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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31화 (31/111)
  • #31

    “만약 그 자리에서 징계를 내리려 했다면 야닉도 마찬가지로 징계를 받았을 거예요.”

    “그 정도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제가 징계를 받더라도 녀석을 보낼 수만 있었으면 그 어떤 징계를 받더라도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알아요. 야닉이 그런 징계 따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굉장히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요.”

    “말씀하시는 그 불합리한 결론이 도대체 뭡니까.”

    “야닉이 받는 징계의 강도와 1 기사단의 기사가 받는 징계의 강도가 달라지는 거죠.”

    이렇게까지 말하자 곧바로 주안과 헨리는 샐리가 어째서 아까의 갈등 상황을 애매하게 끝을 냈는지 알 것 같다는 듯 총명한 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서로 교환했다. 그러나 야닉은 여전히 샐리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굴러가는 눈동자에서 지금 그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생각하기 위해 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저렇게 굴려대면 어지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러가던 눈동자가 멍하니 멈추자 야닉은 샐리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징계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한 잘못에 대해 내리는 벌이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야닉이 한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완벽한 증거와 증인이 남게 되죠. 그렇지만 야닉이 들었다는 그 뒷담화는 어떨까요.”

    1 기사단이 하던 뒷담화는 분명히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었다.

    샐리가 몸으로 헨리를 꼬셨다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두 사람의 잠자리에 관한 외설적인 이야기들. 그들은 이제 공작이 된 샐리를 자기들도 꼬셔볼 걸 하며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하는 저급한 농담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들은 것은 오로지 야닉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야닉의 동료인 헨리의 기사단은 당연히 야닉을 믿고 1 기사단과의 충돌을 각오하면서까지 대립을 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야닉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직접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방조했다는 죄목으로도 징계를 내릴 수도 있었다. 결코 합당한 징계가 아니더라도 힘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 황궁이었으니까.

    무력이 아닌 지위와 권력에서 나오는 힘의 위력을 아직 모르는 야닉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런 모욕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제 주군을 욕보인 겁니다.”

    야닉에게 있어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바로 헨리였다.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가 모욕을 당한 일은 야닉에게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야닉의 뜻에 동조하듯 헨리의 고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격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최대한 사실이라는 것을 체감시키기 위해 야닉은 그들의 대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읊었다. 그 안에서 샐리를 모욕하는 내용을 들었을 때의 헨리는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는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 섰다면 헨리는 아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내와 부하들을 욕한 자들을 죽여 버렸을 수도 있었다.

    “야닉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는 걸 말하는 것뿐이지.”

    “그렇다면 그 최선의 방법이란 게 대체 뭡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분명히 자신의 근질거리는 몸을 달래줄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야닉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방안이 무조건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만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화를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대단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헨리가 반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미심쩍어하던 주안도 어느샌가 그녀를 보는 눈빛이 많이 온순해졌음이 느껴졌다.

    조금 둔한 면이 있더라도 헨리의 곁에서 산전수전 겪어온 부단장이나 되는 인물이라면 샐리 스테판이라는 사람이 절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황궁에서는 주기적으로 정무 회의라는 걸 해요. 황제와 귀족들 그리고 관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사항들에 대해 논의를 하는 걸 말하죠. 저는 거기서 황궁 근위대라는 조직을 변화시키는 안건을 내놓을 생각이에요.”

    “새로운 조직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요.”

    가만히 듣고 있던 헨리가 드디어 궁금증을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황궁의 근위대와 수도 방위 병력을 합친 조직을 새로 만들까 해요. 지금의 조직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당신과 당신의 기사들이 이곳 수도에 안착하기에는 이 방법이 제일 좋아요.”

    “권력의 단위를 하나로 합치자는 거로군.”

    “맞아요, 그리고 그 하나로 병합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당신이 될 거예요.”

    상상을 넘어선 두 사람의 대화를 야닉과 주안은 쫓아가지 못했다. 다만, 흥미롭게 그 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신의 단장을 보아하니 그녀가 내놓은 방안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조직을 이끌기에는 1 기사단이 가장 걸림돌이 될 텐데.”

    수도 방위 병력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은 이미 수도를 지키기보다는 범죄자들의 뒤를 봐주는 든든한 뒷배 정도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야닉에게 고마워요. 덕분에 분위기가 달아오르게 됐으니까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조를 향해 가고 있었다. 1 기사단은 갑자기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황궁에 도착한 헨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틈만 나면 전장에 나가는 만큼 언제나 그랬듯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야 있었지만, 괜히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도 샐리의 제안은 말 그대로 기회로 다가올 것이었다.

    특히 1 기사단의 단장인 펠릭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굳이 그 사람에 대해 따로 알아보지 않더라도 헨리에 대한 적대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헨리를 아래로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하면 그걸 놓칠 바보가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수도 전역을 아우를 수 있는 지휘권은 그가 가지고 있는 황궁을 지키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야닉 당신에게 1 기사단을 패 죽일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를 주겠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입니까?”

    이렇게 쉽게 설명이 될 것을 왜 그리 빙빙 돌리면서 어렵게 말하는지 답답해하던 야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미 그의 머릿속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1 기사단을 짓밟고 있는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 있죠?”

    “기대해도 좋소.”

    샐리는 자신이 내놓은 방안이 마음에 든다는 듯 벌써부터 몸을 풀고 있는 헨리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럼 이야기는 이쯤하고 같이 점심 먹으러 갈까요?”

    “예약해놓은 식당이 있소.”

    “어머,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그동안 서로 바빠서 못 봤으니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소.”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짓는 저 미소에 샐리 역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두 사람의 불타는 애정으로 후끈해진 방안 분위기에 야닉과 주안은 눈치를 보며 먼저 일어났다.

    ***

    “어서 오십시오.”

    여전히 건들거리는 태도였지만, 구색은 맞춘 정중해 보이는 인사였다. 1 황자인 오언은 자신의 동생이자 2 황자인 토니가 성녀와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클로에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성녀라고는 하나 황자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는 위치였기에 클로에는 그리 달갑지 않은 초대장에도 이렇게 황자인 오언이 마련한 자리에 올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찾으셨는지요.”

    “하하,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마시지요. 그저 황궁에서 지내는 한 식구인 성녀께서 생활에 불편함은 없는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클로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으면서 친근하게 굴며 한데 묶는 그의 말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굳이 의도를 떠보지 않아도 클로에는 그가 이 자리에 자신을 부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2 황자와 만난 사실이 그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제야 위기감이 느껴졌는지 행동에 나선 것이 분명했다.

    “토니와 함께 티 파티를 가지셨다던데.”

    “아, 네. 2 황자께서 귀족들을 소개해준다고 하셔서요.”

    “역시 성녀께서는 세상 물정을 모르시는군요.”

    “네?”

    갑작스러운 무례한 언사에 클로에는 입으로 가져가던 향긋한 찻잔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그 녀석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성녀님을 자기가 아는 귀족들에게 소개했겠습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어 보이던데요.”

    “이득이 없는 일을 그 녀석이 하겠습니까. 허약하고 순진해 보여도 머리 회전만큼은 빠른 아이입니다. 성녀님께 무언가 얻어낼 것이 있으니 그런 행동을 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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