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55화 (55/111)

#55

“이런 건 제국의 역사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인데 제법 상세히 알고 있군.”

“제국? 애초에 거기는 마법사들을 인간 취급도 안 하잖아. 아마 다른 강대국들을 보면 깜짝 놀랄걸?”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말했지. 마법이라 건 네가 지니고 있는 오러처럼 여신의 축복으로부터 파생된 힘이야. 보기에는 다를 수는 있어도 그 근본은 똑같다는 거지. 그리고 지금 너희 제국이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이 신전에 이전처럼 충의를 보일 것 같아?”

셀바의 말에 따르면 제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대륙의 몇몇 강대국들은 마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제국보다 몇 수 앞선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예전에 손을 댔던 금서와 세계 각국의 신문을 통해 읽었던 거니 믿어도 돼.”

“그래서 제 힘의 문제가 뭐죠?”

우물 안의 개구리.

셀바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샐리와 헨리 두 사람 모두 제국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의 세상밖에 모르는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것보다 샐리 본인의 힘이 가진 위험성에 관한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에 이야기의 초점을 다시 처음으로 맞췄다.

“지금까지 그 강대한 마력이 얌전했던 건 내가 만든 약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야. 이미 내가 준 약은 효과가 떨어진 지 오래인데, 그냥 네가 그 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해서 발현이 늦춰진 것뿐이야.”

“그 말씀은 이제 저는 이 힘에 대한 자각이 생겼고. 이 강대한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자칫 잘못하면 힘의 폭주를 감당해내기가 힘들 수도 있다는 거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여신의 계시와 함께 현재 가진 마력에 대한 자각이 생겨났기 때문에 샐리는 언제 폭주할지도 모를 이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곤란해요.”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긴 해.”

“뭔데요?”

“아마 많이 힘들 수도 있지만, 3일 정도만 나랑 여기서 있어. 내가 돕는다면 마력을 능숙하게 다루는 건 어렵더라도 폭주하지 않게 하는 선에 맞춰줄 수 있으니까.”

“정말 도와주시게요?”

“싫음 말고.”

까칠한 티를 내기는 했지만 이런 도움의 손길을 선뜻 내밀었다는 것에서 겉으로 내뿜는 분위기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샐리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그의 도움에 대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셀바는 그런 그녀의 미소에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

“3일이나 여기 머물러야 한다고?”

셀바의 말에 헨리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반응했다. 마력이 폭주할 수도 있다는 변수는 생각도 못 했던 그이기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것보다 이제는 두 사람의 결혼식이 머지않았기에 결혼과 관련된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한 시기였다.

“기한을 단축시킬 수는 없나요?”

“그걸 최대한 짧게 잡은 거야. 3일간 잠도 잘 생각하지 말고 연습해야 겨우 될까 말까인데 기간을 더 줄일 수는 없지.”

샐리 역시도 곤란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헨리 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 역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계획했던 일이 꼬인 것에 대한 낭패감이 그대로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로 나타났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실은 이제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아서요.”

“결혼?”

대륙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소식이라면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셀바였지만, 귀족들의 사사로운 연애 이야기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셀리와 헨리 두 사람의 세기의 연애 이야기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

하지만 셀바도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후대에 이어 자기 뜻을 관철하고 이어 나가기 위해서 씨앗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지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제자를 두는 것을 넘어서 피로 이어진 유전은 그의 불안감을 덮어줄 확실한 조건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셀바는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손가락을 튕기며 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가는 거야. 마탑에서 나가는 건 오랜만이지만, 적응에는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거야.”

“그 말씀은….”

“네가 마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너희 집에서 좀 머무르겠다, 이 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샐리는 잠시 고심하다가 헨리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보통 이런 결정이 있을 때 남에게 미룬 적이 없던 그녀였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라면 언제나 스스로의 생각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하기 마련이었는데, 지금은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법사를 상대해야 하니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소.”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듯 보이는 헨리는 셀바의 제안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외간 남자와 단둘이 보내는 것에서부터 부정적이던 헨리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감시하기 수월한 공작가의 저택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나 역시도 그대 안에 있는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백 번 공감하는 바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기에는 조금 바쁘지 않소. 샐리 그대에게도 저 마법사가 저택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편할 것이오.”

헨리의 말에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셀바가 저택에 오는 것이 꼭 필요한 또 한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냈다.

공작가의 저택 서재에 있는 비밀의 방.

열쇠는 존재하지 않았고, 무력으로도 그 방은 열 수가 없었다. 분명히 마법사의 술식이 걸려있는 철문을 열기 위해서는 셀바의 존재가 꼭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그대의 호기심을 해결할 기회지 않소.”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샐리의 부탁으로 헨리 역시도 그 문을 열기 위한 시도를 해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자존심이 구길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저택을 부술 수는 없었기에 오러를 적당히 끌어올리는 선에서 문을 여는 시도를 했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물론 검을 쓴 것도 아니고, 완력을 조금 강화하는 정도의 능력만 썼을 뿐이지만, 당연히 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헨리는 굳건한 철문에 심히 당황했었다.

“하지만 저택에 가는 데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어요.”

“조건? 그게 뭐지?”

“아시다시피 저희는 제국에서 왔잖아요.”

“아, 그렇군.”

샐리의 말에 셀바는 그녀가 말할 조건이 무엇인지 빠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마법사인 걸 티를 내면 안 된다는 말이로군.”

“맞아요. 아무래도 제국은 마법사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으니까요.”

“백작과 만나기도 힘들겠군.”

마법사에게 적대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제국민 중에서 유일하게 이 정도 실력의 마법사와 인연이 있는 내셔스 백작도 신기했지만, 그런 백작을 언급하며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셀바의 모습에서 샐리는 연민을 느꼈다.

말로는 가볍게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는 했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사연은 그 깊이가 남달라 보였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헨리의 목소리에 풀이 죽어있던 셀바는 놀라며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에게서 나온 호의였기에 더 놀란 듯 보였다.

“방법이 있나?”

“백작을 저택으로 초대하면 되는 일이지. 나와의 친분은 확실하니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없고 말이야.”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네.”

탑 밖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줄곧 대립각을 세우던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훈훈해지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그럼 가자마자 바로 만나 볼 수 있나?”

“그건 힘들어요. 아무래도 제 남편한테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요.”

두 사람의 계획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이벤트가 내일이면 열릴 터였다.

수도 방위대라는 새로운 조직을 이끌어나갈 수장을 정하기 위한 대결. 펠릭스 세티엔이 이끄는 1 기사단과 헨리가 이끄는 기사단 사이에서 주야장천 있었던 신경전의 결말을 낼 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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