들이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난동을 피우며 병사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많이 초췌해지셨네.”

    헨리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1 황자에게로 들어가는 식사에 손을 대 양을 확연하게 줄여버렸다. 당연히 식사량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인지한 오언은 계속해서 난리를 피웠지만, 이제는 병사들도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줄어든 식사량과 쓸데없이 낭비되는 체력 탓에 오언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심지어 이제는 완전히 순종적인 죄수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너 죽고 싶어?”

    “이대로 두면 황자님이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빈정대는 말투에 울화가 치솟는 오언이었으나 지금은 본인이 내키는 대로 패악질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에 자신을 도와 황제를 암살한 마법사의 존재만이 이 거지 같은 감옥에서 본인을 꺼내줄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말이다.

    마법사 역시도 그 점을 알기에 대놓고 이렇게 빈정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꼴을 구경하러 온 건가.”

    “그럴 리가.”

    마법사는 곧바로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더니 굳게 닫힌 쇠창살의 문을 열어버렸다. 죄수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굳게 닫힌 쇠창살의 문은 마법사의 주문 몇 마디에 곧바로 녹이 슬어 쓰러져버렸고, 오언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감옥 밖으로 나왔다.

    “당신이 이렇게 잡혀 죽으면 내가 이 일에 가담한 이유도 없잖아.”

    “그래서 그쪽에는 별문제 없는 거지?”

    “곧바로 거처를 옮겨버렸지.”

    오언이 걱정하는 것은 몰래 사병을 육성하던 개인 영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불법 카지노까지 들킨 마당에 자칫 잘못하면 황족에게는 금지된 개인 사유지를 소유하는 것과 더불어 사병을 양성하던 것까지 들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목숨을 보전하는 것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정도로 말 그대로 반역죄에 해당하는 바였다.

    “황제 독살 건은 어떻게 됐지?”

    “저쪽에서도 나라고는 생각하고 있어.”

    “헨리 크리스토퍼라고 했나.”

    “아니 그 녀석이 아니야.”

    “그럼 누군데.”

    증오의 대상은 언제나 가장 최근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준 상대에게로 옮겨가기 마련이었다.

    “샐리 스테판. 가장 최근에 공작자리에 앉은 계집애.”

    “여자라고?”

    “만만한 계집이 아니야. 내가 봤을 땐 개인적인 정보통이 있는 것 같아.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카지노 건을 알겠냐고.”

    “하긴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렵지.”

    “그래, 분명히 조력자가 있어.”

    자신을 비웃던 샐리의 얼굴이 떠오른 오언은 이를 갈며 그녀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그리고 마법사 역시 오언이 이토록 증오하면서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샐리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 부분은 내 쪽에서 한 번 알아보지.”

    오언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있던 마법사의 입장에서도 이번 건은 꽤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카지노의 수입은 사병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마법사는 그런 중요한 수입원을 망친 인물이 당연히 헨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인물은 없었으니 말이다. 샐리의 경우 영민한 두뇌와 함께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도 결국 헨리 크리스토퍼라는 후광 때문에 빛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1 황자의 입에서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은 분명히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언급한 정보원의 존재는 미리 손봐두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걸리적거릴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일단 돌아가자고.”

    “그 계집애는 미리 손을 써야 해.”

    “알았으니 일단 가자고. 이제 곧 수면 가루의 효력이 풀리니까.”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주머니에서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게 뭐지?”

    “뭐긴, 우릴 여기서 나가게 해줄 워프 마법을 담은 양피지지.”

    “마법사들은 그런 것도 만들 수가 있나.”

    “큭큭, 마법을 멸시하는 너희 제국인들은 모르겠지.”

    “멸시하다니. 내가 정말 마법을 멸시하는 인간이었으면 널 고용했을까.”

    “그건 그렇지. 어쨌든 다시 잘해보자고.”

    마법사는 음흉하게 웃으며 워프 마법이 적힌 양피지를 찢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봐! 나도 꺼내줘.”

    “그래, 우리도 꺼내줘.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마법사는 이곳 지하 감옥에 오면서 일시적으로 잠이 들게 만드는 수면 가루를 가져와서 뿌렸다. 그 덕분에 안에 있는 모든 병사들과 죄수들이 잠에 빠지며 1 황자를 탈출시킬 계획은 조금 전까지 굉장히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면 가루의 효과가 약하게 걸린 두 명의 죄수가 깨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것들을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

    “난 상관없는데.”

    마법사의 말에 오언은 눈을 시퍼렇게 뜨며 자기 의사를 표명했다. 그가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는 죄수 둘이 바로 회의장에서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귀족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릴 데려가지 않는다면 다 말해버릴 거야.”

    한번 말하는 게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뉘앙스였다.

    “기억을 지우거나 할 수는 없나?”

    “그런 게 가능하면 그쪽이랑 손을 왜 잡아. 그냥 나 혼자 해 먹고 말지. 그냥 신경 쓰지 말고 가지. 어차피 말한다고 해서 우리 위치가 들키는 것도 아닌데.”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없냐는 질문에 마법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1 황자와 손잡을 필요도 없이 곧바로 본인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의 머릿속에는 기억조차도 마법으로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하나 떠오르기는 했지만, 애초에 속세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굳이 그 인물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럼 그냥 죽이고 가지.”

    “그래도 되겠어?”

    “카지노 건에 대해서도 이놈들이 솔선수범해서 다 불더라고. 남겨둬 봐야 별 도움도 안 될 텐데 그냥 죽여.”

    “황자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감옥 안에서 피가 치솟아 올랐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자 낫을 든 검은 형체의 괴물이 튀어나오며 두 사람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렸고, 둘은 공포에 질리는 표정을 마지막으로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

    “우리 황자님을 지지하지 않겠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네. 그렇지?”

    “그러게.”

    퉁명스러운 말투기는 했지만 어쨌든 대답을 해주기는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제이스는 억지로 대화 주제를 만들어서라도 클로에와 대화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말을 받아주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뭐가 마지막이야.”

    어둠이 깔린 정원을 아슬아슬한 걸음걸이로 걷는 클로에의 뒤를 봐주느라 제이스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문장은 제이스에게 있어서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이번에 말해주지 않으면 난 우리의 관계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해.”

    “뭐?”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제이스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방금 내가 했던 말 그대로의 의미야.”

    “우리 사이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사이야?”

    “그런 사이에서 네가 나한테 하는 행동은 어떤데.”

    뒤를 돌아본 클로에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

    그 눈물을 본 순간 제이스에게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졌다.

    “흑, 흐윽.”

    클로에가 제이스 앞에서 이렇게 눈물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 망국의 왕녀로서 적국의 병사들에게 쫓기다 구사일생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클로에는 울지 않았다.

    그 상황이 견딜만했기에 눈물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에는 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주며 흔들림 없는 신뢰를 쌓아온 이에게 들기 시작한 의구심은 그녀의 마음에 틈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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