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64화 (64/111)
  • #64

    ‘조만간 찾아가긴 해야겠어.’

    뭔가 탐탁지 않은 느낌이 있었지만, 황제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분명히 도움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자, 다 됐어요. 거울 한 번 보세요.”

    눈을 감고 결혼식 이후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던 샐리는 눈을 떠도 된다는 메리의 말에 눈을 뜨고 바로 앞에 놓여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본인 입으로 말하기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부족한 부분 있으면 말해주세요.”

    “부족할 리가. 그것보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그야 요 며칠 새 잠도 안 자고 연습한 성과라고 할 수 있죠.”

    화장을 제대로 받은 외모에 만족한 손님을 보자 메리는 어깨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며칠 잠도 줄여가며 솜씨가 좋은 몇몇 하녀들을 찾아다니며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다른 건 괜찮아도 이런 중요한 행사를 앞둔 화장은 본인 손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던 메리였는데, 오늘 그 꿈을 제대로 이룰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아, 헨리 경이요? 아니,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좀 더 달달한 애칭을 사용하셔야죠.”

    “그건 메리도 마찬가지잖아.”

    “저는 아직 괜찮아요.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호칭을 정정해도 여유롭다구요.”

    단둘이 있을 때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딱히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 앞에서 헨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괜히 혀가 간지러워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 이후면 부끄러워도 제대로 불러야지.”

    “우와, 아가씨도 부끄러움을 느끼시는구나.”

    괜히 빈정대는 말투에서 장난기가 느껴졌다. 확실히 조용한 저택 내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그런지 오랜만에 메리를 포함한 다른 사용인들에게서도 이전과는 다른 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똑똑.

    “아가씨 이제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완벽하게 증명시킬 차례였다.

    “아가씨, 저 떨려요.”

    “갑자기?”

    “그냥 보통 이런 자리에 저 같은 사람이 아가씨처럼 귀한 분을 에스코트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말 다신 하지 마. 메리가 없었다면 이런 날도 없었고, 나도 없었어.”

    샐리의 말에 메리는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조심스럽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샐리는 빙긋 웃으며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

    메리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샐리는 참석한 많은 하객들로부터 무수한 축복을 받으며 주례를 서는 신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환한 미소로 손뼉을 연신 치고 있는 클로에였다.

    뭐가 그리 기쁜지 정작 가장 기쁜 날을 맞이한 신부인 본인보다도 더 행복해 보였다.

    ‘축하해요, 샐리.’

    클로에의 입 모양으로부터 그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똑똑히 받았다.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2 황자와 자신을 연결하기 위해서 접근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 클로에는 하객들 중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본인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물론 바로 근처에 도대체 왜 온 건지도 모를 1 황자 오언은 환호와 축하를 건네는 많은 하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똥 씹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아가씨,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시면 안 돼요.”

    “아, 미안. 이런 광경은 생소해서 그만.”

    “저도 지금 엄청나게 떨려요.”

    메리가 말한 대로 맞잡고 있는 손으로부터 긴장감으로 인한 떨림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래도 입장하기 직전에 떨던 것에 비하면 좀 나아지기도 했고, 표정이 좀 얼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 티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식의 순서가 어떻게 됐더라?”

    “우선 신부가 먼저 입장하고 신부님의 축하와 축복을 받은 다음 신랑이 입장하는 거예요.”

    “그럼 신랑도 똑같이 신부한테서 축하와 축복을 받는 거야?”

    “당연하죠. 제가 드린 책 안 읽어보셨죠.”

    결혼식이라고 해봤자 손을 잡고 입장한 다음 신부 앞에 그저 서 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메리가 준 책을 굳이 읽지 않았던 샐리였다.

    “그래도 특별히 인지해둬야 할 까다로운 절차도 없잖아.”

    “그렇긴 하죠.”

    말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복화술로 메리와 대화를 하며 입장하던 샐리는 신부의 앞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하객들 사이에 있는 의외의 인물에 깜짝 놀랐다.

    ‘셀바?’

