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5화 (85/111)

#85

“말해봐라. 어떻게 내 아내를 위협할 거지?”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는 듯 헨리는 곧바로 제이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제이스는 헨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검을 정면에서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위로 점프하며 헨리가 지금껏 보지 못한 묘기와도 같은 기술을 선보였다.

‘저건 도대체 뭐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마치 발판이 있는 것처럼 밟으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기이한 모습에 헨리는 잠시 그의 기이한 기술에 빠져들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난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 스테판 공작가로 달려갈 수도 있는데.”

그 말에 헨리는 곧바로 정신을 차린 뒤 곧장 호흡을 가다듬고 순식간에 추진력을 얻어 제이스의 뒤를 쫓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뭣!”

그 엄청난 추진력을 이용해 마치 대포알처럼 자신에게로 몸을 내던진 헨리를 보고 제이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움이 섞인 외마디가 나왔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위층의 바닥을 뚫고 조금 전까지 클로에가 있던 방에 도달했다.

“큭큭, 이런 무식한 방법은 처음 봤어.”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제이스는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카앙!

이번에는 자신의 목을 치러 날아드는 날카로운 검을 피하지 않고 받아쳤다.

“완력이 상당한데?”

“원래 그렇게 말이 많나.”

“내가 흥분하면 말이 좀 많아져.”

“어서 그 입을 닥치게 만들어줘야겠군.”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네.”

헨리는 검에 검기를 담고 그것을 제이스를 향해 맹렬히 휘둘렀다. 과연 건물의 잔해는 남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어마무시한 검기들을 제이스는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내며 역으로 헨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헨리는 오히려 이런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듯이 곧바로 대응했고, 두 사람의 대결은 그렇게 계속해서 서로의 힘만 낭비되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싸움.

그 싸움의 끝은 성의 지하에 남아있던 화약이 두 사람의 검기에 반응하여 터지면서 뜬금없이 마무리 되었다.

“내기는 내가 이긴 건가?”

“어림없는 소리.”

“아무리 너라도 이런 먼지 속에서 나를 잡는 건 쉽지 않아.”

그 말이 맞았다.

제아무리 헨리라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먼지 속에서 자신과 동등한 실력자를 잡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원하는 건 별거 아니야.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은 서로 묻고 가자.”

“싫다면.”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야? 그냥 우리 성녀님한테 괜한 불똥이 튀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야. 그럼 난 이만 간다. 아마 궁에서 또 볼 텐데 절대 아는 척하지 말고.”

그렇게 제이스는 제 할 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럼 오늘 회의를 주최한 스테판 공작께서 어서 그 이유를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1 황자인 오언은 여유롭게 자신을 훑어보며 기분 나쁜 눈빛을 보내는 샐리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말했다.

“최근 황궁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들어서 조금 늦었지만, 최고 귀족인 제가 나설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공작 그대는 지금 우리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나. 어서 선대 황제께서 명하신 대로 제국을 부흥시킬 방법이나 찾게.”

공작씩이나 되는 귀족이 황제 독살범의 처분을 둔 귀족들 간의 논쟁에 지금까지도 끼지 못했다는 것이 논란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1 황자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력들에게 제법 과중한 업무를 할당시키며 완성된 회의 체제였다.

샐리는 공작 정도가 되어서 그나마 황자의 횡포에서 자유로웠던 것이지, 조금이라도 밑으로 내려가면 일반 관료들이 해야 할 일까지 귀족들에게 떠넘긴 것이 보였다.

그렇기에 1 황자인 오언은 공작의 권한으로 귀족들을 집합시켜 회의를 여는 과감한 수단에 대해서는 아예 배제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원래라면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신진 귀족 세력들의 중심들이 전부 모여 샐리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행동은 오히려 공작을 의심하게 만드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대 황제 폐하의 독살범에 대한 처분이 내려지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귀족회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내 눈에는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걸세. 내가 말을 어렵게 한 건가?”

“아닙니다. 그저 저는 다양한 귀족 분들을 이 자리에 초청했는데 어째서 그런 의구심을 사게 된 것인지 조금 당황스러워서 그랬습니다.”

샐리의 말대로 지금 이 자리에는 샐리와 2 황자를 지지하는 세력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중도파는 물론이거니와 1 황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귀족들도 샐리의 초청에 응하여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서 이렇게 많은 귀족들을 모은 이유가 무엇인지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군.”

“그건 제국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두 황자님들께서도 이 자리에 행차해주셨으면 했는데, 직접 발걸음을 옮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국의 근간? 공작 그대 같은 사람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입에 함부로 올리는 거지?”

본인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한 발언임에도 샐리의 얼굴에는 조금의 구겨짐조차 없었다. 오히려 샐리는 오언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본인의 여유로움을 보였다. 그런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오언은 왠지 모르게 속이 뒤집히면서도 가슴 한 곳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성녀님까지 와 계십니다.”

그 말에 맨 앞의 상석으로 눈을 돌린 오언의 눈에는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클로에가 보였다. 이 정도로 커져 버린 판에서 제국의 근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까지 지금 이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설마 아니겠지.’

바로 앞에 귀족들뿐만 아니라 성녀와 2 황자까지 온 것을 보니 오언의 속도 슬슬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이 있다 보니 양심이 쑤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콰앙!

1 황자인 오언이 본인의 자리에 착석하기가 무섭게 거칠게 열린 문으로 헨리와 그의 기사단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회의장의 모든 이들이 무장한 기사들의 등장에 바짝 긴장하며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포박되어 끌려 들어오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자리에 편안하게 착석한 채로 이제부터 진행될 상황을 조심스러운 눈치로 관망했다.

“제가 오늘 급히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최근 제국의 수도가 황제폐하의 서거 이후로 많이 흉흉해졌는데, 제 남편이자 수도 방위대의 대장이신 헨리 크리스토퍼 경께서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범죄의 뿌리를 발견하셨고, 그 주동자들을 지금 이 자리로 끌고 온 것입니다.”

샐리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무리들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1 황자인 오언은 시선이 그들에게 닿자마자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파들을 쳐다보았다. 그들 역시 헨리가 끌고 온 카지노의 사장과 그 사장을 도와 카지노 내부에서 노예 경매와 투기장을 관리하던 이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저자들이 누굽니까.”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오?”

파리한 얼굴색을 감추기 위해 목청을 가다듬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확연한 떨림은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지 티가 났다. 한 노년의 귀족은 평소 깔보던 헨리에게조차 아주 정중한 톤으로 잡혀 온 한 무리 남성들의 신원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헨리는 애써 모르는 척하는 노년의 귀족을 향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곧바로 일갈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소.”

끝까지 발뺌하려는 듯한 모습에 헨리는 샐리 쪽을 힐끗 바라보았고, 샐리는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 가볍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냈다.

“지금부터 자백할 것이 있다면 나와서 전부 털어놓으시오. 그렇다면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 것이오. 그러나 끝까지 모르는 체하면서 버티겠다면 이쪽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오.”

헨리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손에 들고 있는 포박용 밧줄을 들고 있는 병사들의 수는 회의장에 모여 있는 귀족들을 연행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야닉의 존재는 분명히 귀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방금 했던 말 정말이오.”

“그렇소.”

단 한 번 이뤄진 대화에 1 황자인 오언의 얼굴에 구겨지며 핏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각양각색으로 일그러져 만들어지는 얼굴에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샐리는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즐거워하는 티를 낼 수 없었기에 1 황자 쪽을 조심스럽게 보면서 금방이라도 앉고 있는 의자를 부숴버릴 것처럼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는 그의 변화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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