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68화 (68/111)
  • #68

    “그렇소. 이름 없는 거대한 산맥이지. 예전에는 괴담만 무성한 곳이었지만.”

    보통 이런 거대한 산맥은 이름이 붙어있기 마련이었는데, 워낙 험하면서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괴담이 있던 곳이라 외면받는 바람에 그럴싸한 명칭조차 붙어있지 않았다.

    “확실히 옷을 두껍게 입고 오기를 잘했네요.”

    신기하게도 산맥의 근처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헨리의 조언대로 그 냉기에 대비한다고 해서 나름 코트를 걸치고 온 샐리였지만, 생각보다도 차가운 공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확실히 괴담이 돌만 한 장소네요.”

    산맥 근처에서만 흐르는 냉기와 더불어 생물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척박하고 험난해 보이는 지형에 샐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왔나?”

    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샐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안개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형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펠인가.”

    “그래, 맞아. 우리 대장이 헨리 자네가 올 거라고 하던데 생각보다 금방 왔군.”

    “마법사의 도움을 받았지.”

    “마법사? 제국에는 마법사가 없을 텐데?”

    “자세한 건 올라가서 얘기하지.”

    아펠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한쪽 눈이 상처로 인해 감겨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검객이었다.

    “그런데 옆에는 누구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자 아펠은 헨리의 옆에 서 있는 여리여리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제국의 스테판 공작의 당주이자 헨리의 아내인 샐리입니다.”

    “아내? 헨리 자네 결혼했나?”

    “어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으로 이곳에 온 참이네.”

    “푸핫! 누가 신부와의 여행으로 이런 곳을 선택한다는 말인가. 자네는 멀어도 한참 멀었구만.”

    아펠은 어제 결혼한 새신랑이 이렇게 어여쁘고 여리한 신부를 이런 험한 곳에 대체 왜 데려온 것이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제가 오자고 했어요.”

    “아가씨가? 여기를?”

    샐리의 말에 아펠은 심하게 당황한 듯 잠시 멍하니 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어서 가자는 헨리의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그제야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

    “오랜만이군.”

    아펠을 따라 도착한 동굴의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거대했다. 처음에 헨리에게 그들이 동굴 안에서 생활한다고 했을 때 그 규모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웅장한 내부를 가진 동굴 안에 상주하고 있는 많은 인구수에 샐리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입구에서 나는 인기척에 적개심이 가득한 눈을 하다가 그 대상이 아펠과 헨리인 것을 확인하고는 경계심을 풀었다.

    특히나 헨리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마중 나온 거대한 몸집의 남자에 샐리는 약간 발걸음을 주춤했다.

    “오랜만이야, 존. 그동안 잘 지냈나?”

    “하아, 요즘은 전혀. 골칫거리가 생겨서 말이야.”

    샐리는 야닉을 처음 봤을 때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몸집에 놀랐었다. 과연 야닉보다도 풍채가 좋은 이가 대륙을 뒤져봤을 때 있을 지에 대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존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본 순간 샐리는 본인이 세상을 얼마나 좁게 본 것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졌다.

    헝클어진 잿빛의 머리칼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왼쪽 눈썹에서 시작되어 오른쪽 광대 부근까지 이어진 긴 흉터가 확 눈에 들어오는 외모였다. 마치 늑대가 연상되는 날렵한 이목구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 남자가 동굴의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편지에 적었던 자네의 반쪽인가?”

    반쪽이라니.

    약간의 오글거림이 가미된 애칭에 샐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헨리에게로 옮겨갔고, 헨리는 그녀의 시선이 부끄럽다는 듯 애써 외면했다.

    “안녕하세요. 제국의 스테판 공작가의 당주 샐리 스테판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스테판 공작. 그래서 그대가 이런 험한 곳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가 무엇이오.”

    존은 서론을 늘어놓는 일을 싫어한다는 듯 곧바로 본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사실은 제가 지금 스승으로 모시는 마법사분께 이야기를 들었어요.”

    헨리는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 흠칫했다. 샐리는 그런 헨리를 보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비밀이라는 것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개구쟁이와도 같은 미소에 헨리의 입에서는 기가 찬다는 듯 거친 공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샐리 그대는 확실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소.”

