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46화 (46/111)
  • #46

    “전 말이죠. 이 제국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고해성사에 샐리가 놀랄 틈도 없이 클로에는 입을 멈추지 않고 이어서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지금의 제국은 이상해요.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으면서 다른 나라를 아무렇지 않게 침략하려고 하고, 자국의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죠.”

    클로에의 말대로 현재의 제국은 이 상태로 두기에는 많이 위험한 것이 사실이었다. 최근 제국의 행보는 주변국의 적의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이는 결국 크고 작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고통받는 것은 전쟁터에 참여하는 기사들과 변방의 백성들이었다.

    특히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단순히 적국에 의해서만이 아닌 자국의 기사들에게도 약탈당하기 일쑤였고, 그런 피해가 계속 발생함에도 황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특별하게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죠?”

    언제나 생기발랄하던 눈에서 진지함이 묻어나며 거짓 한 점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센 의지가 느껴졌다. 샐리의 입장에서는 현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성녀 클로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래서 가까이 지내라는 말을 했던 건가.’

    클로에가 계시라고 지칭하는 여신과의 만남에서 여신은 분명 클로에를 직접 지목하며 도움이 될 존재라고 단언했었다.

    “맞아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쪽에서 패를 꺼냈으니 샐리도 굳이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럼 오늘부터 저희는 친구인 건가요?”

    “그것보다는 일단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동업자 정도로 하죠.”

    클로에는 계속해서 샐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공기마저 차갑게 만드는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지금처럼 원래의 천진난만한 꽃밭을 보여주니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샐리는 사람을 함부로 믿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신의 계기가 있고,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더라도 언제나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두 눈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을 직접 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도 공작님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가 필요해요. 대충 둘러대고 나오기는 했지만, 치료는 앞으로 주기적으로 필요하고,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니까요.”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서는 샐리도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클로에와는 가까이 지내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이 들자 샐리는 큰 결심을 하고 그녀에게 친근하게 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딱딱한 사이로 보이면 안 될 것 같고, 동업자 사이는 너무 딱딱하니 친구 사이라고 하면 좋겠네요.”

    앞으로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데 있어서 적당한 이유는 역시 두 사람의 친분관계 만큼 적당한 것이 없었다.

    ***

    “여기 정말 맛있어요. 아마 공작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샐리와 클로에.

    두 사람이 함께한 첫 외출이었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샐리는 생글생글 웃으며 메뉴판을 살피고 있는 클로에를 어색하다는 눈빛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은 어색하지도 않나.’

    이래 보여도 샐리는 나름대로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헨리에게 찾아가 과감하게 청혼하던 것도 그녀에게는 그 일을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목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여신의 계기를 포함해서 앞으로 있을 일을 위해서도 성녀와 친분을 다지는 것은 좋으면 좋았지, 손해 볼 부분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오신 게 처음이 아니신가 보네요?”

    “아하하, 그냥 궁에만 있기 답답할 때마다 가끔 몰래 나와요.”

    “그렇군요.”

    클로에가 샐리와 함께 온 식당은 처음 생각했던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정겨운 정서가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숙소와 식당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곳으로 서빙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큰 접시. 그리고 그 위에 올라와 있는 큼지막한 고기와 그 먹음직스러운 빵은 확실히 군침이 돌게 했다. 또한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있는 남자무리의 왁자지껄함이 식당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혹시 너무 시끄러운가요?”

    “아뇨, 그냥 성녀께서 이런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요.”

    “고급스러운 곳은 저랑 좀 안 맞더라구요.”

    그 말에 샐리는 왠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어릴 때 하도 길거리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차려입는 옷과 과하게 화려한 음식들에서 묘한 거부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물론 보기에 화려한 만큼 먹는 맛이 있는 것도 맞았지만, 때때로 이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저도 그런 화려한 곳보다는 이런 장소가 더 좋은 것 같네요.”

    두 사람 모두 애초에 성녀와 공작이라는 위치가 눈에 보이는 옷차림새가 아니었다. 클로에야 몰래 궁에서 빠져나오느라 그렇다 쳐도 샐리의 경우 그냥 최소한의 품격 정도만 양보한 옷차림새였다.

    “흐음, 뭘 먹으면 좋을까요. 여긴 원래 양고기 요리가 유명한데, 오늘따라 왠지 닭 날개 요리도 먹어보고 싶고….”

    한참을 메뉴판을 살피던 클로에는 이 식당의 자랑인 양고기 요리와 닭 날개 요리 사이에서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시켜서 저랑 같이 나눠 드실래요?”

    신기하게도 샐리 역시도 클로에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큼지막한 글씨로 추천한다는 메뉴판에 있는 양고기 요리도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옆 테이블에 놓인 큼지막한 닭 날개를 튀겨서 만든 요리도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튀김 요리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며 침샘을 돌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점심때가 되어 배꼽시계에서도 서서히 에너지를 충전하라는 신호를 보내오면서 허기가 느껴지던 터라 더 그런 것이 있었다. 더군다나 한 번 앓아눕고 난 뒤에 몸이 좀 괜찮아지자 이전보다도 입맛이 더 올라온 것 같았다.

    “저는 좋아요! 음료로는 저는 멜론 주스를 마시려고 하는데 공작님은 뭐 드실래요? 전 개인적으로 멜론 주스 추천 드려요.”

    “그럼 저도 같은 멜론 주스로 시킬게요.”

    클로에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것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더라도 꼭 이렇게 통하는 부분이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친근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그 냉정하던 샐리조차도 지금은 완전히 클로에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았다.

    “저희 근데 호칭은 좀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확실히 대놓고 성녀와 공작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특히나 클로에는 자신의 톡 튀는 백금발의 머리칼을 가리기 위해 다소 허름해 보이는 베레모를 눌러 쓴 탓에 아무도 그녀를 성녀라는 고귀한 존재로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옷들은 클로에의 부탁으로 샐리가 직접 준비한 것이기는 했고, 샐리 본인도 비슷한 차림새이기는 했다.

    성녀인 클로에는 몰라도 샐리는 이런 식으로의 외출에 있어서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조만간 자신을 호위해줄 기사를 붙여줄 테니 외출할 때 주의하라는 헨리의 신신당부에도 클로에의 부탁에 별다른 호위 없이 외출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외출하자는 클로에의 부탁에서 자신과 친목을 다지고 싶다는 목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애초에 큰 빚이 있었으니 그런 부탁 정도는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레너드의 성격상 아직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범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까지 목숨을 노릴 인물로 떠오르는 사람은 레너드 한 사람밖에 없었다. 독이 유입된 루트 자체도 분명 작위를 이었다는 소식과 함께 저택을 채운 각종 선물 꾸러미 정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호위가 없는 외출에 있어서 굳이 신분을 드러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샐리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인지 뜸을 들이고 있는 클로에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몸을 비비 꼬며 부끄러워하는 그녀로부터 비슷한 가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흘낏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에서조차도 쑥스러워하는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희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거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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