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45화 (45/111)
  • #45

    “이, 이게 뭐예요?”

    “프러포즈요.”

    아까보다 배로 커진 동그란 눈동자의 샐리를 보면서 헨리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며 말했다.

    “프러포즈요?”

    당황스러움에 되물은 샐리를 헨리는 멀뚱멀뚱 쳐다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결혼 전에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해야 되지 않겠소.”

    “그거라면 제가 했잖아요.”

    프러포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말 그대로 일종의 계약에 관한 통보였지만, 어쨌든 결혼하자고 말을 했으니 샐리는 그것을 프러포즈라 생각했다. 하지만 헨리는 생각이 달랐다. 아니, 부하들의 핀잔에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대도 한 번 했으니 나도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소.”

    헨리의 활활 타오르는 의욕적인 눈을 보니 이 목걸이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밤을 새우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때문에 샐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난 뒤에 그가 건넨 상자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고마워요.”

    “내가 채워주겠소.”

    “당신이요?”

    “이 정도는 연습해서 괜찮으니 믿어주시오.”

    그가 말한 대로 목걸이를 채우는 솜씨에 있어서 능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샐리는 그가 자신에게 목걸이를 채워주기 위해 연습했다는 사실과 함께 아까 봤던 비장한 표정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려 웃음이 나왔다.

    “멋대로 고르기는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소.”

    “마음에 들어요. 정말로 고마워요.”

    달빛이 어둠에 의해 잠시 약해지자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덮치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끈적한 키스를 나누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분위기에 취한 돌발행동이라고 치부하면서도 말이다.

    ***

    헨리가 언질을 준 대로 클로에는 다음 날 점심때쯤 되어 저택을 찾아왔다. 샐리는 미리 사용인들에게 성녀가 저택을 방문할 것이라며 정중히 대하라 명했었고, 저택을 찾아온 클로에는 하녀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샐리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뭐가 그리 반가운지 클로에는 서재로 들어서자마자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샐리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성녀님. 성녀께서 스테판 공작가의 저택에 방문해주시니 저희에겐 더 없을 영광의 순간입니다.”

    “너무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마셔요.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도 아니니까요.”

    클로에의 말에 샐리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격식을 차린 인사를 받아 민망해하는 성녀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다 보니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거든요.”

    “그럼 황궁에서 몰래 빠져나오셨다는 겁니까?”

    황궁의 경비가 그리 허술할 리가 없었다. 다른 나라와 국경이 맞닿은 지역보다도 더 삼엄한 경비를 서야 하는 곳이 바로 황족이 지내고 있는 황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황궁을 가녀린 성녀가 혈혈단신으로 빠져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황궁의 경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냥 외출 목적을 조금 속였을 뿐이에요.”

    “그러십니까.”

    뭐라고 핑계를 대며 둘러댔을지 조금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괜히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몸이 많이 나아지셨겠지만, 아직은 쉬셔야 해요.”

    “안 그래도 업무량을 많이 줄였습니다. 지금 보고 있던 서류만 보고 오늘 일은 끝낼 생각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절 방으로 안내해주실래요? 공작님을 치료해드려야 하니 장소를 옮기는 게 좋아 보이네요.”

    “알겠습니다.”

    형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샐리는 앞장서서 클로에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클로에는 이전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작위를 얻고 난 뒤 왠지 더 늠름해진 샐리의 뒷모습을 황홀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방으로 향하기까지 그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지난번 제 목숨을 구해주신 것도 모자라 이렇게 계속 도움을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샐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살짝 굽히며 클로에에게 예의를 차려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영문도 모른 채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터이니 이렇게 말로만 감사를 표하는 것도 샐리 입장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했다.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한 일인걸요.”

    아까와 마찬가지로 클로에는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혹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은 그 어떤 감사 인사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샐리는 클로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 어떤 무리한 부탁이라도 무엇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저랑 친구가 되어주시겠어요?”

    “친구요?”

    당황스러운 부탁이었다.

    들어주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부탁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본다면 목숨값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요구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성녀께서는 이전부터 저에게 호감을 가지고 계셨죠.”

    “네, 맞아요.”

    “왜 그런 것인지 자세한 부분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당신에게서 봤던 빛 때문이었어요. 그 빛은 분명히 훗날 원대한 꿈을 이룰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빛이었으니까요.”

    일종의 성녀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성품, 능력 등을 빛으로 보는 특이한 눈을 가진 클로에는 아름다운 빛을 품은 이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꼈다. 또한 이번 경우에는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샐리가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기분 나쁜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제멋대로 한 사람에 대한 제단을 내리는 거니까.”

    또다.

    이전에도 한 번 느꼈던 처연한 감정이 방금도 클로에의 얼굴 한구석을 쓸고 지나갔다. 워낙 순식간이라 둔한 사람은 눈치를 채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 날카로운 눈을 가진 샐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숨기고 있는 사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애초에 성녀의 존재에 대해 약간은 미심쩍은 시선을 가지고 있던 샐리는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해서 저와 뜻이 맞으리란 법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공작님한테는 계속 이끌리더라고요.”

    다소 끈적한 시선에 샐리는 몸에 소름이 돋으며 클로에에 대해 이상한 오해가 생겨버렸다.

    “죄송하지만, 전 그런 취향도 아닐뿐더러 남편이 될 사람도 있습니다.”

    “네? 아하하.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냥 공작님한테서는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죠.”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클로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오해가 생길만한 발언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공작님도 계시를 받지 않았나요?”

    그 말에 샐리는 백색의 공간에서 자신을 여신이라 지칭하는 특이한 생물을 만났던 꿈이 생각났다. 분명히 여신이라는 존재를 만난 것은 맞았지만, 어째서 그 사실을 클로에가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날 저한테도 오셨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그 꿈에 대해서는 클로에가 알 방도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자신을 살린 성녀의 힘도 그렇고, 여신의 계시를 받은 부분도 그렇고 그녀가 성녀라는 존재에 걸맞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샐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이 맡고 있는 수상한 냄새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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