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77화 (77/111)

#77

“수습은 잘했나.”

겨우 감정을 추스른 야닉의 보고를 들은 헨리는 목이 메오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물었다. 이제 겨우 수도방위대라는 조직의 출범이 알려진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은 결코 좋은 이목이 쏠릴 리 없었다.

때마침 황제의 죽음이라는 더 큰 비극이 발생하여 주안의 사건은 사람들에게 퍼지지 않고 조용히 묻을 수 있었다.

“제가 제대로 처리한 것이 맞습니까.”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함께 살아남은 전우의 유언대로 야닉은 주안을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바다가 보이는 낭떠러지에 묘비를 마련했다. 그러고 나서 발론과 그의 가족들의 시신도 수습하고 난 뒤에 부하들의 입단속까지 마쳤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부하들의 반응은 뻔했다.

주안은 그만큼 기사단의 모든 이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던 기사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야닉은 일 처리를 제대로 한 것이냐는 헨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수도 방위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비밀스럽게 사건 현장을 수습한 야닉의 솜씨는 원래대로라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헨리는 주안을 그렇게 만든 범인을 잡아 제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까지 이번 사건에 대한 수습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슴속에 새기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야닉을 포함한 부하들 앞에 당당하게 설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고생 많았다.”

“위치는 어딘지 아시지요?”

“그래, 입궁하고 나서 밤에 찾아갈 생각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주안의 묘에 찾아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황제의 죽음은 그가 발걸음을 황궁으로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

“어서 오시오, 헨리 경. 그리고 스테판 공작.”

황궁에 도착하니 2 황자인 토니 크리스토퍼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 역시도 이번 황제 독살 사건과 관련해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샐리와 헨리는 곧바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였고, 샐리는 말로만 듣던 2 황자를 힐끗 보며 관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큰일에 어울리지 않는 유약한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에서 약간의 신뢰감이 떨어졌지만, 어쨌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2 황자의 힘이 필요했다.

“죄인은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나한테 물어봐도 알 도리가 없네. 형님께서 배후를 밝히겠다고 직접 심문하신다고 하니.”

“죄인의 심문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새로 조직된 수도 방위대의 대장이자 제 남편인 헨리 경의 담당입니다.”

“알고 있네만 형님께서 저리 나오시는 데 내가 어찌 막겠나.”

아버지인 황제가 죽은 일에 분노하며 눈이 뒤집힌 1 황자를 막아낼 용기가 없었다는 말에 샐리는 정말 이 황자가 제국을 바꿀 뜻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려고 한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누가 봐도 1 황자의 목표는 자신의 경쟁상대인 2 황자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굳이 사건의 진위를 밝히지 않아도 이미 샐리의 머릿속에서는 이번 독살 사건과 관련한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황자 전하, 저는 죄인을 심문하는 곳으로 바로 가봐야겠습니다.”

샐리가 말했던 대로의 상황이 벌어졌기에 헨리는 한시라도 빨리 황궁의 지하 감옥으로 가야 했다.

“그러시게, 그리고 스테판 공작은….”

“오늘 제가 입궁한 것은 2 황자 전하를 뵙기 위함입니다.”

“그렇군. 클로에에게 얘기는 들었네. 하지만 때마침 신전의 신관들이 방문했기에 그녀는 만나기 힘들걸세.”

오히려 이쪽이 샐리에게는 더 도움이 되었다. 제3자가 함께 있는 것과 일대일로의 대면이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하는 데 더 수월하니 말이다.

“그래서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나?”

다른 방식으로 연락을 취하거나 하지 않았기에 몰랐으나 2 황자인 토니는 스테판 공작가의 지지에 목이 말라 있었다. 이미 1 황자 쪽에 유력 귀족들이 많이 붙어있었기에 샐리의 지지는 토니에게 매달릴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급한 건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두르기보다는 다른 이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듯한 안일한 태도는 역시나 샐리의 눈에는 그다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은 해보았으나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어째서 날 찾아온 거지?”

“그야 제가 모셔야 할 분이 어떤 분인지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자신을 지지해주기로 결정도 내리지 않았으면서 왜 찾아왔냐는 2 황자의 뉘앙스에 샐리는 그만 한숨을 내뱉을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분명히 클로에의 말을 들었을 때는 나름대로의 주관과 함께 전면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건 들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앉아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말 그대로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그래서 직접 본 소감은 어떻지?”

“나쁘지는 않네요.”

“푸핫, 황자한테 그리 당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네를 포함해서 몇 없을 걸세. 오히려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마음에 드는군.”

마음속으로 샐리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 방안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만큼 그녀의 눈에 비친 2 황자 토니는 본인이 황제로 이끌어줄 만한 재목이 아니었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머리로는 큰 꿈을 그리고 있는 것에 비해 현실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그러나 샐리가 성에 차지 않는 2 황자가 내준 차를 마시며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1 황자인 오언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그의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독살당한 사건. 황자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잘 아시네요.”

“나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있지만 단순히 심증만으로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순식간에 잡아먹힐 거예요. 1 황자님에 대해 잘 아신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이렇게 손 놓고 있으셨으면 안 되죠. 하다못해 본인이 먼저 나서든가 아니면 죄인을 심문하는 자리에 계셨어야죠.”

예상치 못했던 샐리의 일갈에 토니는 많이 당황한 듯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반박할 것도 없이 전부 다 맞는 말이었기에 토니는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들고 있던 찻잔을 겨우 입으로 가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공작의 말이 전부 맞아. 아직도 나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군.”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는 것은 좋은 태도였다. 그러나 그때가 이미 많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에 샐리는 더는 2 황자인 토니에게 기대를 걸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가 정말로 황제가 될 만한 재목이었다면 방금 했던 말들 모두를 이미 실천하고 난 뒤였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샐리는 2 황자가 지금 여기서 본인과 차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마 헨리가 있었기에 방금 본인이 말했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었다.

“그대가 보기에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 보군.”

“하지만 황자님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특별한 힘이 있죠.”

“그게 뭐지?”

“황족이라는 혈통이요. 지금은 그것만 있어도 충분해요. 다만 이 일을 전적으로 저에게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2 황자의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사건은 오히려 이쪽에서 이용해볼 여지도 충분했기에 샐리는 자신 있게 본인에게 전적으로 맡겨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었다.

“공작의 계획은 뭐지?”

“아무래도 수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요. 전 독살범을 1 황자 전하로 보고 있거든요.”

“그 발언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뭐 어떤가요. 결국 둘 중 하나는 나락으로 가야지 끝날 싸움인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공작 그대는 정말 대단한 것 같군. 하지만 조심하도록 해. 말 그대로 황족이 엮여있다면 그만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

토니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 샐리를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특히나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꺼내는 담력은 확실히 배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공작의 지지를 얻으려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군.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지?”

“딱히 뭘 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저 나중에 가면 제 의견에 힘을 실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알겠네, 그럼 그대를 믿고 기다리지.”

토니는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는 샐리의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오히려 본인은 저런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샐리는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이런 인재는 꼭 붙잡아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럼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샐리는 이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었다. 이번 일은 1 황자가 벌였다는 것이 그녀의 직감이 강하게 말하고 있었고, 설령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엮어서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문제는 2 황자 역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어쨌든 지금 필요한 것은 제국의 황자라는 위치와 발언권이었으므로 그것을 확보한 지금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은 것이기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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