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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51화 (51/111)
  • #51

    먼저 마법사와의 교류 사실을 밝히고 왔으니 헨리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내셔스 백작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저택에 도착하면 알 수 있겠지. 마법이란 것은 원래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니.”

    “마법에 대해 아세요?”

    “전쟁터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소.”

    마법사들은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그 존재 의의가 갈렸다. 그것은 마법사들 특유의 독립적인 특성으로 마력이 없는 인간과는 함께 생활해나가기 힘들어하는 선천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 무리에서 생활해나가는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마탑에 나와 생활했다. 마탑을 나와서 생활하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금전에 그 목적이 있었으며 대다수가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의뢰가 들어오면 적당한 금액을 받고 그 의뢰를 들어줬는데, 그 의뢰의 대부분이 바로 전투적인 측면이었다.

    “마법은 아름답고 신비한 힘이라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소. 전쟁터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싸움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헨리는 흉측한 형체의 마물들이 살아 숨 쉬며 자신의 부하들을 먹어 치우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각 지역에서 서식하는 마수들.

    모든 마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위험한 마수들이 있는데, 그런 위험한 마수를 길들여 전쟁터 한복판에 소환시키니 처음 보는 흉측한 마물의 모습에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은 알 수 없는 종족이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무엇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 좋소.”

    헨리 역시도 마법사의 존재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그에게 있어서 마법사는 전쟁터에서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위협했던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법을 배척하는 제국의 사상과는 별개로 헨리는 그런 마법사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마법을 쓰는 이들의 곁에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고, 그 소문의 대부분은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알겠어요.”

    말로는 알겠다고는 했지만, 샐리는 내심 마법사들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마법이라는 신비로운 힘에 끌리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의 로망과도 같다고 볼 수 있었다.

    ***

    “이런, 젠장! 나름 믿고 맡길 수 있다더니 그런 계집애 하나 못 죽여?”

    이제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언질에 기대에 부풀어있던 레너드는 멀쩡하게 저택을 나서는 샐리를 보자마자 분통이 터져 곧바로 의뢰를 했던 길드로 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손에 닿는 것은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는 패악질에 길드 내부의 분위기는 현재 굉장히 험악해진 상태였다.

    “내가 정보를 얻어내는 데 쓴 돈만 해도 얼만 줄 알아? 그런데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고 뭘 잘했다고 그리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나!”

    레너드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온 케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위험한 일을 도맡는 길드일수록 보안에 더 철저하게 신경 쓰기 마련이었다. 길드에게 의뢰를 하기까지 닿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레너드는 영지에 있는 보석까지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의뢰로 나갈 비용은 굳었음에도 레너드는 계획에 실패했다는 것 자체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정하시지요. 이런 식으로 행패를 부리는 것은 도련님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 야, 건방지게 구는 것도 적당히 해. 지금 내 꼴이 우습나 본데 작위만 되찾으면 너희 따위 내가 쓸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그렇군요.”

    케인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차가운 냉소로 레너드의 말을 맞받아쳤다.

    너 같으면 길드에 위험이 될 싹을 그냥 내버려 두겠냐는 식의 발언이 묻어나오는 차가운 웃음은 오히려 레너드의 화를 돋웠다.

    그러나 이런 레너드의 행패는 제이스의 등장으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야?”

    레너드는 제이스가 들어오자마자 흰자에 핏대를 세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거나 하는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금방이라도 손을 올릴 것 같은 난폭한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러나 제이스는 오히려 그런 레너드를 보고 빙긋 웃으며 오히려 모르는 체했다. 레너드의 입장에서 당장 엎드려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나오니 분통이 터져도 모자랐다.

    “이게!”

    결국 화를 삭이지 못한 레너드는 불끈 쥔 주먹을 레너드에게 날렸다. 하지만 팔목이 잡히며 제이스에게 순식간에 제압되고 말았다.

    “주제 파악하세요, 도련님. 배다른 여동생에게 자리도 뺏긴 너 같은 버러지한테 더 이상 할애할 시간 없으니까 그만 나가지?”

    “뭐, 뭐?”

    “사고 치지 말라고 멍청아. 이제는 감당할 힘도 없는 주제에.”

    제이스의 말대로 레너드에게는 근본적으로 힘이 없었다. 물리적인 힘은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위압감을 심어줄 만한 그 어떠한 권력도 손아귀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그 말은 레너드에게는 굴욕 그 자체였다.

    [제발, 행실에 조심 좀 하렴. 수도에는 왜 그렇게 가는 거니? 괜히 그 아이 신경 거스를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영지에 좀 박혀있어.]

    공작부인은 이미 체념한 지 오래였다. 너무 쉽고 허무하게 넘어가 버린 공작가에 처음에는 당연히 화가 났지만, 이미 그 자리를 꿰찬 샐리는 무섭도록 견고하게 자신만의 성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녀의 조력자까지도 헨리 크리스토퍼이니 괜한 욕심으로 목숨까지 위험해지기 전에 그냥 수도는 거들떠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을 납득하지 못한 레너드는 결국 뒷골목의 한량들에게까지 무시 받는 수치를 받고 나서야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달은 듯 보였다.

    “행패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 한 번 내 눈에 거슬리는 짓 하면 죽여 버린다.”

    제이스의 속삭임을 끝으로 레너드는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갔다. 제이스는 그런 레너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비웃었다.

    ***

    “자네이니 부탁을 들어주는 걸세.”

    “이번 일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뭐 그런 딱딱한 말을 하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자네에게 은혜를 입을 일이 있겠지.”

    내셔스 백작은 소문대로 확실히 검소한 사람이었다. 저택이라고 해봤자 다른 귀족들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조촐했고, 집안의 살림살이도 사치와 향락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 내셔스 백작은 함께 저택을 들어서면서 제법 긴장감이 서려 있는 목소리로 헨리에 이번 일에 대해 신신당부했다.

    아무래도 제국에서는 마법이 거의 불법적인 요소로 취급을 받다 보니 수도의 귀족이 마법사와 내통한다는 죄목으로 가문이 자칫하면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저도 감사드려요, 백작님. 스테판 공작가에서도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을 확실히 할 거예요.”

    “따라오시게.”

    자식이 없는 내셔스 백작은 흐뭇한 미소로 샐리의 감사 인사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을 저택의 지하실로 안내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창고나 다름없어 보이는 공간을 걷다가 백작이 멈춘 곳은 자물쇠로 잠긴 방이었다.

    그리고 그 방을 열자 샐리는 살면서 처음 보는 다양한 마도구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마탑에 연락을 하면 이곳에 포탈이 열릴 걸세.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냥 포탈을 걸어서 통과하면 마탑에 도착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걸세.”

    그렇게 말한 백작은 탁자에 놓여있는 동그란 구슬을 툭 건드렸다. 그 후 몇 초가 지나자 벽에서 빛이 나더니 마탑으로 통하는 푸른 포탈이 생겨났다.

    “신기하네요.”

    푸른빛이 활활 타오르는 포탈 안은 샐리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활활 타오르며 뜨거워 보이는 푸른빛은 잡히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으며, 길 역시도 일반적인 평평한 도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형체만 마법으로 인해 이질감이 느껴질 뿐 그 이외에 모든 것은 현실 세계의 길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었다.

    “이제 거의 도착한 것 같소.”

    멀리 보이는 하얀색의 문은 분명히 두 사람이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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