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63화 (63/111)

#63

그렇게 한참을 또다시 침대에서 들썩이며 거칠게 혀를 주고받고 나서야 만족했는지 헨리는 샐리에게서 떨어져 그대로 그녀의 옆에 털썩 누웠다.

“하아, 하아. 그래서 그 방법이 이거예요?”

“원래 충격은 더 큰 충격으로 이겨내는 것이라 배웠소. 그래서 그만….”

본인의 혈기를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소심한 변명이었다. 헨리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부끄럽고 역겹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국의 기사로서 방금 행동은 정말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레이디를 지켜도 모자랄 판에 사랑하는 여인을 이리도 거칠게 몰아붙였으니 말이다.

“인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기사로서 본인의 혈기를 주체하지 못했으니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그대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것 같아 미안하오.”

절대 길들이지 못할 것 같은 야생마처럼 자신을 움켜쥘 때는 언제고 갑자기 이렇게 순한 양으로 변하다니. 샐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당신은 정말 처음 봤을 때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가끔 너무 웃겨요.”

완벽만을 추구할 것 같은 사람이 이렇게 엉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단한 반전이었다. 그리고 유독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눈치챌 수가 있었다.

‘내가 웃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을 바라보는 헨리의 얼굴에서 안도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샐리 그대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훨씬 아름답소.”

재밌게도 샐리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헨리는 샐리에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말을 건넸다.

언제부터였을까.

샐리는 헨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제 정말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어떻게 보면 참 꾸밈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쪼옥.

샐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랑스러운 사람의 볼에 자신의 입술을 슬며시 맞췄다.

그러자 확 달아오르는 헨리의 얼굴. 그 얼굴을 보니 샐리 역시도 그가 느꼈다는 혈기가 왕성하여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뭔가 이상한 것 같네요.”

“하루 정도는 그래도 좋은 것 같소.”

애틋해진 분위기.

그러나 키스 그 이상의 단계로 가기에는 서로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머쓱하게 웃은 뒤 비어있는 주방으로 향해 야식을 먹으며 건전한 밤을 보냈다.

***

그날 이후로 샐리는 헨리에 대한 감정에 또다시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에게 다가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예를 들면 결혼식을 위한 예복을 맞추러 갔을 때도 그가 입을 옷들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운 시선으로 골랐다.

그 결과 본인의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처음 결혼식을 그저 상투적인 관례라고 생각하여 드레스를 고르기도 귀찮아했던 때와 시간이 그리 오래 흐르지도 않았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심경에 변화에 따라 그 풍경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대,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니오?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샐리가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했던 생각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그녀 역시도 클로에와 드레스를 고르러 갔을 때 신중하게 자신의 드레스를 골라주는 클로에가 조금은 까다로운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고르기가 힘들어서 그래요.]

[그건 의외군.]

헨리는 머리를 싸매며 디자이너가 내왔던 예복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샐리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보통 이런 사사로운 것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았으니 헨리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검은 예복 중에서 고를 걸 그랬나.’

예복을 고르고 난 뒤. 결혼식 당일인 오늘에도 샐리는 여전히 헨리가 입을 예복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못했다. 몇 번을 봐도 예복의 디자인에 따라 헨리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와 매력이 달라지니 하나만 콕 집어서 고르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클로에가 어째서 자신의 드레스를 고르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며 힘들어했는지 지금의 샐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아픈 과거를 들춰낸 날. 분명히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그 아픔으로 인한 진통이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던 당시의 기억이 헨리의 키스로 인해 벌써 깨끗하게 지워지고 난 후였다.

그 뒤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약간의 여유만 생겨도 당시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잔잔하던 속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놓았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 새 어떤 일을 하던 제대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편지 한 통과 함께 빚을 독촉하는 사채업자와 전 공작의 사업에 투자한 이들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헨리와 함께 거리를 거닐며 드레스 등의 예복을 고르며 결혼식을 준비할 때도 시시각각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

“긴장되세요?”

본인이 이렇게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나. 자책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화장을 도와주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 메리에게 깊은 고충이 있음이 느껴지는 한숨을 들키고 말았다.

“아니 그냥….”

“헤헤, 아가씨도 이런 날에는 긴장이 되시나 보네요.”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메리는 중대한 행사를 앞에 두고 긴장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미 샐리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기쁜 날과 어울리지 않는 한숨 소리를 들었으니 메리의 입장에서도 당연히 결혼식을 앞에 두고 긴장했다고 생각할 만했다. 실상은 그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리 있는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메리의 뒤를 이어 들어온 하녀들이 테이블과 각종 화장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새 신부 샐리를 지그시 바라보던 메리는 이 감격스러운 광경에 새삼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보였다.

“그러게.”

“그래도 헨리 경께서 워낙 잘 챙겨 주시니까요.”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헨리가 이 저택을 드나드는 것이 완전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가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저택 내 사용인들은 훈훈하게 그 소식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메리가 있었다. 샐리가 크게 아팠던 날 헨리가 밤새 곁을 지켰던 일화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과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며 낭만을 태우기 시작한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메리가 처음 가지고 있던 의구심은 다행히도 차츰차츰 사라져가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자신의 아가씨가 갑자기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놀라서 까무러치는 줄 알았던 그녀였다. 그 대상이 제국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기사인 헨리 크리스토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말이다.

오히려 명망이 높은 기사라는 부분에 있어서 걱정이 더 심했다.

게다가 헨리의 위치가 그다지 좋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날마다 전쟁터에서 보내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기다리는 자신의 아가씨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다.

“오늘처럼 좋은 날에는 우리 웃어요.”

그러나 헨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사람이 샐리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기사단의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샐리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메리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저 사람이라면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메리는 오늘의 결혼식이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 웃어야지. 오늘 같은 날 안 웃으면 언제 웃겠어.”

화제의 인물로 손꼽히는 스테판 현 공작의 결혼식답게 방문객들의 이름 하나하나에서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특히나 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던 1 황자부터 시작해서 성녀인 클로에와 어째서인지 황제의 정부인 몰리 캐스터까지 하객으로 오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나 몰리의 경우에는 결혼식이 진행되기 한참 전인 오늘 오전에 저택으로 갑작스럽게 쳐들어와 왜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느냐고 긴 시간 동안 샐리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까는 정말 놀랐다니까요.”

“그러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는걸.”

“그분이랑도 아는 사이세요?”

“어쩌다 보니 잠깐 대화해본 사이야.”

하도 바쁜 일이 많아서 잊어버렸던 것이 오히려 안달이 나도록 만든 듯 보였다.

여전히 안 좋은 기류가 흐르는 것도 아니건만 뭐가 그리 급한 것인지 이른 시일 내에 자신을 만나러 와야 한다며 보채는 것을 겨우 진정시킨 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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