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위치도 거리도 모르는 마탑에 약 3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갈 수 있다는 것에 샐리는 마법의 신비함과 대단함에 조금은 취한 듯 보였다. 여전히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푸른빛의 터널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마도구는 마력이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소.”
헨리의 아리송한 대답에 샐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셔스 백작이 마탑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서로가 꽤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내셔스 백작도 마법을 다룰 줄 아냐는 질문에 대한 애매모호한 답변은 확실히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나 역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이오.”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 같은 눈빛에서 나오는 따가움을 느낀 것인지 헨리는 곧바로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는 답변에 대해 부가적인 설명을 추가했다.
확실히 세간에 알려진 상식에 따르면 마도구는 오로지 마법사들의 마력에만 반응한다고 했다. 즉, 마력이 없는 인간이라면 마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내셔스 백작이 마법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헨리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가까운 사이고 서로 비밀을 공유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밝힐 필요는 없다지만, 내셔스 백작이 굳이 이런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 역시도 샐리와 마찬가지로 내셔스 백작에게 반응한 마도구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곧 있으면 그대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릴 것이오.”
헨리의 말대로 두 사람은 마법사들의 성지인 마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법에 있어서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의문은 바로 앞에 있는 새하얀 형체의 문을 열고 나면 금방 해결될 터였다.
“잠깐 심호흡 좀 하고 열어도 될까요?”
평소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샐리가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이유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마법이라는 신비한 힘과 그 힘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마법사들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
“샐리, 마법사들은 모두 괴짜라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
인자한 노인이 운영하던 낡은 책방.
그곳은 샐리와 페드로 두 사람의 아지트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책방에 있는 다양한 책 중에 샐리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들은 모두 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지식과 교양과 관련된 것들은 생존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이기에 억지로 익힌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순수한 호기심에 있어서 마법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평생의 소원 중 하나였다.
“그래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마법이란 건 실제로 보면 정말 멋있을 거야.”
제국인들 사이에서 마법사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듯이 페드로 역시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마법사들의 존재에 대해 배웠다. 그는 로망에 반짝이는 샐리의 눈빛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실제로 보고 실망해도 난 모른다. 아마 보자마자 짜증을 내면서 샐리 널 두꺼비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어.”
“사람을 두꺼비로 만들 수도 있어?”
“음, 뭐. 그렇다고 하던데.”
페드로 본인도 실제로 본 것은 아니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분명히 저렇게 환상을 가질 만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꺼비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나야 모르지.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비참해질걸.”
***
그렇게 페드로의 비관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샐리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로망을 접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런 운명적인 만남을 앞두고 긴장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걱정 마시오. 혹시라도 그대에게 해코지하려고 한다면 내가 다 막아줄 터이니.”
설레는 만남을 앞두고 긴장한 샐리를 보고 헨리는 오히려 그녀의 긴장감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버렸다.
아무래도 아까 마차에서 마법사들의 존재를 가지고 너무 위협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헨리의 입장에서 본 마법사들은 온통 전쟁터에서 적군으로 만난 적밖에 없었기에 당연히 부정적이면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거 때문에 긴장한 게 아니에요. 그냥 마법사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네요.”
볼을 붉게 덮은 홍조에서 샐리가 느끼는 설렘의 정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겠소.”
“후우,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열겠소.”
샐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헨리는 마탑으로 통하는 마법의 문을 열었고, 문을 열자마자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지러운 수풀들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거대한 탑이 보였다.
문밖으로 나오자 포탈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둘은 어딘지도 모를 숲속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바로 앞에 마탑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탑이 보였으나 왠지 모를 으스스한 느낌에 선뜻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내셔스 백작이 보내서 왔나?”
그런데 그때 언제부터 있었는지 뒤에서 들린 한 남자의 목소리에 샐리와 헨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긴 머리칼과 수염으로 인해 얼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노파가 서 있었다.
“당신이 백작께서 소개해준다는 마법사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노파는 먼저 헨리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 부인이 먹던 약은 도대체 뭐였던 거지?”
헨리는 그 시선이 썩 달갑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그다웠다. 샐리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다가 이내 자신에게 닿은 노파의 시선에 다시 점잖은 태도를 보였다.
“흐음.”
노파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말없이 샐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시선에 샐리는 괜히 움츠러들었고, 헨리 역시도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이거 참 신기하군.”
멀리서 한참 샐리를 훑어보던 노파는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사용한 것인지 어느새 샐리의 코앞으로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봐!”
당연히 그 장면은 헨리에게는 거의 이성의 끈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샐리는 분명히 이 마법사가 자신에게 있는 무언가를 탐지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를 채며 당장에 달려들 것 같은 기세를 보이던 헨리에게 손짓으로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죠?”
“자네의 기운 말이야. 예전에 한 여인에게서 맡았던 냄새와 비슷하군. 아니, 똑같다고 하는 게 맞겠군.”
“그 사람이 제 엄마일 거예요.”
“호오, 그렇군.”
일순간 보였던 노파의 눈동자는 과연 늙은이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일단 내 방으로 가지.”
노파는 마탑을 향해 앞장섰고, 샐리와 헨리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이내 노파의 뒤를 따라 탑으로 향했다.
“여기 정말 그 많은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아는 한 그렇소.”
헨리도 이 탑 안에 무수히 많은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탑 자체는 거대하기는 했지만, 소문대로 그 대륙 대부분 마법사들이 살고 있다기에는 그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
그러나 그 의문은 노파가 마탑의 문을 열자마자 해결되었다.
두 사람은 마탑의 문을 열면 탑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혹은 탑 안을 돌아다니는 다른 마법사들이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마법의 힘이란 것은 그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왜 안 들어오나.”
“그 방은 뭐죠?”
“보면 몰라? 내 방이잖아.”
“그게 아니라 탑의 문을 열었는데 어째서 마법사님의 방이 나오느냐고요.”
“하아.”
쏟아지는 샐리의 질문에 노파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쉰 뒤 입을 열었다.
“그냥 마법사들의 생활공간은 이렇구나 하고 넘어가.”
귀찮음이 묻어나는 싸늘한 말투에 샐리는 이 이상의 질문은 단순한 에너지 소비라는 것을 깨닫고 헨리와 함께 노파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