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80화 (80/111)

#80

“그래서 카지노에 접근해서 선수를 치자는 말이오?”

황제 독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수도는 확실히 이전보다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특히나 수면 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으나 수도 방위대의 부단장 중 한 명인 주안이 살해당한 사건을 포함한 연쇄 살인 사건에 야닉을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렇기에 모두가 잠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땅히 나오는 결과물은 없었고, 1 황자와 2 황자 둘을 지지하는 세력 간의 다툼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1 황자 측에서는 이번 황제 독살 사건의 유력한 범인인 몰리를 당장이라도 군중들 앞에서 공개 처형해야 한다는 일관되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2 황자 측에서는 범인을 단정 짓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부분이었다.

양측 모두 정말로 진범을 잡을 생각으로 공방을 펼치는 것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말 그대로 의미 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등장으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진행되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예상은 했지만, 마법사를 준비시킬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오. 저쪽에서도 아예 이번 기회를 잡아서 단숨에 자리를 차지할 생각인 것 같소.”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마법사에 의해 제국이 완전히 뒤집히는 사건이 있었다. 본인이 황제 암살에 가담했다고 자백한 한 젊은 마법사는 본인의 마법을 이용하여 황제가 정부와의 잠자리를 갖는 침실에 사용되는 향에 독을 묻혔다고 밝혔다.

[제가 돈에 잠시 미쳤나 봅니다. 마법사로서 지켜야 할 것도 잊어버리고 미래를 살아가면 죄책감에 못 이길 것 같아서 이렇게 온 겁니다.]

본인 스스로 황궁 앞까지 찾아와 석고대죄하는 모습은 그 현장에 있던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감옥에 갇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몰리의 말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증언이었다.

몰리가 정부의 위치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확고한 권력을 얻고 싶어 했다는 것부터가 마법사가 밝힌 사건의 동기였다. 그런데 딱히 다른 곳에 줄을 댄 것도 없이 본인 단독으로 황제를 암살한 뒤에 황자들의 목숨까지도 넘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데, 밀어붙인다니 재밌네요.]

헨리에게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샐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제국이 망할 징조라도 보이는 것인지 참으로 한심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어차피 이 소모전은 앞으로 계속될 거예요.”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오.”

“문제는 이 사이에 저쪽에서 또 무슨 수를 쓸지도 모른다는 부분이죠.”

“2 황자께서는 따로 언질 준 바가 없었소?”

2 황자가 했다기보다는 클로에가 저택을 방문했을 때 그녀 역시도 현재 진행되는 상황에 많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냐는 물음에 샐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른 큰 사건으로 이 건을 덮어버릴 생각이라며 본인의 계획에 대한 가벼운 언질을 줬다.

“흐음,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당장은 없는 것 같네요.”

이 애매모호한 말뜻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칫한 클로에의 행동에서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어림짐작이었다. 그녀 특유의 입술을 달싹거리며 가만히 놔두질 못하는 특유의 동작이 있었다.

“아가씨 친구 분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친구?”

“알잖아요, 페드. 우리 둘만으로는 그 카지노에 들어가기 힘들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녀의 안내를 받고 들어온 페드로는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

“이것들은 다 뭐지?”

“뭐긴요. 수도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렇게 대놓고 드러낸 채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시죠?”

그 말에 헨리는 그 생각은 못 했다는 듯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잠입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헨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제가 미리 준비를 해놨죠.”

페드로는 샐리에게 정보를 건네준 다음 날부터 두 사람의 카지노 잠입을 원활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작업을 위해 정말 정신없이 발 벗고 직접 뛰어다녔다. 그리고 양손에 짐을 풀자마자 누가 봐도 변장을 위한 선글라스와 두터운 코트 등의 옷가지들과 함께 위조된 신분증이 함께 나왔다.

“이건….”

수도 방위대라는 조직의 수장인 헨리의 눈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위조된 신분증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수도에 출입하거나 거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신분증명서는 사람들의 얼굴과 출입 및 거주 목적 등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페드로가 가지고 온 신분증에는 수염이 덕지덕지 붙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거무스름한 피부의 한 중년 남자와 화려한 잿빛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성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것이 두 분께서 변장하고 나셨을 때의 모습입니다.”

