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75화 (75/111)
  • #75

    “크르르, 처음 보는 인간들이 있군. 냄새를 보아하니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괴수의 정체는 바로 늑대 수인들이었다. 늑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맹수의 눈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으르렁대는 입에서 보이는 매서운 이빨은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샐리는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날랜 움직임에 조금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덤덤한 얼굴로 수인들을 썰어버리는 헨리와 존을 보니 과연 저 괴수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앞으로 전진하다 보니 수인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늑대가 나타나 그들의 앞을 막아 세웠다.

    “당신이 이 수인들의 우두머리인가요?”

    “너 인간 여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수인은 가냘프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의 주인이 여자였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피와 땀이 튀는 싸움터에 여자의 존재는 필요 없다는 뉘앙스의 질문에 샐리의 눈썹이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그야 당연히 당신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죠.”

    “여자인 네가 우리를 퇴치하겠다고?”

    “그건 두고 보시죠.”

    자신만만한 샐리를 앞에 두고 우두머리 수인은 코웃음으로 그 자신감을 맞받아쳤다.

    “두목, 저 여자 심상치 않습니다. 혹시 예전의 그 여자와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요.”

    “닥쳐.”

    경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부하의 이야기에 우두머리 수인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나 부하가 언급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에 우두머리 수인은 왼쪽 눈의 흉터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자네가 우두머리라면 이야기는 쉽겠군.”

    수많은 수인 무리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헨리만이 유일하게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가 우두머리 수인에게로 다가갔다.

    “호오, 너는 강한 인간이군.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알아봐 주니 고맙군. 그야 간단해. 너와 나 일대일로 승부를 보는 거지.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동굴 안에 있는 마정석이란 건 알고 있어. 그러니 이긴 쪽의 말을 따르는 것이 편하고 좋지 않겠나.”

    존에게 들었던 늑대 수인의 특성. 그들은 강함에 집착하며 강해 보이는 게 있다면 그게 누구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머리를 조금 굴려 늑대 수인이 강함에 집착하는 특성을 이용해 일대일의 승부를 유도했다.

    “큭큭, 재밌군.”

    예상대로 우두머리 수인은 흥미롭다는 듯 그의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헨리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헨리가 제 상대로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이내 군침을 삼키며 어슬렁어슬렁 헨리의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딱히 주고받은 신호가 없었음에도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검과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나는 굉음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강풍이 불어왔다.

    확실히 우두머리 수인은 다른 늑대 수인과 비교했을 때 그 운동능력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아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느냐. 크하하!”

    날이 바짝 서 있는 공격을 휘두르는 우두머리 수인은 벌써 승기를 잡은 것처럼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지금 상황을 놓고 본다면 헨리는 수인의 강력한 공격을 막는 데 급급해 보였다.

    다른 수인들의 환호와 함께 함께 온 야르만 족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상황 속에서 샐리 하나만이 별다른 걱정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곧 결판이 나겠네요.”

    “하아.”

    “전 헨리가 이길 거라고 말하는 거예요.”

    “진심이오?”

    존은 걱정이 되는 나머지 정신을 놔버렸냐는 얼굴로 샐리를 쳐다봤다.

    “굳이 대응해줄 필요가 없으니 막고만 있는 거예요. 어차피 저대로 계속되면 상대가 알아서 틈을 보일 테니깐요.”

    샐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헨리는 검의 손잡이로 우두머리 수인의 날아오는 왼팔을 쳐낸 뒤 자신의 왼손으로 칼등을 부드럽게 밀며 우두머리 수인의 목으로 가볍게 자신의 검을 밀어 넣었다.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연계 동작.

    조금 전까지 기세를 올리던 우두머리 수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샐리는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헨리의 아름다운 검술에 흐뭇한 미소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두목이 졌다고?”

    “이건 말도 안 돼! 너희들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녀석을 덮쳐!”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우두머리 수인의 패배를 부하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힘이 전부인 그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처참한 패배가 곧 본인들의 패배로 연결되기에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젠장,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이는군.”

    존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바짝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달빛이 그리 밝지 않은 밤이라 그런지 늑대 수인들의 붉은 안광이 더 흉흉하게 느껴지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분 나쁘게 으르렁대는 소리와 함께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들은 우두머리의 패배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려는 것이 확실했다.

    [언령이요?]

    [그래 타인의 행동을 네가 명령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야. 그런데 너는 좀 특별한 사례인 게 워낙 강대한 마력이라 과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다. 일반적이라면 인간에게만 통할 텐데.]

    샐리는 마력을 빠르게 순환시키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연이어 하며 몸 전체에 퍼져있는 마력을 한곳으로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마력이 모이는 곳은 인간의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기관인 심장이었다.

    순식간에 한데 모인 강대한 마력에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런 위험한 상황에 이런 통증 따위에 약해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뭐 하는 거야, 아가씨. 아까 말했던 그 힘으로 어떻게 좀 해 봐.”

    존은 다급하게 샐리를 불러봤지만 집중해서 호흡을 해야 하는 샐리는 그의 다급한 부탁에 곧바로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헨리 역시도 당장 움직임을 취하기에는 바로 앞에 우두머리 수인을 제압한 상태로 계속해서 견제해야 했다.

    “어이, 네 부하 녀석들을 멈춰.”

    “저건 나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무엇보다도 부하 녀석들은 네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넌 아까 내 목을 바로 쳤어야 했어. 내가 네 제안에 따라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겠지.”

    우두머리 수인의 말대로 헨리는 완벽한 외통수에 걸렸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샐 리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본인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상황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마침내 준비가 끝난 샐리는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사자후와도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능력인 언령을 사용했다.

    “멈춰!”

    짧고 굵은 한 마디.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샐리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보는 이들의 시선은 당황스러움, 비웃음, 황당함 등 각각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푸하하, 저 계집이 드디어 미쳤나 보구나. 하긴 이런 상황에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겠지.”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수인들에게 점차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 이거 뭐야. 야, 나 못 움직이겠는데, 와서 나 좀 도와줘.”

    “자, 잠깐. 나도 마찬가지야. 내 몸이 이상해.”

    조롱과 웃음은 순식간에 곡소리로 바뀌었다. 샐리의 언령에 걸려든 수인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아직 힘 조절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언령에 걸린 것이 수인들만이 아니었다는 부분이었다.

    “이거 아가씨가 한 거야?”

    함께 온 야르만 족의 전사 중 하나가 안간힘을 쓰다 지쳐 방금 큰소리로 명령을 내린 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요.”

    “근데 이거 우리는 풀어줘야지.”

    “아직 조절이 잘 안 돼서….”

    옴짝달싹 못 하는 수인들의 모습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힘이 아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샐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오.”

    “헨리?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는 거죠?”

    “아슬아슬하게 오러의 힘으로 방어했소. 조금만 늦었어도 나도 똑같은 처지가 됐겠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으로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소.”

    그의 말처럼 다른 사람도 아닌 헨리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 달랐다. 조금 전까지 샐리를 비웃으며 승기에 취해있던 수인들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서서히 얼굴에 공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 대화할 생각이 드나요?”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수인들은 샐리의 질문에 난폭하게 울부짖으며 반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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