    인간들의 결혼식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고 저택 밖으로 마실을 나갔던 셀바가 웬일로 하객들 사이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괜히 마법사인 걸 들킬까 봐 차라리 저택 안에 조용히 있으라고 했음에도 끝내 안에만 있기 답답하다고 나갔건만,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얌전히 있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웬일로 이런 누추한 결혼식에 있냐고 약간의 비아냥을 섞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으나 옆에서 철통 보안을 하고 있는 메리 탓에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다만, 어제 귀찮게 뭘 그리 성대한 결혼식을 하냐며 툴툴대던 것과는 다르게 손뼉을 쳐주며 축하해주는 모습은 확실히 샐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현 스테판 공작이자 제국의 딸인 샐리 스테판은 여신의 이름 아래 청결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될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샐리 스테판 당신 역시 여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제국의 딸이 될 것을 약속하겠습니까?”

    “네, 저 샐리 스테판은 제국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가꾸겠습니다.”

    이 뒤로도 신부는 몇 번이고 비슷한 유형의 질문을 샐리에게 던졌다. 그리고 샐리는 제국의 예법에 맞는 말투와 문장을 입에 올리며 성심성의껏 그 질문에 대답했다. 장내는 마치 신전에 기도를 온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근엄한 분위기로 내려앉았다.

    “샐리 스테판 당신은 신전과 제국의 번영을 위해 제국의 딸로서 노력하시겠습니까?”

    “비록 미약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오늘처럼 좋은 날이 당신에게 계속되기를 신전과 제국도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 역시도 제국과 신전의 관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가 결혼식 자리인지 그것이 아니면 청문회 자리인지 헷갈릴 것 같은 주례였다. 참으로 의미 없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샐리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남은 것인지 신부는 가지고 있는 책을 넘기며 다시 새로운 축복의 기도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창하고 요란스러운 주례에 샐리는 당황스러움에 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신부의 입을 틀어막는 용도로 사용하고 싶다는 상상을 할 정도였다.

    아마도 이 생각은 단순히 샐리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감돌던 하객들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무거워진 것이 느껴졌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몇몇 뜨거운 시선들은 분명히 이 말 많은 신부를 향한 것임이 분명했다. 물론 이런 절차가 이번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최근 제국이 신전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면서부터 시작된 일종의 보여주기식 절차였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인 절차에 실물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현재 대기 중인 헨리였다.

    ***

    “그 신관 놈 어지간히 말이 많나 봅니다.”

    “입을 조심해. 그러다가 누가 들으면 목 나간다.”

    “이런 곳에 있기는 누가 있어.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지만, 헨리 역시도 야닉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리고 야닉을 말리고는 있었지만, 주안 역시도 이런 식으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결코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식이라고 해봐야 사람들한테 축하받고 그냥 두 분이 뽀뽀하고 끝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이리 복잡하게 한답니까.”

    “황제 폐하께서 신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니 그냥 받아들여.”

    “난 싫어. 애초에 난 지금 황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야닉!”

    주안과 야닉이 잔뜩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설전을 이어가는 와중이었지만, 헨리는 딱히 개입할 의사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적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헨리 역시도 말만 안 했을 뿐, 야닉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야닉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

    “그렇지만….”

    뭔가 말을 이어 나가려 했지만, 헨리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안이었기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급할 필요 없어. 내 아내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참 결혼 잘하신 거 같습니다, 단장.”

    “저도 이 말에는 동감입니다. 덕분에 우리 기사단이 황궁을 포함해서 수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압도적인 경합의 결과는 그 누구도 불복할 수 없었다.

    펠릭스 세티엔은 퉁퉁 부은 얼굴로 들것에 실려 나갔으며 자신감 넘치던 1 기사단의 기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쓸쓸하게 퇴장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헨리가 잘했기에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결국 그 판을 만들어준 것은 샐리의 수완이었다. 황제가 곱게 보지 않는 헨리 본인을 데리고도 이런 우호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능력 덕분이었다.

    “그래, 그녀 덕분에 고생길도 끝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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