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1화 (81/111)
  • #81

    “노크했어요?”

    “그게 예의라며.”

    “그렇긴 하죠. 물론 노크에 반응이 없다고 해서 막 들어오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는 해요.”

    “그건 노크해도 반응이 없는 너 잘못이야. 한 번 한 게 아니라 여러 번 했다고.”

    “정말요?”

    “뭐야? 그 눈빛은.”

    “하하, 아니에요.”

    이제는 이런 식으로의 장난도 편하게 칠 정도의 사이가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제는 이 대상이 샐리나 헨리에게만 국한되지 않게 됐다는 것이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디 가는데.”

    “그냥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나도 심심한데.”

    이 말은 자기도 따라가겠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저택 안에서만 머무르던 게 셀바의 성향상 용한 거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셀바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저택의 많은 이들이 희생양이 되기는 했다. 특히나 나이를 속인 귀여운 외모의 아이에게 하녀들은 그의 투정을 제법 잘 받아줬다.

    “저택 안에만 있는 것도 이제 심심해.”

    “그래도 안 돼요. 애초에 카지노로 들어가려면 신분증이 필요한데 셀바한테는 그게 없잖아요. 아니면 제국의 시민으로 여기서 아예 살래요?”

    “미쳤냐. 그냥 저택 밖으로 안 나가고 말지.”

    “그래도 셀바의 실력이면 그냥 몰래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귀찮아서 그래. 어차피 여기 있으면 네 하녀들이 다 해주잖아.”

    거의 상전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셀바이기에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카지노 안에 노예 경매를 하고 있다는 건데. 일반적인 손님들도 그 경매에 참여할 수가 있는 건가? 그리고 노예를 산다고 하면 그 존재를 아무도 모르게 어떻게 숨기는지도 궁금하군.”

    “귀족들은 애초에 마차로 움직이기에 노예를 사서 데리고 가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다만, 그 사간 노예를 본인들 집에 어떻게 숨기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 부분은 저희의 정보력으로도 쉽지 않아서.”

    “그 정도로 관리한다면 노예를 파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관리까지 신경 쓰는 모양이군.”

    “그렇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노예 경매는 제아무리 최근 수도 치안이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한 범주의 범죄였다. 그렇기에 그 체계가 어느 정도일지 감도 안 잡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렇게 무작정 잠입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헨리는 고민되기도 했다.

    “걱정 말아요. 우리는 가서 들어온 정보가 확실한 정보인지 확인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재밌는 계획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헨리는 주춤할 것이 없었다.

    그저 그녀를 믿고 페드로가 가져온 가방을 가득 채운 덥수룩한 수염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카지노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무슨 일로 오셨죠?”

    “여기 받으세요.”

    페드로의 말에 따르면 목숨을 걸고 잠입한 레귤러즈 중 하나가 구한 통행패였다. 검은색 바탕의 나무에 황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이 통행패는 카지노의 VIP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통행패가 바로 지금 이 카지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열쇠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카지노의 문 앞에서 손님을 받는 덩치 큰 남자는 샐리가 태연하게 건넨 통행패를 확인한 후 명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15번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대기하고 계시면 저희 직원이 찾아갈 겁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남자가 확인한 명단에는 위조된 신분으로 만들어진 헨리와 샐리의 가짜 이름이 적혀있었다. 들리기로는 카지노에 출입 횟수와 쓴 돈으로 VIP가 선정된다고 하던데, 카지노에 잠입한 요원이 정말 큰일을 해낸 것이었다.

    “카지노가 있다고 말만 들었지, 직접 오는 건 처음이군.”

    “그러게요. 기왕 온 거 게임이라도 한 번 해볼까요?”

    “방금 방에서 대기하라고 하지 않았소.”

    “하긴 그러네요.”

    게임을 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한숨 소리에 헨리는 너무 엄격하게 군 것이 신경 쓰였는지 방을 찾아가는 내내 샐리의 얼굴을 계속 살피며 눈치를 봤다.

