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66화 (66/111)

#66

“해 본 적 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헨리는 타는 듯한 갈증을 축이기 위해 마시던 물을 입 밖으로 뿜어낼 뻔했다. 그저 첫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었지만, 그 순수함은 생각보다 더 큰 당황스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콜록, 콜록.”

누가 봐도 당황스러움이 느껴지는 기침 소리였다.

“내 소문에 대해 잘 알지 않소.”

“석상이라는 별명이요?”

“그렇지. 그만큼 나는 다가오는 여자들에게 언제나 차가웠소. 그런 남자가 어찌 이런 경험이 있겠소.”

“아, 미안해요.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요.”

“미안해 할 필요까지는 없소. 궁금할 수도 있는 일이지.”

조금은 무례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는 질문에 샐리는 곧바로 사과를 했고, 헨리는 그렇게 무례한 질문도 아니니 괜찮다며 오히려 샐리를 다독였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소. 메리가 물어본다면 그냥 대충 둘러대면 되는 일이기도 하니.”

다행히 아직은 이성적인 상태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난밤 충동적으로 진한 키스를 나눴던 날처럼 이성이 날아가 버린 상태라면 이미 샐리를 덮쳤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키스와는 그 무게감부터가 달랐기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넌지시 던진 질문의 의도를 눈치 빠른 샐리가 그냥 놓칠 리가 없었다.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헨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피가 필요한 뱀파이어처럼 굶주림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그가 느끼고 있는 갈증이 어떤 것인지는 서서히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샐리도 알 것 같았다.

“당신이라면 괜찮아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헨리는 어떻게 참은 것인지 곧바로 샐리를 침대에 눕혔다. 다소 거친 동작에 약간 머리가 멍해지기는 했으나 샐리는 순식간에 자신의 입술을 덮치는 포근한 감촉에 금방 깨어났다.

두 사람 모두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키스를 이어 나가며 서로의 몸에 걸치고 있는 천을 한 꺼풀씩 벗겨가며 점점 더 격렬해지는 관계에 방점을 찍어나갔다.

***

“그래서 결혼식은 재밌게 보고 왔어?”

“재밌고 말 것도 없더라.”

처음 샐리의 등장에서 환호하던 클로에는 이후 이어진 신부의 끝나지 않는 주례에 손사래를 치며 제이스의 질문에 질색했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클로에라도 이런 광경을 보고 나서는 이전과도 같은 낭만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뭐랬어. 별거 없다고 했지?”

“별거 없어서 그런 게 아니야. 너무 많아서 그렇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이라는 것이 있는데, 온종일 신부의 지루한 언사를 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편하던 의자도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말을 길게 하는데 목소리와 말투도 신부답게 나긋나긋하면서 느린 것이 자장가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하객 중에서는 신부의 말에 맞춰 졸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속출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 결혼식에 대한 관습에 변화를 줬다고 했었지.”

결혼식에 있었던 지옥과도 같았던 주례를 열심히 설명하는 클로에를 보며 샴페인을 한 잔 마시던 제이스는 최근 제국이 신전에서 추구하는 관습을 받아들이는데 더 적극적이라는 소식을 떠올렸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계획은 힘들어질 수도 있어.”

“그럴까?”

“지금 황제를 봐. 욕심이 끝이 없잖아. 오죽하면 아직도 두 명의 황자 중에서 아직 후계자를 정하지도 않았을까.”

“확실히 이런 기조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네.”

샐리 덕분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내실도 챙기면서 황제가 원하는 대륙 통일을 위한 작업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말 그대로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내가 뭐라도 해볼까?”

그런 상황을 제이스는 그냥 두고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만 같으면 당장에라도 황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제이스는 실제로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황제를 죽이려는 시도 정도는 가볍게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은 무엇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만이 가능했다. 황궁 안에서도 거의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고 있는 그라도 황제에게 접근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마음만 먹으면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결국에는 그 주변의 삼엄한 경계를 뚫는 말 그대로 공개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이 커진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과거 제국이 벌였던 만행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삭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애초에 제국의 성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클로에의 제안 때문이기는 했다.

“그래서 스테판 공작과는 좀 친해졌나?”

“응, 아직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서로 이름도 부르고 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야.”

“그 여자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말했잖아. 이건 성녀의 힘을 타고난 내 본능이야. 그렇게 맑으면서도 환한 빛을 보면 자연스럽게 끌릴 수밖에 없어.”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소식에 제이스는 클로에의 친화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자신이 봐도 너무 갑자기 들이박는 것처럼 접근하니 경계를 꽤 샀을 것이라 봤다. 하지만 예전부터 봐왔던 그대로 그녀는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든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클로에가 원하는 대로 맺어지는 것이 대다수였다.

“맞아, 요즘 황궁 밖으로 자주 나간다고 하던데.”

“아, 그냥 요즘 따라 황궁 안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져서.”

“같이 휴가라도 갈래? 우리 지난번에 갔었던 고성도 괜찮았는데.”

한 번은 너무 수도에만 박혀있는 것이 지겹다는 클로에를 위해 제이스가 알아본 숲속의 한 고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크기의 성은 실내도 제법 깔끔하여 그곳에서 며칠 머물렀던 기억이 있었다.

“됐어. 이제부터 바빠질 텐데 그럴 여유가 어딨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럼 두 사람의 만남은 언제 추진하는 게 좋을까?”

“일단 스테판 공작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생각해봐야지. 그쪽에서도 제안이 들어온 이상 오래 끌 수는 없으니 아마 여행을 갔다 온 다음에 바로 약속을 잡으려고 할 거야.”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할게.”

제이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클로에는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제이스의 앞에 앉았다.

“너도 먹게?”

“응, 오랜만에 한잔하게.”

“푸흡.”

“뭐야, 왜 웃어.”

술이라고는 도수가 약한 것도 별로 못 마시는 클로에가 마치 원래는 술을 즐겼던 것처럼 말을 하니 제이스의 입장에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면 원래는 술 좀 마시는 줄 알겠네.”

“그러는 너도 원래 술 잘 안 먹잖아. 먹는 것도 지금처럼 샴페인 종류밖에 없고.”

“그래도 너보단 잘 마시거든.”

“그건 인정할게.”

실제로 술로 내기를 했다가 낭패만 봤던 클로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빠르게 인정했다.

“그런데 웬일로 술을 먹겠다는 거야?”

“아까 그 신부가 생각나서.”

“정말 별로였나 보네.”

“응,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 진짜 조촐하게 치를 거야.”

지금 당장에서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기에 뒷순위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클로에가 꿈꾸는 미래에 언제나 결말은 제이스와 결혼하여 오순도순하게 사는 것이었다.

제국을 벗어나 예전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 그녀가 바라는 나중의 삶이었다.

“그렇구나.”

그러나 그런 장밋빛의 미래는 방금 제이스의 다소 차가움이 느껴지는 대답으로 약간의 균열이 생겼다.

‘서운해.’

말로는 내뱉을 수 없는 서운한 감정.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싸늘한 분위기에 제이스를 바라보는 클로에의 눈빛에서 방금과는 다른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아직은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어서 그런 거야. 내 맘 알지?”

어딘지 모르게 싸하다는 느낌을 받은 클로에였지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그녀가 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소에 결국에는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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