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65화 (65/111)
  • #65

    황제가 샐리의 의견을 수용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의견이 타당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수도에서의 범죄율이 점점 상승하고 있는 추세였다. 최근에는 몇몇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발생하고 있었다.

    황제 역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고, 그 적절한 틈새를 샐리가 제대로 노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분간 전쟁은 없는 겁니까?”

    “글쎄, 굳이 우리가 아니더라도 제국의 군대 규모는 큰 편이니까.”

    “황제 성격상 아마 당분간은 지켜볼 겁니다. 안 그래도 곧 있으면 대신관이 방문하는 날이잖습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1년에 한 번 대신관은 제국에 방문하여 황제와의 친목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어떤 대화와 뇌물들이 오고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국의 황제와 신전의 대신관의 만남은 대륙의 다른 국가들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곧 나가실 차례입니다.”

    결혼식 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대화를 이어 나가던 세 사람은 곧 있으면 나가야 할 차례라는 말에 나누던 이야기를 멈추며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환기시켰다.

    “주안 너는 결혼 안 하냐?”

    “딱히.”

    “에휴, 이런 딱딱한 목석같은 녀석을 데려갈 천사 같은 분 어디 없나.”

    “너 같은 산 머슴을 감당할 수 있는 여자나 먼저 찾지 그러냐.”

    “이 몸은 자유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야닉과 주안이 투닥거리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입장해야 할 차례가 된 헨리는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한 다음 자신의 신부가 될 샐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아까 정말 힘들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할 무렵.

    샐리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길고 긴 결혼식에 대한 불평을 헨리에게 토로했다. 안 그래도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기에 서 있는 것부터가 일이었는데, 그 오랜 시간을 서 있기만 했으니 더 서 있을 힘도 없을 만도 했다.

    “정말 고생 많았소.”

    헨리 역시도 샐리가 얼마나 큰 고초를 치렀는지 알 수 있었다. 당장 그녀의 발만 봐도 뒤꿈치가 까져있었으니 말이다.

    “헨리 당신도 고생 많았어요. 저는 결혼식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네요.”

    “나도 처음 알았소. 아무래도 최근 결혼식에 신전의 관습을 더 집어넣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소.”

    “그러네요.”

    “그대 많이 아프오?”

    헨리는 침대에 주저앉고 나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샐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아직 오랫동안 서 있었던 것에 대한 후유증으로 발이 아프다고 하면 당장에라도 조치를 취할 기세였다.

    “조금요.”

    “내가 마사지라도 해주겠소.”

    “네? 마사지요?”

    샐리가 뭐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헨리는 곧바로 욕실로 향해 그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물이 담겨 있는 대야와 수건을 챙겨서 나왔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자상하면서도 당황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샐리는 낯선 사람에게나 하는 어색한 화법을 헨리에게 해버렸다.

    “어색해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일상이 될 일이니.”

    그 말에 샐리는 자신의 귓불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알겠어요.”

    이미 이렇게 준비를 해놨는데 거기서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웃음기가 살짝 서리며 빛나는 헨리의 황금빛 눈동자를 보니 더더욱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헨리는 샐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발 근처에 대야를 내려놓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마치 신데렐라에게 유리 구두를 신겨주는 왕자님처럼 그녀의 발을 조심스럽게 잡아 따뜻한 물에 살며시 적시기 시작했다.

    ‘간지러워.’

    워낙 세심하고 부드러운 손길이라 그런지 발끝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에 샐리는 발가락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참아보려고 해도 헨리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보니 실수로 그에게 물을 튀고 말았다.

    “미안해요.”

    “괜찮소. 옷이 더러워진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헨리는 오히려 빙긋 웃어 보이며 물 온도는 괜찮은지 물어보며 물이 담긴 대야와 함께 가지고 온 수건에 물을 묻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당히 적신 수건으로 샐리의 발을 감싼 뒤 열심히 발 구석구석을 주물렀다.

    “혹시라도 아프면 바로 말하시오.”

    충분히 힘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 기준점이 달랐기에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읏.”

    그러나 헨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발에 쌓여있던 피로가 풀리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샐리의 입가가 들썩이더니 이내 야릇한 신음이 튀어나왔다.

    “괜찮소?”

    부끄러운 신음이었기에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워낙 귀가 밝은 헨리였기에 작은 신음조차 놓치지 않았다.

    “아, 아파서 그런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다는 샐리의 말에 헨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 마사지에 집중했다.

    여러 전쟁터를 오가며 피로를 풀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에 대해서 빠삭했기에 헨리의 손길이 지나간 곳은 신기하게도 언제 아팠냐는 듯 기분 나쁘게 짓누르던 통증이 싹 가시기 시작했다.

    “어땠습니까.”

    “정말 좋은데요? 당신한테 이런 능력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1호 손님의 만족스러운 평가에 일일 마사지사로 변신했었던 헨리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실 이론적인 부분만 알고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마사지를 해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마사지를 해줄 일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것도 이런 세심한 손길로 조금이라도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이리 시간을 투자한다는 개념 자체가 헨리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던데.”

    “그래도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관리해야죠. 안 그래도 간식을 좋아하는 마법사께서 저택에 오신 뒤로 저도 덩달아 살이 찌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요.”

    “그대는 단것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또 있으니까 먹게 되더라고요. 물론 여전히 단 걸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달콤한 간식거리를 좋아하는 셀바를 위해 샐리는 그에 대한 비용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혹독한 훈련 속에서 샐리는 몸 안에서 무언가 강대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힘을 약간이나마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머릿속에 네가 하고 싶은 걸 연상해봐. 물론 지금은 아주 간단한 것만 가능해.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그 말에 샐리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 수저를 공중에 띄우는 것을 상상하며 힘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는 가벼운 성공이었다.

    이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셀바가 원하는 간식거리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울 리가 없었다.

    “아, 슬슬 배가 고프네요.”

    “어제부터 계속 굶었으니 배고플 만도 하지. 지금 바로 식사를 가져오라고 하겠소.”

    헨리의 눈에는 어제와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핼쑥해진 샐리의 얼굴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역시도 오랜 시간 이어진 행사에 지칠 만도 하건만 침대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문으로 향해있는 것을 보면 저 넘치는 기운은 도대체 언제 떨어지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이제 그걸 해야 하는 건가.’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조금은 나른해진 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날 신부와 신랑이 뜨거운 밤을 보낸다는 관습에 따라 샐리와 헨리 두 사람 모두 그저 여유를 부리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샐리의 경우 두근대는 심장에 벌써부터 긴장이 되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끝나고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흐르는 정적이 슬슬 그 타이밍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대 마음의 준비는 됐소?”

    “음, 아직이요. 당신은 괜찮나요?”

    “나도 아직 먼 것 같소.”

    샐리가 긴장하는 것만큼이나 헨리 역시도 마찬가지로 긴장감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무엇보다 충동적으로 달콤한 키스를 나눴던 그 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는 혀까지 살짝 꼬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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