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76화 (76/111)

#76

“그래요, 그럼.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죠.”

“기다릴 필요가 있나. 지금 당장 저것들의 목을 베어버릴 수도 있소.”

헨리는 날카로운 검을 한 수인의 목에 갖다 대며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샐리 역시도 마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인들을 하찮게 내려다보며 비웃었고, 결국 늑대 수인들은 두 사람의 기세에 밀려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너 정말 강하더군.”

언령이 풀리자마자 우두머리 수인은 헨리에게 다가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헨리의 강함을 칭찬했다. 뒤끝이 없는 깔끔한 마무리에 헨리 역시도 좋은 싸움을 했다며 우두머리 수인을 향해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부하 수인들은 여전히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정신력부터가 남다른 듯 보였다.

“이렇게 인정하니 놀란 모양이군. 아까도 말했지 않나, 난 부하들을 말릴 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저 녀석들은 아직 철이 덜 든 것뿐이니 당신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좋겠군.”

아까의 난폭함은 어디로 가고 아예 다른 늑대가 된 것 같은 온화한 말투에 야르만족을 포함해 샐리조차 약간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헨리와 우두머리 수인의 대화를 지켜봤다.

“저 아가씨에게도 대신해서 사과를 전해주면 좋겠군.”

“그렇다면 약속대로 이곳을 떠나는 건가?”

“그래야지. 늑대는 한번 말한 건 꼭 지킨다고. 안 그랬다가는 큰 화를 당하거든.”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특히나 방금 우두머리 수인의 말은 왠지 모르게 그의 왼쪽 눈을 흉측하게 덮고 있는 흉터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예전에도 객기를 부리다 큰 화를 당한 적이 있거든.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 혹시라도 그 녀석을 보게 된다면 조심하도록 해.”

“그게 누군 줄 알고.”

“너라면 느낄 수 있을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헨리는 가볍게 웃어 보인 뒤 우두머리 수인과의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요?”

“그렇소.”

수인들이 완전히 떠난 것이 확인되고 나서야 야르만 족의 전사들은 안심한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가씨 덕분에 살았소. 야르만 족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요.”

그리고 존은 그들의 골칫거리였던 수인족을 쫓아내 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허리를 숙여가며 표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정석과 관련된 문제였다.

신전까지 개입된 상황에서 이곳은 더 이상 안전지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여전히 군사를 움직이는 데 있어서 신중한 상황이지만, 이곳에 묻혀있는 대량의 마정석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괜찮다면 손님을 한 명 초대해도 될까요?”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제 스승님이요.”

헨리의 물음에 샐리는 언제 챙겨온 것인지 손에 들고 있는 동그란 구슬을 보여주며 말했다. 손님을 초대한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그 구슬에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보였다.

“마정석과 관련해서 분명 우리에게 해답을 내줄 수 있을 거예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존은 이내 샐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윽고 샐리는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곧바로 바닥에 던져 깨트렸다. 그러자 깨진 구슬에서 포탈이 생성되더니 셀바가 한 안경을 쓴 남자를 데리고 등장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내 조수 녀석이야.”

“조수요?”

“그럼 내가 일일이 집안일에 신경을 쓰겠어? 이 녀석이 마법은 형편없어도 머리는 좋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마린이라고 합니다.”

“전 샐리 스테판이예요.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종이는 뭔가요?”

“아, 이건….”

쑥스러움을 타는 듯 몸을 꼬던 마린은 조심스럽게 샐리에게 가지고 있던 종이 뭉텅이를 건넸고, 샐리는 그것을 펼쳐 헨리와 함께 보기 시작했다.

“이걸 당신이 생각한 건가요?”

놀랍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마린은 부끄럽다는 듯 시선도 제대로 못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와 헨리는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 어마어마한 설계도에 감탄하는 동시에 본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만한 묘수를 떠올렸다.

***

“아가씨, 큰일 났어요! 큰일!”

신혼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낭만도 달콤함도 없는 여정이었으나 충분히 사랑과 애정이 필요 없을 정도의 큰 값을 얻었기에 샐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저택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 헨리와 셀바의 마차에서 다툼으로 약간 지친 기색이 얼굴에 감돌고 있었지만, 이제는 가볍게 티격태격하는 것에서 끝나니 굳이 말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확실히 수도 안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뭐랄까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는 느낌과 함께 흐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세 사람 역시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마차의 창문을 통해 계속해서 바깥 상황을 주시하며 저택까지 왔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어요!”

“뭐?”

샐리와 헨리는 날아든 충격적인 소식에 너무 놀란 나머지 메리의 어깨를 한 쪽씩 붙잡으며 되물었다. 안고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수도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무거운 소식이 날아들었으니, 두 사람의 반응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이야?”

“네, 정말이에요.”

“그렇게 건강에 신경을 쓰던 사람이?”

얼마나 본인의 안위를 걱정하면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언제 어디에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호위를 두며 생활했다. 또한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체크를 매일매일 진행했다.

그런데 그런 황제가 죽었다니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러나 아직 전해줄 소식이 남아있는 듯한 메리의 사족에 샐리와 헨리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황제 폐하의 사인은 독살이고 지금 그 독살범으로 지목된 사람은 황궁의 감옥에 갇혔다고 해요.”

“독살? 그 황제가 독에 당했다고?”

“네, 그 독살범을 1 황자 전하께서 잡아넣으셨어요.”

“그래서 그 독살범이 누구야?”

“황제의 정부 되는 사람이요.”

메리의 입에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에 샐리와 헨리는 다시 한 번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란 얼굴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한 번 놀랐고, 그 범인을 잡았다는 게 1 황자라는 사실에서 피어오르는 구린내가 나는 상황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소.”

확실히 그 철두철미한 황제가 독에 당했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당연히 황제의 정부인 몰리 캐스터였다. 그 누구보다도 황제가 방심할 대상이자 황제에게 가장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지금 발생한 사건에서 풍기는 구린 냄새는 바로 범행 동기였다. 굳이 지금도 충분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이가 위험을 감수하고 황제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누리고 있는 그 풍족함은 모두 황제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이외에 발표된 내용이 있나?”

“최근 황제가 하녀 하나한테 눈독을 들이면서 질투심에 눈이 먼 황제의 정부가 벌인 범행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이에요.”

“허,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건가.”

헨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대놓고 지금 상황을 비웃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소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가씨 지금 밖에 야닉이라는 분께서 빨리 헨리 경을 봬야 한다고 하시는데 어떡할까요.”

“들여보내.”

하녀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저벅저벅 넓은 보폭으로 걸어오는 야닉의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눈 밑에 남아있는 눈물 자국은 누가 봐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서 헨리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인지했다.

“대장….”

“무슨 일이야.”

“주안이 죽었어.”

그 말에 야닉에게 물을 건네주려던 샐리는 손에 들고 있던 물 컵을 놓쳤다. 공중에서 떨어진 컵은 바닥에 닿자마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와장창 깨졌다.

“괜찮소?”

“전 괜찮아요. 그보다 주안이 죽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죠?”

“제 말 그대로입니다.”

침통해진 야닉에게 더 이상의 추가적인 설명을 듣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그렇기에 샐리는 메리와 함께 자리를 비켜주며 헨리에게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도대체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야닉의 바르르 떨리는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전우의 죽음을 아직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락이 두절되어 주안의 마지막 행선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가 참혹한 살인 현장 속에 주안이 쓰러져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깨끗하게 급소만 노린 것이 보통 실력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당한 것이 설명되었다. 애초에 어중간한 실력자는 주안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수많은 대련을 이어왔던 야닉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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