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57화 (57/111)
  • #57

    “오, 이건 뭐지?”

    “타르트예요. 단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사 와봤어요.”

    샐리의 허락을 받고 잠시 외출을 허락받은 메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타르트를 잔뜩 사 와 셀바에게도 나누어주었다. 특히나 이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나온 코코아를 포함한 달달한 간식들을 전투적으로 먹어 치우는 모습 덕분에 셀바에게는 슈가몬스터라는 짓궂은 별명이 사용인들 사이에서 붙여졌다.

    “으음, 아주 마음에 드는군. 확실히 얼굴이 예쁜 사람은 마음씨도 참 곱다니까.”

    “어머나. 주방에 새로 들어온 제빵사가 마시멜로를 넣은 코코아를 만들었다는데 가져다드릴까요?”

    “읍, 응.”

    까탈스럽고 배타적인 마법사는 더 이상 없었다. 셀바는 저택에서 맛본 다양한 간식거리에 이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연 뒤였다. 특히나 자신에게 호의적인 메리에게는 입에 발린 아부까지도 떠는 신기한 모습까지도 보여줬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식객에 처음에는 사용인들 모두가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그의 잘생기고 귀여운 외모에 반한 것인지 자세한 사정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뭘 한 거예요?”

    “별거 없어. 내 외모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리는 마법이니까.”

    딱히 잘했다고 칭찬을 한 것도 아닌데 셀바는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스대며 이번에는 무화과가 올라와 있는 타르트를 입에 넣었다.

    “흠, 처음으로 제국이 좀 마음에 드는군.”

    “겨우 디저트에 넘어가시네요.”

    “겨우 디저트라니! 네 눈에는 이 아름다운 녀석들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전 단 거 싫어해요.”

    단 거를 싫어한다고 말을 하자마자 셀바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샐리를 쳐다보며 이번에는 딸기가 잔뜩 올라와 있는 타르트를 입에 넣었다.

    “그래서 어제 말했던 비밀의 방은 언제 열어볼 셈이야.”

    셀바는 저택에 오자마자 샐리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저택에서 지내는 방안을 생각해냈기에 시간적인 여유는 더 생겼으나, 제국의 수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그는 선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초 계획한 시간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샐리는 셀바의 지도 아래 내재된 마력의 존재를 깨닫는 것부터 배웠다.

    그러던 와중에 샐리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샐바는 저택의 서재에서 흐르는 미묘한 마력을 느꼈고, 그가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샐리는 그에게 그 문을 열어 달라 부탁했다.

    “시간 끌 거 없잖아. 어제 네가 부탁하자마자 열어줄 수도 있었어.”

    “알아요. 그런데 그냥 그 장소에는 저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샐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감각이 그 비밀의 방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그 장소를 확인하기에 거북하게 만들었다. 직감에 따르면 그 방에는 분명히 불쾌한 비밀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샐리는 그런 장소에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겁이 많구만.”

    가진 마력에 비해 심장이 콩알만 한다며 툴툴대는 셀바를 보고 샐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왠지 모르게 겁이 좀 나네요.”

    그녀의 인생을 돌아본다면 과연 그녀가 두려움이란 걸 키우고 사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담한 일들을 벌였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에 빈틈을 만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녀의 엄마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래서 언제 열어볼 건데.”

    “그 사람, 오늘 일이 끝나고 나면요.”

    언제부터였는지 혼자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일에서 샐리는 자연스럽게 헨리를 찾기 시작했다.

    “에휴, 눈꼴 셔.”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곤 마법밖에 없는 셀바는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인 두 사람의 사이를 못 봐주겠다는 듯 툴툴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게요.”

    약간의 자조가 섞인 대답.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면서도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지 샐리는 오늘에서야 그 느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형식상의 부부가 아닌 감정이 움직이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마음들이 샐리 본인을 점점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선을 지키기에도 감정의 선이 그를 향해 넘어버린 지 오래였다.

    예전처럼 냉정하게 그를 멀리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가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해져 버렸다.

    ‘부디 다치는 곳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샐리는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낯설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남자였기에 샐리는 당당하게 그에게 청혼했던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샐리는 보던 마법서를 내려놓고 셀바가 있는 소파로 가 타르트를 하나 집어 먹었다.

    “달다.”

    단 것을 싫어하는 샐리였지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단 크림 덕분에 혼란스러운 생각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질 수 있었다.

    ***

    “어머, 저 말고도 손님이 계셨네요?”

    당연하다는 듯이 샐리의 저택에 놀러온 클로에는 소파에 앉아 메리가 가져다준 코코아를 마시는 셀바를 보고 가벼운 눈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셀바는 그런 그녀를 가볍게 무시하고 달콤한 초콜릿의 향을 느끼는 데 집중했고, 순간 무안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샐리가 나섰다.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아, 그렇군요.”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클로에는 오히려 괜찮다는 듯 셀바를 대신해서 사과를 건네는 샐리를 만류했다. 이럴 때면 셀바의 어려 보이는 외모가 제법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헨리 경께서 1 기사단 분들과 경합이란 걸 한다고 들었어요.”

    “네, 그래서 오늘은 혼자 드레스를 보러 가게 생겼네요.”

    애초에 결혼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형식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내세우며 찾아온 이들의 축복 속에서 하루를 보내기만 하면 되니 별 거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헨리의 생각은 샐리와 달랐다.

    기왕 결혼식을 치르는 거 제대로 식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오히려 미적지근한 점을 보이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 샐리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어떻게 보면 중요한 일에 있어서 대충한다는 생각 따위가 없는 샐리의 심리를 헨리가 잘 이용한 것이라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혼자 드레스를 보러 가시게요?”

    클로에의 말에 샐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클로에는 그런 샐리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드레스 같은 건 신랑 될 분이랑 함께 가시는 게 더 좋을 텐데….”

    “일정도 빠듯하고 오늘처럼 서로에게 일이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클로에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준비과정이 거창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화사한 드레스와 화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날은 그녀가 항상 꿈꾸는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그럼 치료 끝나고 저랑 같이 가는 건 어때요? 결혼식에 입을 웨딩드레스를 혼자 고르는 것도 조금 이상하고, 친구랑 같이 가서 본다면 되게 자연스럽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애초에 결혼식이라는 관습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샐리였다. 웨딩드레스라고 해봤자 순백의 드레스에 이것저것 치렁치렁 달려있는 것뿐. 그녀의 눈에는 웨딩드레스라고 해서 별다른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클로에의 말대로 아무리 헨리에게 일이 있다고 해서 본인 혼자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는 그림은 어딘지 이상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괜한 추문을 살 수도 있는 일에 샐리는 클로에의 동행을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혼자보다는 둘이서 보는 게 조금 더 나을 수도 있죠.”

    동행에 대한 흔쾌한 수락에 클로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셀바는 그런 클로에를 유심히 살피며 코코아가 담긴 잔을 열심히 비웠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