    “왜 그래요?”

    “정 궁금하다면 한 게임하고 오겠소?”

    “그거 때문에 계속 신경 쓴 거예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못 느낄 리가 없는 샐리였다. 그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헨리가 귀여워 보여서 모른 체 했던 것인데, 정말로 아까의 단호함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여기 온 목적과 거리가 먼 게임을 한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도 되었음에도 말이다.

    “뭘 그런 걸 계속 신경 써요. 애초에 이런 게임에 관심도 없어요.”

    “그런데 아까는 왜….”

    “그냥 나중에는 못할 텐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런 거예요.”

    자신의 반응 하나하나에도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는 했지만, 언제 봐도 참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그래서인지 샐리는 얼굴 가득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본인 스스로 카지노에서 게임을 못 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본다면 전혀 아쉬움 따위 먼지 한 톨만큼도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다과를 준비해드릴까요?”

    “너무 달지 않은 선에서 부탁드릴게요.”

    “네,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가슴이 파여 정말 아슬아슬한 부위까지 보일 정도의 움푹 파인 옷. 각선미가 드러나다 못해 골반까지 다다른 것이 그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남자 손님들의 이목이 쏠렸다.

    “당신도 저런 게 좋나요?”

    “그랬다면 내가 저기 보이는 다른 남자들처럼 침이나 흘리면서 보고 있지 않았겠소.”

    헨리의 시선은 언제나 그렇듯 샐리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가끔은 주변 사물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거의 집착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헨리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샐리의 얼굴에 언제나 투영되었다.

    “흐음, 그렇구나.”

    “설마 날 못 믿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당신만큼 믿음직스러운 남편이 어딨다고.”

    칭찬은 사람이 아니라 고래도 춤출 수 있다는 말이 절로 생각이 날 정도로 헨리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갔다.

    “어쨌든 방에 들어가기 전에 카지노나 한번 둘러보는 것은 어떻겠소. 다과야 저쪽에서 알아서 준비해줄 터이니 이번 기회에 구경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요, 그냥 들어가요. 여기 놀러 온 것도 아니니까.”

    긴장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샐리 역시도 속으로는 화려한 조명과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분위기에 섞여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은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노예 경매.

    어쩌면 노예 경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건이 들어있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 때문에 다소 가벼워질 수 있는 정신머리를 지금부터 붙잡아야 했다.

    ***

    “신사분이 판테 님. 레이디께서 유니 님 맞으십니까?”

    방으로 찾아온 직원의 물음에 헨리와 샐리는 각각의 이름이 호명될 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신분을 증명했다.

    “저자 그냥 직원이 아니오.”

    “저도 그래 보여요.”

    날카로운 눈빛부터 시작해서 각이 살아있는 절도 있는 동작은 흡사 훈련받은 기사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특히나 헨리의 눈에 들어온 손의 굳은살은 그의 생각에 확신을 가져다준 결정적인 증거였다.

    “경매장에 참여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번이 처음 맞으십니까.”

    “맞아요.”

    “아, 그러면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경매장은 카지노의 VIP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오로지 카지노의 사장되는 사람이 직접 만나보고 노예 경매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순서로 정한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봤을 때 충분히 자신의 제안에 홀릴만한 사람을 구별한다고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대단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샐리와 헨리에게는 다소 김이 샐 수도 있는 방법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위험하지 않나요? 혹시나 노예 경매에 관심 없다고 한 사람이 정보를 유출할 수도 있는 건데.”

    “그 부분을 손님 분들께서 정말 많이 걱정하시죠. 그렇지만 그런 걱정이라면 그냥 넣어두시면 됩니다. 저희가 괜히 VIP만 선정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카지노에 빠져드신 골수 층만 선정해서 진행하는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말만 들었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치부를 들춰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다만 이 불법적인 행위가 제국의 수도에서 대놓고 성행하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 별다른 문제가 지금까지 없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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