    “당신한테만 비밀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셀바가 이 이야기는 비밀로 했다가 나중에 도착했을 때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소?”

    “음, 그러면 당신이 정말 놀랄 거라고 하던데요.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당황스러워하기만 하더라도 좋겠다면서.”

    “역시 성질이 고약한 마법사로군.”

    마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는 마법사치고는 확실히 세상 사는 이야기에 귀가 밝아도 너무 밝은 셀바였다.

    “그래서 그 마법사가 뭐라던가.”

    “이 산맥은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 중 한 곳으로 대량의 마정석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게 사실인가?”

    샐리의 말에 헨리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이야.”

    “그렇다면 당신들은 이 마정석을 지키기 위해 산맥에 자리 잡은 거겠지요.”

    “맞소. 이 거대한 양의 마정석이 제국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수는 없으니까.”

    존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여자가 당장 지금 머무르는 땅을 버리고 현재의 산맥으로 향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무언가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남아있었기에 존은 부족을 이끌고 산맥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재 머무는 동굴에 매장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정석을 발견한 것이라 말했다.

    “난 원래 미신 따위를 믿지 않지만, 그 꿈 덕분에 우리 부족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요.”

    “그게 무슨 말이죠?”

    “모르는 건가? 신전의 성기사들이 이곳에 몇 번 찾아왔었소. 다행히도 그들이 찾아올 때마다 죽여 버리기는 했지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다음부터는 제국군이 이곳 산맥으로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하더군.”

    존의 말에서 샐리는 크게 두 가지에서 놀랐다.

    하나는 신전에서 직접적인 움직임을 취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신성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검술을 구사하는 성기사들을 무찔렀다는 것이었다.

    “성기사들을 물리쳤다고요?”

    “강하기는 하더군.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그리 빡센 상대도 아니야.”

    “빡세요?”

    샐리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잠시 머리 회전이 멈췄다. 온갖 험악한 말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기에 다소 호기심이 생겼으나 헨리는 단번에 샐리의 그 호기심을 잘라냈다.

    “신전에서 마정석의 존재를 눈치챘을 가능성은?”

    “우리 나름대로 조사를 해본다고 했지만, 역시 그쪽에는 접근이 쉽지 않았어. 다만, 그것들이 직접 움직인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는 거겠지.”

    “마정석을 직접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샐리는 마정석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안에 깃든 마력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는 셀바의 말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 셀바 역시도 강조했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고, 마정석이란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신이라면 안 될 것도 없지.”

    존의 말에는 헨리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즉, 헨리가 인정하고 데려온 인물이라면 그들이 가진 거대한 비밀도 숨김없이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샐리는 도대체 헨리가 산맥에서 존을 처음 만난 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겼다.

    “아펠, 사냥한 것들 전부 내와. 오늘은 오래간만에 즐기도록 하지.”

    “알겠어, 대장.”

    존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펠을 포함한 몇몇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존은 곧바로 샐리와 헨리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

    “그러고 보니 동굴 안은 따뜻하네요.”

    단순히 실내이기 때문에 온도에 차이가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밖에서 흐르는 냉기와 비교했을 때 이 동굴은 말 그대로 공작가의 저택이 생각날 정도의 난방이 되는 느낌이었다.

    “마정석의 힘 때문이겠지.”

    “그런가요.”

    짧은 대화가 끝나고 존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동굴의 지하는 마정석에서 시작되는 환한 초록색의 빛으로 인해 밝았다. 샐리는 처음 지하로 갈 때 존이 횃불을 따로 챙기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도 이걸 봤었나요?”

    “아니오, 나도 마정석의 존재를 오늘 처음 알았소. 그때에는 그저 마을을 습격한 범인에 대한 조사차 방문했던 거라.”

    “그래서 농가를 습격했던 세력은 대체 누군가요?”

    이 부분은 샐리가 제국에서 움직임을 취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될 부분이었다. 스테판 전 공작의 내연녀의 행방을 찾으러 떠났던 페드로로부터 심상치 않은 연락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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