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79화 (79/111)
  • #79

    괴한의 정체는 바로 제이스가 이끄는 어둠의 길드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케인이었다. 헨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싶어 하던 제이스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감정이 흐트러지는 타이밍에 맞춘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는 다소 안일한 생각이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애초에 마음가짐을 달리했어도 도망칠 틈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였으니 케인은 본인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되어있는 듯 보였다.

    “멍청하긴.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남 좋은 일을 하라고?”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다.”

    “큭큭, 그렇게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냥 죽여라.”

    제이스에 대한 충성심만은 진짜였다. 헨리가 말했던 대로 만약 고문실에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입에서 어떤 유의미한 단서도 나올 일은 없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헨리는 곧바로 날카로운 검 끝을 케인의 심장에 관통시키며 상황을 끝냈다.

    ***

    “당신, 괜찮아요?”

    꽤나 늦은 시간이었다. 이미 밖에는 어둠이 깔린 오래인데도 아직까지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헨리 때문에 샐리는 잠도 청하지 못한 채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고 있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어둠이 깊었지만, 남편 걱정에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이던 샐리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얼굴로 힘없이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오는 헨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바로 그에게로 달려갔다.

    안타까운 사건으로 부하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만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헨리의 공허한 눈동자에 자신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샐리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그대로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그대로 그녀의 어깨 부근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이대로 조금만 있어도 괜찮겠소?”

    이내 어깨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낀 샐리는 그대로 그의 목을 자신의 팔로 감싸 안으며 그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참는 듯 했으나 중간중간 구슬픈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니 샐리는 자신의 가슴도 덩달아 찌릿찌릿 아프기 시작했다.

    “하아, 미안하오. 그대의 앞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였구려.”

    조금 진정이 된 것인지 헨리는 눈물을 닦으며 잠긴 목소리로 샐리에게 사과를 건넸다. 누구보다도 그녀에게 있어서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는 본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당신도 지난번에 나를 위로해줬잖아요. 그때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나요?”

    “그렇지 않소.”

    “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이제 부부잖아요. 그러니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기대도 돼요. 당신에 비해 체구가 작다고 하더라도 힘이 없진 않으니까. 이 정도는 거뜬해요.”

    마치 근육을 자랑하는 것처럼 몸을 부풀려 보이는 샐리를 보자마자 헨리의 얼굴에서는 근심이 싹 가셔버렸다.

    “한 번 더 안겨도 되겠소.”

    “그럼요.”

    샐리는 곧바로 팔을 활짝 펼치며 언제든 자신의 품으로 뛰어드는 것을 허락했다. 그 모습에 안심한 헨리는 그녀에게 안겨 그를 짓누르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모두 덜어내었다.

    ***

    “그게 사실이야?”

    “어, 우리가 생각했던 게 맞았어. 1 황자는 개인 사유지를 사들인 것도 모자라서 사병을 양성하고 있었어.”

    헨리와 케인의 결투가 이제 막 결론이 났을 무렵. 제이스와 클로에 그리고 2 황자인 토니 크리스토퍼는 오늘도 황궁에 깊은 어둠이 깔리자마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황자궁에 모여 회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세 사람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1 황자의 목에 바로 칼을 들이밀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들이었다. 제법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었다는 소식에 2 황자인 토니의 목소리가 제법 들떠있는 것이 보였다. 반면에 클로에는 제이스가 늘어놓는 충격적인 비밀들에 아직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 온 거야?”

    “미끼를 던져놨지.”

    “미끼?”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클로에를 위한 추가설명을 위해 제이스는 한참을 쉬지 않고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 그대로 클로에와 토니는 알지 못했던 독단적인 계획으로 1 황자 쪽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제이스의 집요한 추적이 빛을 보는 결과였다.

    “그래서 무기랑 보석들을 사간 이들의 뒤를 추적했더니 1 황자에게 닿았다는 거네.”

    “정답이야. 보기 좋게 미끼를 물은 거지.”

    “그럼 그 무기랑 보석들의 출처는 어딘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구한 거야?”

    확정된 정황. 이것들은 클로에가 제이스에게 약속한 바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 역시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제국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죄 없는 다른 이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제국의 수도로 올라오는 길에 왓튼 왕국의 포로들이 길거리에서 당한 가혹한 수모들에서 시작된 참혹한 광경은 클로에가 온건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뜻에 동의하고 자신에게 맞춰준다는 약속을 한 제이스를 언제나 신뢰했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밝힌 말도 안 되는 수완에 대한 의구심을 반드시 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황궁 밖으로 자주 나갔던 것도 이거와 연관이 있는 거야?”

    “뭐, 그렇지.”

    제이스는 자신에게로 쏠린 클로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대답했다.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온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나온 사소한 말실수로 제대로 꼬리가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클로에가 얼마나 집요한지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어쨌든 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뿐이야. 나 믿지?”

    자신을 신뢰하느냐는 제이스의 되물음에 클로에는 치사하다며 볼을 부풀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제아무리 수상한 냄새가 나더라도 더 파고들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수도에서 그런 일을 대범하게 벌인다니 놀랐어.”

    “그러게. 그것도 귀족 양반들도 드나드는 카지노에서 말이야.”

    “흐음, 스테판 공작도 이쪽에 대한 정보가 있던 건가.”

    “스테판 공작?”

    제이스는 샐리와 마찬가지로 2 황자인 토니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신기할 만큼이나 샐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단순히 본인의 목적 달성을 원활하게 해줄 허수아비 인형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토니는 지금 진행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 관여하는 척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런 토니의 입에서 나온 샐리의 이름에 제이스의 주목도는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스테판 공작과 만났다고 했었지. 그녀도 1 황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어?”

    “응, 생각해 보니까 너한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네. 그녀도 우리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아. 본인이 1 황자와 관련된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어떤 식으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다만, 황제 폐하의 죽음에 의문이 남는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야.”

    그 말에 제이스는 괜히 걱정했다는 듯 가볍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깊이 생각하지 마. 그 정도 의혹은 아마 황궁 안에 모든 이들이 말만 안 할 뿐, 다 가지고 있는 거니까.”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무슨 질투.”

    “뭔가 탐탁지 않아 보이길래.”

    “그런 거 아니야.”

    “정말?”

    “그래,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좀 쳐다보지 마.”

    실제로 제이스는 샐리에 대해서 그다지 후한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능력이 있는 것은 확실했으나 정말로 눈여겨볼 만한 정도인지는 아직 아리송했다. 물론 그녀를 마주쳤을 때 느껴졌던 묘한 위화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세한 건 내가 더 조사해보고 얘기해줄게.”

    “위험해 보이는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다고.”

    “그래도 조심해줘.”

    “응, 조심할게.”

    자신의 옷깃을 붙잡으며 절절한 감정마저 느껴지는 걱정스러운 말투에 제이스는 끝내 조심하겠다는 말로 클로에를 달랬다. 이런 역할이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그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클로에가 걱정하는 것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럼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자. 추가되는 정보가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

    “그래, 고생했어.”

    토니는 아주 흡족한 정보였다는 듯 얼굴 전체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황자궁을 떠나는 제이스와 클로에의 뒤를 지켜보며 침대에 누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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