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6화 (86/111)
  • #86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 고소하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은 그들에게 대응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신의 한 수였다. 각자에게 전해진 회의를 소집한다는 내용의 편지 자체가 사람들의 모든 관심을 끌었고, 그 사이에 헨리는 야닉과 함께 카지노를 덮쳐 모든 증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 황자 오언의 예상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는 정보력과 실행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나 헨리의 경우 과거에는 귀족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서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귀족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방계라고 무시당하던 그의 혈통은 오늘 일을 계기로 권력에 욕심이 있는 귀족들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귀중한 핏줄이 되었다.

    아직 샐리의 입에서 근본적인 범죄를 일컫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클로에와 2 황자인 토니를 포함한 다른 귀족들은 지금의 상황을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샐리와 헨리가 물어온 대어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땀을 닦기 위한 손수건이 한 장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자신의 범죄에 대해 자백할 이는 더 없는 것이오.”

    지금이 지나면 더는 기회가 없었다. 이 정도까지 봐주는 것도 헨리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굳이 지금 이런 식으로 1 황자와 귀족들의 사이를 분열시키려는 것은 저들이 나중을 도모하여 뭉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샐리와 헨리 두 사람의 생각은 우스울 정도로 정확했다.

    오언의 눈치를 살피던 귀족들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눈치챘다. 이미 상황을 뒤집을만한 카드가 없다는 것은 계속 부들대며 의자 팔걸이를 부술 듯이 쥐고 있는 것 이외에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오언의 모습에서 그 밑천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상대방의 예상 범주를 벗어난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샐리는 당장에라도 헨리에게 달려가 그와 손뼉을 마주치며 지금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 고해성사를 시작한 귀족들의 말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자리에 모인 이들을 경악하게 할 1 황자의 만행이 전부 드러났다.

    그리고 아직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1 황자 오언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며 모든 것을 실토하는 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연행을 위해 자신을 붙잡으려는 기사들의 손길을 격하게 뿌리치는 1 황자 오언은 핏줄이 솟아있는 눈으로 매섭게 샐리와 헨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쩌렁쩌렁 소리를 내질렀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다른 귀족들도 자진해서 내려와 1 황자가 저지른 각양각색의 범죄를 나열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으로 했다. 그때의 오언의 표정은 샐리와 헨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볼만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참다못한 오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귀족들에게 온갖 험한 욕들을 퍼부었지만, 이미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귀족들은 이미 떨어진 동아줄인 1 황자의 욕지거리에 별다른 의의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샐리와 헨리조차 몰랐던 뇌물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전부 털어놓았다.

    이 부분은 기대도 안 했던 부분인데 알아서들 술술 불어주니 샐리는 입가에 자꾸 떠오르려는 미소를 숨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누구긴요. 제국의 근간을 무너뜨리려고 한 범죄자시죠.”

    과감하면서도 원색적인 비난에 헨리조차도 깜짝 놀라 샐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샐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도발적인 미소와 함께 예상치도 못한 수에 완벽하게 당해 바닥으로 추락해버린 1 황자를 비웃었다.

    아마 기사들이 없었다면 오언은 곧장 샐리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부러뜨리려고 했었을 것이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기사들에게 잡힌 몸뚱이를 난폭하게 털어내는 것에서 그가 느끼는 분노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의 그런 추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생떼를 부리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샐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오언의 바로 앞에 똑바로 섰다.

    “이번 일은 절대 잊지 않겠다.”

    “잊으려고 해도 힘들 거예요. 당신의 그 안일함 덕분에 우리 일이 생각보다 더 순조로웠어요. 황제만 죽이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나요?”

    “무슨 말이지? 그런 식의 음해가 공작 그대의 특기인 건가?”

    “모를 거라고 생각 말아요. 어차피 이 부분에서는 증거도 없어서 당신을 엮지도 못해.”

    “큭큭, 하긴.”

    비릿한 웃음에서 이미 샐리는 황제를 독살한 범인을 오언으로 단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 이후로는 어쩔 거지? 지금 이런 식으로 한다고 해서 제국이 발전하기라도 하나?”

