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커헉!”
평소 감정이 절제된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진즉에 눈치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날아온 화살에 맞은 콘이 고통스러움에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자신의 품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 광경은 이윽고 들려온 웃음소리와 함께 제이스의 머릿속에서 끈을 하나 끊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저거 정말 우리가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나본데?”
“큭큭, 아직 어려서 그런지 멍청하네.”
가슴팍에 박혀 있는 인장에서 지금 웃고 있는 이들이 제국군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냐.”
“왜 이런 짓을 한 거냐니.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감히 제국의 의지에 반하는 짓을 했으면 그 죗값을 달게 받아야지.”
“제국의 의지? 그게 대체 뭔데.”
제이스는 단테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어찌나 이를 세게 물었는지 입안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날 정도였다.
“우리 제국은 여신에게 계시 받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그렇기에 오러라는 특별한 힘에서도 다른 이들보다도 더 강력하지.”
“축복? 너희는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이 여신이라는 자가 너희를 축복하기 위해 내린 힘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저기에 걸린 반동분자에게 스승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하니 너 역시도 단단히 그 개 같은 사상이 머리에 박혀 있는 모양이구나. 이 몸이 친히 네 머리를 땅에 떨어뜨려 제국의 위신을 살려주마.”
***
“제이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제이스를 기다리던 클로에는 이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축 늘어진 콘을 안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달려 나갔다.
“이 애 좀 좋은 곳에 묻어줘.”
콘의 시체를 클로에에게 넘긴 제이스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대로 터덜터덜 앞으로 나아갔다.
“기다려!”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안 클로에는 다급히 제이스의 팔목을 낚아채 그를 겨우 멈춰 세웠다.
“어디로 가는 지만 얘기해줘.”
“제국.”
“제국?”
“어, 그냥 가서 다 쓸어버릴 거야.”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제이스는 이성적인 판단 자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클로에의 눈에는 언제나 투명하던 그의 기운이 이내 불같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바로 복수심이었다.
“나도 같이 가.
“나 혼자 할게.”
“싫어. 그럼 나도 이거 안 놔줄 거야. 내가 도와줄게.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이 손을 뿌리칠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버리면 다시 혼자가 되어버리는 클로에를 생각한다면 그 역시 이대로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점을 노려본 클로에의 말이 먹힌 것인지 제이스는 그제야 발걸음을 멈췄다.
“좋은 방법이란 게 뭔데.”
“일단 나한테 다 얘기해줘. 안에서 뭘 본 건지 전부 다.”
안에서의 끔찍한 광경은 제이스의 말을 통해 그대로 클로에에게 전해졌다. 특히나 제국군 하나를 살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전부 전해 들은 클로에는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제국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은 클로에가 제국의 황제를 찾아가 자신이 가진 힘을 통해 거래를 하게 되는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
***
아우우우.
기분 나쁜 맹수의 울음소리에 자신들을 야르만 족이라고 소개한 이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고기 수프를 먹으며 존과 헨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샐리는 이내 동굴 안에 깔린 긴장감 넘치는 적막과 함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무기를 챙기고, 아이들을 동굴 안쪽으로 대피시키는 것에서 심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지금 들린 울음소리와 연관이 있는 건가요?”
“그래. 너도 안쪽으로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놈들은 눈에 뵈는 것이 없어 위험하거든.”
“괴수라도 되는 건가?”
“하필이면 귀한 손님이 온 날을 맞춰 찾아오는군. 헨리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거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존의 얼굴에서도 전에 볼 수 없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릴 건가?”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
“그렇다면 피해가 생기지 않나.”
그럼 뭐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냐는 듯 반문하는 존의 눈빛에 헨리는 씨익 웃어 보였다.
“자네 설마….”
“우리가 맞이하러 가지. 최정예로 구성된 인원 몇 명만 추려서 출발하자고.”
“그렇다면 우리가 나간 사이에 저것들이 동굴을 습격할 경우의 수도 생각해야 하네.”
“걱정할 것 없어. 그런 엄두조차 내지 못할 테니까.”
부족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존은 고민이 된다는 듯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믿겠네.”
그러나 존 역시도 헨리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 그가 제안한 전술에 대해 동의했다. 여전히 위험한 부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본다면 정말로 믿고 따라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선 것 같았다.
“그럼 의견이 통일됐으니 가볼까요?”
그때 끼어든 목소리에 헨리와 존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샐리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아가씨도 가겠다고?”
두 사람 모두 샐리의 말이 정말 황당하게 다가온 것인지 말이 겹치자마자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이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샐리 쪽을 한 번 더 쳐다봤다.
“안 되나요?”
“당연하지 않소. 어느 미친 사람이 자기 부인을 괴수가 있는 곳으로 보낸다는 말이오.”
“저 혼자 가겠다는 게 아니라 같이 가자는 거죠.”
“그거나 이거나 다를 것도 없지 않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샐리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가끔 이런 위험한 일을 일부러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샐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 지금은 샐리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나를 한 번 설득해보시오. 그대가 괴수를 잡으러 가는 데 같이 가야 하는 이유를 한번 말해보시오.”
“제 힘을 실험해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요.”
셀바의 지도를 받은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여신의 계시를 받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단기간의 성과로 증명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녀가 힘을 발현하여 능력을 사용해봐야 하는 실전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괴수를 퇴치해야 하는 상황이 나왔으니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것이 샐리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그대의 마음은 알겠으나 다른 기회가 또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번만큼은 헨리도 호락호락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긴 논쟁까지 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굽히며 샐리의 말을 대부분 들어줬었다. 그러나 뛰어난 전사들로 구성된 야르만 족마저 긴장할 정도의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이라면 샐리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당신이 있잖아요.”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언제나 마지막에 헨리를 무너뜨렸던 것은 샐리의 애교와도 비슷한 칭찬이었다. 그러나 지금만큼 단호한 상태의 헨리에게는 이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자자, 내가 정리해주지. 아가씨가 말하는 힘이라는 게 뭐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소모전에 결국 보다 못한 존이 중재를 자처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존은 샐리에게 최대한 간단하게 요약된 설명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