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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69화 (69/111)
  • #69

    헨리의 예상대로 항구 쪽을 뒤지다 보니 여자를 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녀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미지의 세력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며칠 항구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새벽에 부리나케 밀항을 통해 항구를 빠져나가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편지 내용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헨리가 이들을 보호하려 하고 존과의 친분이 있는 거로 봐서 샐리는 잘만 하면 이들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밀항이 아닌 그 여자를 지키는 미지의 세력은 분명 어딘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났기 때문에 유용한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샐리의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성기사와 맞설 정도의 실력자라면 인재를 찾는 샐리에게는 더없이 군침이 돌만 한 요건이었다.

    “그 문제는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해주지. 자,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마정석이야.”

    “사방에 박혀 있는 초록색 빛을 내뿜는 돌들이 전부 마정석인 건가요?”

    샐리의 말에 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한 동굴의 지하에는 바닥과 천장 그리고 벽면까지 사방에 초록색의 밝은 빛을 내뿜는 돌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깊숙한 곳에서까지 빛이 나고 있었다.

    “이건….”

    셀바의 설명에 따르면 마정석의 용도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무기를 위한 용도. 에너지를 위한 용도. 마도구를 제작하기 위한 용도.

    그중에서 이 육각형에 초록빛을 뿜어내는 마정석은 에너지를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마정석에 해당되었다. 이 마정석을 녹여 연료로 사용한다면 샐리는 어쩌면 현 스테판 공작가의 문제 중 하나인 사업으로 인한 빚과 관련된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내 주안 덕분에 이렇게 밤길도 안전하게 다닌다니까.”

    “요즘 수도에서 흉흉한 일이 있는데 조심하셔야지요.”

    제국의 수도에 어둠이 깔리고 오늘따라 유독 한산한 길에서 주안은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은사이자 과거 사관학교의 선생인 발론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론은 그가 이렇게 떳떳하게 기사로서 생활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초석을 닦아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주안은 언제나 발론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었고, 수도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곧바로 찾아간 것이었다.

    “자네가 이렇게까지 훌륭한 기사가 될 줄은 몰랐네.”

    “전에는 제 자질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자네가 워낙 힘들어하기에 해준 말이고.”

    “여전히 짓궂으시군요.”

    “하하하, 그냥 술기운에 취한 늙은이의 농담이라고 생각하게. 난 자질이 없는 놈이라면 그렇게 매달리지 않았어.”

    어린 시절의 주안은 지금보다도 더 말랐었다. 기사의 기본 중 하나인 근력과 관련된 부분에서 말 그대로 낙제에 가까운 점수였던 그는 언제나 동기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벽을 느껴 도망치려던 그를 일깨워준 인물이 두 사람이었는데, 바로 헨리와 발론이었다.

    “헨리 경은 잘 지내고 있나?”

    “요즘 행복해 하시더군요.”

    “하하하, 역시 사랑이란 건 좋은 거야. 그렇게 무뚝뚝한 인간도 한순간에 사랑꾼으로 변하다니 말이야.”

    “교수님께서도 단장님을 가르치셨습니까?”

    “내 소관은 아니었지. 근데 워낙 사관학교 때부터 유명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었던 건 맞아. 여하튼 잘 지낸다니 다행이구먼.”

    지금은 기사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은퇴한 사람이었지만, 수도의 정치 상황에는 언제나 귀를 밝히고 있던 발론이었다. 그 때문에 발론은 헨리의 기사단이 수도에 자리를 잡은 것을 넘어서 수도 방위대라는 조직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는 소식에 제 일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오늘의 만남에서 약간 늦은 감은 있었지만, 주안의 앞날을 기원하며 축하하기 위한 가벼운 술자리를 가진 것이었다.

    물론 가벼운 술자리치고 발론은 이미 잔뜩 취한 상태이기는 했다.

    “여길세. 은퇴도 했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갈까 하다가 손주들 생각하니 그건 좀 아닌 것 같더군.”

    도착한 집은 건물의 크기에 비해 넓은 정원이 딸려있었다. 그리고 넓은 정원에는 이래저래 잘 신경 써서 가꾸고 있는 듯한 텃밭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그네 등의 놀이기구가 함께 있었다.

    “좋은 집이네요.”

    “그렇지? 그래도 오랜 시간 근무했다 보니 퇴직금이 아주 쏠쏠하더군.”