    “카지노 건은 그냥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에요. 당신의 존재가 거슬리는 건 맞지만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또 아니거든요.”

    그 말은 제국의 중심을 꿈꾸는 오언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말이었다. 이미 속으로는 감히 제국의 1 황자를 모욕한 죄로 눈앞의 건방진 여자를 죽여 버렸겠지만, 이미 그의 처지는 힘없는 한량 범죄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당신의 처우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그런 얌전히 감옥에서 지켜보세요. 제가 제국을 어떻게 바꾸는지.”

    “감옥이라고? 제국의 1 황자인 날 지금 감옥에 가두겠다고 하는 거냐.”

    “그럼 이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을 그냥 호화로운 궁에 가둬둘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제국의 근간을 흔들리게 만드는 인물을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황족의 경우 황제 독살과도 같은 최고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아닌 이상은 보통 궁에 가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것이 황족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자 자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샐리는 그런 낡아빠진 관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언급한 것처럼 오언이 저지른 일은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선처를 해줄 수 없을 정도의 범죄였다.

    노예 경매와 불법 약물을 사용한 투기장의 운영. 귀족들로부터 뇌물을 주고받은 것까지 그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그 건방진 짓거리도 오래가지 못할 거다.”

    “독설 고마워요. 부디 황족으로서 마지막 품위까지는 잃지 마세요. 보기 안타까우니까.”

    핏대를 세우며 독설을 퍼붓는 1 황자를 앞에 두고도 샐리는 여유를 넘어서 연민까지 드러내며 더더욱 그를 농락했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최악이야. 그러니 내가 어떤 벌을 내리든 달게 받기를 바랄게.”

    1 황자에 대한 악감정은 단순히 그동안 헨리를 고생시킨 것에서만 파생된 것이 아니었다. 샐리는 그날 경매장에서 어린아이들이 학대받으며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을 보자마자 가슴에서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작에 대한 복수와 든든한 남편인 헨리와의 시간으로 잠시 작아졌던 불씨는 물어뜯을 대상이 생기자마자 다시금 커졌다.

    “여기 모이신 분들 모두가 지금 상황에 당황스러우실 거라 생각합니다. 전 안타깝게 서거하신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제국을 부흥시킬 방법을 고심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도 저에게 영감을 준 한 발명가를 찾았답니다.”

    샐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리의 안내를 받아 마린이 쭈뼛쭈뼛 걸어 들어왔다. 아무래도 셀바와 함께 마탑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리는 자리는 많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샐리의 입장에서는 그가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나와 준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마린이라고 합니다.”

    앳되어 보이는 청년의 씩씩한 인사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시선들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샐리가 자신 있게 소개한 인재에 대한 호기심은 숨기지 못하는 기색들이었다.

    “정말 대단해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숨이 막히던 장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장내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 말에 집중하게 하면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샐리의 모습에 클로에는 나지막하게 그녀의 순탄한 진행 능력과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에 감탄했다.

    “사실 이 발명가 분의 등장이 오늘 있었던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교롭게도 오늘 소개해드리게 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소.”

    “그 전에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샐리가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자 남아있던 헨리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의장 밖에서 돋보기가 달린 무언가를 끌고 오면서 장내의 불을 꺼 실내를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회의장의 입구 쪽 벽면에 거대한 화면이 떠올랐다.

    “저게 뭐지?”

    “호오, 참으로 신기하군.”

    1 황자와 함께 순식간에 많은 귀족들이 기사단에 의해 연행되었음에도 마린의 신비한 발명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 보이는 건 바로 열차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열차가 아니라 바로 마정석을 연료로 사용하는 열차죠.”

    샐리의 말에 장내가 술렁이며 어수선해졌다. 다른 것도 아닌 마정석의 존재는 제국인들에게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제국에는 마정석의 존재가 거의 없지 않소. 그리고 마정석이라고 하면 마법사들이 다루는 광석이 아니오.”

    “전혀 아니에요. 물론 마법과 관련된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지만, 발명가 분께서는 다양한 부문에서 지식이 뛰어나셔서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정석의 경우에는 저와 헨리 경이 발견한 게 있어서요.”

    “발견한 게 있다니. 마정석을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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