헨리는 신분증 안의 샐리의 모습과 지금 현재의 샐리의 모습을 열심히 비교하고 있었다. 샐리 역시도 수염이 덥수룩한 헨리의 모습이 제법 새로워 흥미가 생긴 듯 보였다.

“그래서 이런 신분증은 도대체 어디서 만든 거지?”

잿빛 머리의 샐리 역시 색다른 매력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바라보던 헨리는 겨우 현실로 돌아와 본인의 업무로 다시 돌아왔다. 분명히 도움이 되는 부분인 것은 맞았으나 본연의 임무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위조 신분증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 그게….”

별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두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구한 위조 신분증이었는데, 페드로는 순간적으로 헨리가 어떤 사람인지 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하지만 제국을 수호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행위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아이들이 만든 겁니다.”

“뭐?”

“손재주가 좋은 길거리의 아이들은 이런 걸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런 걸 보고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사정이 있으니 선처를 해주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출처에 이번에는 반대로 헨리가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그런 기술은 누가 알려주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배우는 거죠.”

“알아서 배운다고?”

“이런 기술을 누가 알려주겠어요. 뭐, 애들을 부려 먹으려고 마음먹는 인간들이라면 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고급 기술을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길거리의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독점을 하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길거리에 나앉은 그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자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샐리는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페드로가 가져온 가방에서 자신이 쓰게 될 잿빛 머리칼의 가발을 쓰며 말했다.

“어때요. 어울려요?”

“사진을 봤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소.”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은 대답. 사진 속에서도 잿빛의 머리칼이 참 잘 어울리며 인형 같다는 생각을 한 헨리였다. 빨리 사진 속 샐리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싶어 하던 헨리는 바로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인형과도 같은 신비로운 존재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말, 정말로 잘 어울리는 것 같소.”

“흐음, 그렇게까지 말하면 염색이라도 해야 하나.”

“그건 아니요. 그저 그 머리칼도 인형처럼 어여쁘고 귀엽다고 생각할 뿐이지, 난 그대의 원래 머리색이 제일 좋소. 그러니 염색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칭찬과 집착을 하는 헨리의 눈에서 광기가 살짝 어려 있었다.

“하하! 과분한 것 같지만, 어쨌든 듣기는 좋네요.”

“정말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부은 것일 뿐이오. 부부 사이에 이런 칭찬이 어색할 것도 없지 않소.”

“그렇지만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건 그렇고 우리 남편도 좀 신경 써줬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그 와중에 샐리는 수염이 덥수룩해서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헨리의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의 날카로운 얼굴선에서 시작되는 잘생긴 외모가 아예 묻혀버렸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쉬움을 토로할 만했다.

물론 위험한 일을 앞에 두고 이런 여유를 부리며 깨를 쏟고 있는 것이 바로 앞에서 그 장면을 관전하고 있는 페드로에게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사람 없을 때나 할 것이지.’

첫사랑을 떠나보낸 안타까운 한 남자의 마음은 이내 커플을 향한 증오로 이어졌다. 그는 눈앞에 있는 눈꼴신 커플을 보며 속으로 험한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나 원 참 저것들은 또 저러고 있네. 가끔 보면 부담감이란 걸 느끼는지 궁금할 정도라니까.”

어느새 온 것인지 셀바는 큰일을 앞에 두고 긴장감도 없이 상황에 맞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깜짝이야, 언제 오셨어요?”

“노크해도 반응이 없길래 그냥 들어왔지.”

샐리의 재능은 말 그대로 미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습득력으로 셀바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흡수하여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성장해버렸다.

그럼에도 셀바는 처음 수도로 올 때 했던 말과는 다르게 계속 이곳 스테판 저택에 머무르며 지냈고, 샐리 역시도 그가 있어서 저택의 분위기가 적적하지 않아 기꺼이 더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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