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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60화 (60/111)
  • #60

    지극히 헨리의 주관적인 의견이었기에 샐리는 곧이곧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제국을 넘어서 대륙을 호령할만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라고 해도 상대도 황궁의 근위대를 진두지휘하는 기사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상대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와서 차를 홀짝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새삼 내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소?”

    확실히 대단한 일이기는 했다. 그는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범접할 수 없을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분명 그가 저택의 대문을 부숴버릴 때도 그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지만, 샐리는 본인이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에 내심 감탄을 연발했다.

    확실히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은 맞는데, 오늘따라 유독 자기 자랑에 심취한 것처럼 보이는 헨리는 샐리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표정부터 시작해서 찻잔을 내려놓는 손동작 하나하나 평소와는 다른 것이 보였다.

    “저한테 뭐 원하는 거라도 있나요?”

    이런 부분에서는 눈치가 빠른 샐리였다.

    상대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럴 때는 보통 바로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부탁이 있을 때의 사람들이 보통 보이는 패턴이었다. 괜히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들썩이고 있는 헨리는 바로 거기에 해당하였다.

    “샐리 그대는 눈치가 참 빠른 것 같소.”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다 눈치채요.”

    “크흠.”

    그렇게 티가 났냐는 듯 헨리는 민망함을 헛기침으로 토로했다.

    “참나, 눈꼴 신 짓거리는 내가 없을 때나 좀 하지?”

    두 사람의 훈훈한 분위기.

    이제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는 꽃이 흩날리는 것 같은 사랑과 가까운 공기가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훈훈한 광경을 셀바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둘에게 괜히 심술이 난 것도 산통을 깨버린 이유 중 하나였다.

    분명히 셀바는 인기척까지 내면서 두 사람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 둘은 셀바의 존재 따위 잊어버린 듯 두 사람만의 분위기에 심취해 이 공간을 완전히 자기네들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이 저택이야 주인이 샐리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셀바는 자신의 존재감이 지워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인물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있었지?”

    셀바를 바라보는 헨리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불꽃이 튈 것 같은 불씨가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달아오를 기미가 보이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으니 헨리의 입장에서는 셀바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셀바는 헨리의 불꽃이 튀는 시선을 무시하고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며. 서재 쪽에 있는 거 맞지?”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마법사답게 셀바는 서재에서 풍기는 요상한 마력을 이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굳이 가까이 가보지 않아도 흐르는 기운만으로도 그것이 봉인의 주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였다.

    그렇기에 셀바는 샐리에게 흐르는 강대한 마력 이외에도 한 가지 더 흥밋거리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남편이 오면 시작하자고 했잖아. 이제 의지할 사람도 있으니까 그쪽으로 날 안내해.”

    거침없이 아까의 일을 속사포로 내뱉는 셀바 탓에 샐리의 얼굴이 처음으로 토마토처럼 완전히 빨갛게 익었다. 헨리가 없는 데서야 속에 있는 나약한 마음을 편안하게 토로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있는 그대로 헨리에게 전달되었으니 셀리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울 만한 사항이었다.

    “정말 그랬소?”

    샐리의 입에서 칭찬의 말을 듣기 위해 열심히 유도하던 헨리였다. 그러나 눈치 없는 셀바 탓에 그 타이밍을 놓쳐 아쉬움이 남은 그에게 의지할 곳을 찾아 자신을 찾았다는 것은 헨리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희소식이었다.

    게다가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어버린 샐리의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그에게는 분명 나쁠 것이 전혀 없는 경험이었다.

    오히려 눈치 없는 타이밍에 끼어든 셀바가 용서가 될 정도였다.

    “그냥 앞으로 함께 살 저택이니까 같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거예요.”

    제법 그럴듯한 이유이지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느라 손으로 부채질하는 행동에서 이미 모든 것을 시인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좋냐?”

    마탑에서 봤을 때는 다소 뻣뻣해 보였는데 본인들에게 편한 장소에 오니 서로에게 향해있는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놈의 사랑이란 감정이 뭔지 그토록 감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깔끔해 보이는 두 사람도 완벽하게 절제하지 못할 정도인 것을 보고 셀바는 질색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은 지금까지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

    이번에는 헨리도 날을 세우며 반격했다. 샐리가 부끄러워하는 표정도 보고, 의지할 곳을 찾아 자신을 기다렸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까 분위기가 좋았던 것을 망쳐놨던 앙금은 아직 남아있는 듯했다.

    “흥, 그런 귀찮은 걸 왜 해.”

    “할 줄 모르니 아무것도 모르는 거겠지.”

    “아니거든! 나도 여자 정도야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

    “그런 어린애의 모습으로? 차라리 식모를 구한다고 하지 그래.”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샐리는 한심하다는 듯이 관전했다.

    원래 남자들의 기 싸움이란 것이 유치하다는 것은 그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나 페드로의 경우 별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유치한 신경전에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샐리는 달아오르던 얼굴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식힐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네요.”

    헨리와 셀바 두 사람은 이전부터 일면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말 그대로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다.

    “내 부인이 마력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듯이 그쪽도 예의범절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필요하다면 선생도 붙여주지.”

    “제국의 예의범절 따위를 배워서 얻다 써먹게. 그딴 거 필요 없거든.”

    이미 두 사람은 서재에 있는 비밀의 방의 존재 따위는 잊은 것처럼 보였다.

    ‘남자들이란….’

    샐리는 분위기가 과열되어 혹시라도 큰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슬슬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나서려 했다.

    “어?”

    곧바로 치고받으며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과열되는 분위기는 샐리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 의해 순식간에 식었다.

    “왜 그러시오.”

    “왜 그래?”

    헨리와 셀바 둘은 동시에 샐리 쪽을 바라보며 걱정된다는 듯이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두 사람한테서 이상한 연기 같은 게 보여서요.”

    “연기?”

    “지금은 조금 수그러들기는 했는데 여전히 보여요.”

    “연기의 색은 어떻지?”

    “셀바 님은 푸른 불꽃과도 같은 색이고, 헨리 당신은 화려한 황금빛이에요.”

    “어느 정도 각성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돼.”

    다행히 큰 문제가 없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마력에 대한 자각이 생기며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흔한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쳇, 흥이 식었으니 이제 위로 올라가자.”

    결판을 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표정은 분명 선을 넘으려던 작정이었던 것 같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의 열기를 식혔으니 샐리는 안심하고 두 사람을 비밀의 방이 있는 서재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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