    “여기에 다 쓰신 겁니까?”

    “모아놓은 돈도 꽤 있기도 하고, 내 아들 녀석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괜찮겠다 싶었지. 역시나 손주 녀석들이 아주 좋아하더라고.”

    발론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들 생각만 해도 행복해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을 하며 신이 나서 자신의 손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네도 얼른 결혼해.”

    “결국 또 결론은 그겁니까.”

    “내가 괜한 말 하는 게 아니라니까. 내가 요즘 손주들 돌보고 아내랑 텃밭 돌보는 맛에 살아가고 있다니까. 내가 그래서 술도 끊은 사람이야. 더 오래 살려고.”

    “그런 분이 아까는 그렇게 과음을 하신 겁니까.”

    “가끔은 또 한 잔씩 걸쳐주고 그래야지. 그리고 이렇게 대성한 제자를 만났는데 이런 날 술이 안 들어갈 수가 있겠나.”

    정원에 퍼지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집에서 발론의 아내로 보이는 노부인이 나와 주책맞은 인간을 바라보듯 한심한 눈빛으로 발론을 쏘아봤다.

    “왔으면 조용히 들어올 것이지. 애들 다 깨겠어요.”

    “하하하. 미안하오, 부인. 오늘 내가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서 그런 거니 좀 봐주쇼.”

    “그래서 집에서 한 잔 더하시려구요?”

    “역시 날 제일 잘 아는구려.”

    “에휴, 2층 방에 준비해둘 테니까 일단 들어오세요.”

    주안은 늦은 밤 결례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해 여기서 빠지려 했지만, 발론의 완강한 고집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는 듯 한숨은 쉬면서도 괜찮다며 들어오라는 부인의 말에 못 이겨 결국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흐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네?”

    그리고 술에 취한 발론과 그런 발론을 모시는 데 정신이 팔려있던 주안은 뒤에서 유유자적 두 사람을 미행하던 제이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

    “좋은 밤이야. 그렇지?”

    “넌 누구지.”

    “그렇게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해 줄 거였으면 복면 같은 건 안 쓰고 왔겠지.”

    근엄한 질문에 대해 돌아오는 것은 조롱이 섞여 있는 싸늘한 냉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목적으로 침입했을 리 없어 보이는 괴한의 출현에 주안은 물론이거니와 발론 역시도 언제 술에 취했었냐는 듯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런 한적한 곳에 침입한 목적이 뭔가. 돈이 목적인가?”

    “그런 목적은 아닙니다, 교수님.”

    주안의 눈에는 날이 서려 있는 구루카 나이프 두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이스는 그 말에 반응하여 곧바로 허리춤에 찬 나이프 두 자루를 뽑아 양손에 꺼내 들었다.

    “아, 참고로 난 큰 소란은 원치 않아. 그냥 조용히 댁들 목숨만 가져가면 돼. 그러니까 우리 시끄럽게 하지는 말자구.”

    “정체도 모를 괴한 놈의 말을 믿으라고?”

    “믿지 않으면 어쩔 건데. 소리라도 질러서 알리게?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다른 행동을 취하면 그만이야.”

    “내가 그렇게 둘 거라고 생각하나.”

    주안은 순식간에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고 제이스에게로 달려들었다. 분명히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주안은 기사단의 부단장이라는 중역을 맡았을 만큼 검술 실력 하면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여기서 괴한의 장단에 맞춰 입을 놀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빨리 끝내자.’

    순식간에 괴한의 품에 파고든 주안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 말고는 없었다. 이 정체 모를 괴한은 최근 수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과 분명히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 때문에 목숨은 보존하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제압해둘 생각이었다.

    챙.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안의 머릿속 안에서만 계산된 계획이었다. 두 사람의 목숨을 거둘 작정으로 침입한 괴한 제이스에게 주안이 세운 계획은 해당 사항 따위가 없었다.

    사악.

    야닉과도 같은 거친 근육 따위도 없었다. 다른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본인의 단점만 보였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주안은 장점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본인의 검술을 단련시켰고, 그 결과는 가벼운 검을 통해 본인의 속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이 기술로 본인의 앞을 막던 무수한 적들을 낙엽처럼 쓰러트려 왔던 주안이었다.

    그런데 본인의 검이 튕겨 나가고 순식간에 괴한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검이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본인의 목을 치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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