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53화 (53/111)

#53

“그 힘이 발현된 적은 없는 건가.”

“예전에 한 번 있었어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랍을 뒤지는 노파의 질문에 샐리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 힘이 발현되게 된 배경과 발현된 힘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상세히 설명했고, 노파는 그 설명을 듣기는 하는 것인지 계속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아까 그 말에 동의할게요.”

설명이 끝난 후에도 노파는 계속해서 방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샐리는 마탑에 오면서 마법사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던 헨리가 왜 그랬던 것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귀족으로서 살아온 샐리에게는 손님을 방치해 두고 제 할 일만 하는 노파의 행동이 상당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뭘 찾고 있는 거죠?”

“있어, 그런 게.”

“대답이라도 제대로 해주시죠. 저희는 엄연히 소개받고 온 손님입니다.”

“큭큭. 그래서 정중하게 대접해달라고?”

샐리의 일침에 노파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샐리를 비웃으며 이번에는 책장 근처에 놓여있는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 도움이 필요해서 왔으면서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서로 볼일만 보고 끝낼 사이인데 뭐 하러 예의를 차리느냐는 뉘앙스의 말투였다.

“지금 그 태도는 상당히 불쾌하군.”

“불쾌하면 뭐. 날 죽이기라도 하게? 그렇다면 당신 부인의 비밀을 알 수 없을 텐데.”

“마법사는 그쪽 말고도 많아.”

“마법사라고 해서 다 똑같은 줄 아나 보지? 그 사이에도 격이라는 게 있어. 장담하는데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없을 걸? 그 아가씨 정도 되는 힘을 살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여전히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에 헨리는 이를 부득 갈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일단은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 찾았다.”

상자를 한참 뒤적이던 노파는 먼지가 쌓인 검은 색상의 면장갑을 꺼내 자신의 오른손에 착용한 뒤 샐리에게 다가왔다.

“손.”

샐리는 마치 자신의 애완견에게 명령하듯이 장갑 위로 손을 올리라는 제스처에 속으로 노파의 무례함에 슬슬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아쉬운 사람이 굽혀야 하는 법이었기에 샐리는 노파의 말대로 검은 장갑을 낀 그의 오른손에 자신의 왼쪽 손을 올려놓았다.

“그쪽은 뒤로 좀 물러나 있어. 괜히 나 집중하는 데 방해되니까.”

노파는 턱으로 뒤로 물러나라는 제스처를 헨리에게 보였다. 헨리 역시도 아까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의 말대로 샐리의 근처에서 떨어졌다.

“간단히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어. 이 장갑을 낀 이유는 너의 내재된 마력과 내 마력이 혼합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이 필요해서야. 서로의 마력이 뒤섞이면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샐리는 마력과 목숨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괜히 질문했다가 노파에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하아, 귀찮게. 마력이라는 건 인간의 심장에 담겨 있는 거야. 즉 마력의 주인은 자신에게 내재된 마력을 본인의 고유한 힘으로 써야 하고, 몸 전체에 마력을 순환시키기에 제일 좋은 기관이 심장이니까.”

“궁금해 하던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너처럼 멍청한 줄 알아? 그 정도는 네 눈만 봐도 알 수 있어. 참고로 네가 나 속으로 욕한 것도 다 안다.”

노파의 말에 샐리는 뜨끔했다.

길거리에서 배웠던 험악한 단어들이 노파가 무례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하나씩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만든 약 때문에 지금 네 힘이 심장 안에 완전히 갇혀있으니까 내가 직접 그곳으로 들어갈 거야.”

“혹시 부작용 같은 게 있나요?”

“모르지. 이런 작업은 나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살면서 남의 심장에 내재된 거대한 마력을 탐구하러 갈 일이 어디 있겠냐고.”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는 작업인 듯 보였는데, 노파는 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는 태도를 보였다. 혹시 잘못되더라도 본인의 목숨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제는 휘파람까지 불고 있었다.

본인도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던데 그것에 대한 설렘이라도 느끼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거겠지?”

이제 곧 펼쳐질 마법에 대한 노파의 설명을 들은 헨리의 황금색 눈동자가 긴장감에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인데, 남편이 되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날 소개해준 사람이 설명 안 해주던가?”

“뛰어난 마법사니 믿어도 된다더군.”

“틀렸어. 난 그냥 뛰어난 게 아니라 마탑에서 제일 뛰어난 마법사야.”

노파는 헨리의 걱정스러움을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받아쳤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대단한 자신감은 좋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위험한 마법을 앞에 두고는 조금 근거가 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히나 본인도 처음 써보는 마법이라니 더더욱 신뢰가 떨어졌다.

“정말 믿어도 되는 거겠지?”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그쪽은 날 믿을 수밖에 없다니까? 이런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마탑에 나밖에 없어.”

“그래, 그럼 믿겠소. 다만….”

헨리의 몸에서 형형한 황금빛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에서 약한 진동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샐리는 그것이 헨리가 가지고 있는 오러라는 것을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황금빛의 기운에 눈이 팔려있던 샐리는 노파를 사납게 노려보는 헨리의 얼굴을 놓치고 말았다.

“가지고 있는 자신감만큼 성과가 좋기를 바라지. 만에 하나 내 부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말 안 해도 알겠지.”

헨리는 샐리에게 약간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것이 설령 내셔스 백작과 인연이 있는 마법사라고 해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샐리의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생각날 정도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전쟁터에서 그는 적군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많이 들어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살기를 자칭 마탑 최고의 마법사인 노파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알겠으니까 그 살기는 좀 넣어 두지 그래. 무서워서 마법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나 노파는 굽히기는커녕 오히려 깐족거리며 헨리의 신경을 더 긁었다.

“자, 두 사람 다 그만 해요. 어린애도 아니고 왜 그렇게 싸우는 거예요? 헨리 당신도 내가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너무 그러지 말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상극인 두 사람의 신경전은 이대로 뒀다가는 더 길어질 것 같았기에 샐리는 서둘러 개입하여 뜨거워지는 열기를 식혔다.

“마법사님도 마찬가지예요.”

샐리에게 저지당해 풀이 죽은 헨리를 비웃던 노파도 샐리의 째려보는 눈빛에 뜨끔하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흠, 이제 시작할 거야.”

그렇게 말한 뒤 노파는 눈을 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주문을 외우자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서 새하얀 순백의 빛이 발현되기 시작했고, 그 빛은 순식간에 방 전체를 뒤덮었다.

“큭.”

새하얀 빛은 그 밝기가 워낙 밝아서 눈조차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헨리는 샐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눈에 힘을 주며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초인적인 힘을 지닌 그라도 참을 수는 없었다.

“휴우, 끝났어.”

다행히 방 전체를 채웠던 빛은 금방 수그러들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