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26화 (26/111)

#26

“저기예요.”

피가 묻어 질척이는 남자의 손이 두 사람에게로 닿으려는 순간 한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성경책을 들고 있는 목사와 어디서 난 것인지 굵직한 몽둥이를 든 푸줏간 주인이 달려와 남자를 저지했다.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너희가 벌이고 있는 일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남자의 말대로 황제가 신경 쓰고 있는 곳은 최근 무역 문제가 발생한 왓튼 왕국과의 전쟁이었다. 때문에 대외에 쏠린 신경을 틈타 수도에서마저 어두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빈민가에서 흉흉한 범죄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페드로와 아이들이 건드린 것은 그 성행하는 범죄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일부만으로도 이렇게 피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남기고 푸줏간 주인장의 무게에 눌려 완전히 구속되었다.

“다친 사람은 없니?”

목사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페드로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이끌며 위험천만한 일에 몸을 담고 있어도 결국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자신의 실책으로 죽을 위기에 놓인 샐리를 보니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눈물이 무색하게도 칼에 깊숙이 찔린 상처 부위는 이미 새살이 돋아 멀쩡해졌다. 이내 페드로의 무릎에 점잖이 누워있는 샐리의 상태를 살피는 목사가 바닥에 흥건한 피가 누구의 것이냐 묻는 말에 페드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바로 샐리와 페드로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공유된 사건이었다.

***

“그래서 눈을 떠보니 멀쩡하더라고요.”

“칼에 찔렸는데도 말이오?”

헨리는 샐리가 소년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대신 칼을 맞았다는 아찔한 이야기에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으면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그 모습에 샐리는 하던 이야기를 잠시 멈췄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소.”

그러나 헨리는 그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제법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걸맞게 샐리의 어린 시절은 헨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어려움은 샐리 본인이 자처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언제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인 위기 없이는 기회도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기도 했다. 샐리는 그런 위험 부담을 극복한 덕분에 지금 스테판 공작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인 정보력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그 뒤로는 괜히 날 피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많이 놀랐던 모양이에요.”

그럴 만도 한 것이 분명히 칼에 찔린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런데 상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새살이 돋아나는 것을 목격한다면 그 믿기지 않는 일에 어린 가슴에 많이 놀랐을 것이었다.

그래도 나이답지 않게 이래저래 많은 일을 겪으며 생각이 깊었던 페드로는 그녀의 비밀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묻는 주변 어른들에게도 대충 얼버무릴 뿐.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조금 옅어졌을 무렵 페드로는 샐리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유했다.

그것은 자신이 기억도 안 나는 갓난아기 시절 거리에 버려졌고, 그걸 발견한 푸줏간 주인장이 목사에게 데려가 두 사람의 손에 컸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적과도 같은 샐리의 비밀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었지만, 샐리는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저는 저택을 나와서 행복할 수 있었어요.”

샐리의 엄마는 당연히 딸이 함부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으나 그걸 막을 수도 없었다. 그 정도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분명 샐리는 헨리를 만나기 이전에 말라비틀어져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저는 그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세상에 대해 배웠어요. 그리고 현실이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낭만적이고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고요.”

“그렇다면 그 아이들이 이렇게 든든한 정보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신이 있었다는 거군.”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 아이들이라면 굳이 내가 아니었더라도 비슷한 일을 했을 거예요. 다만….”

“다만?”

“그냥 서로 도움을 줘서 지금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거죠.”

샐리는 스테판 공작가에 존재했던 보석 도둑에 관한 이야기를 헨리에게 해줬다. 언제부터인가 공작가에 가격에 구애하지 않고, 이런저런 보석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몰리는 것은 언제나 샐리였다. 확증 없이 심증만으로 공작부인은 샐리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언제나 그렇듯 억울함을 호소했던 샐리였지만, 실상은 그 보석 도둑의 정체는 샐리 본인이 맞았다.

“보석에 손을 댔던 거요?”

“훔칠 수 있는 건 모두 손을 댔어요. 나 때문에 다른 사용인들이 해고당하기는 했지만, 자금이 필요했거든요.”

여기서 그녀가 말하는 자금이란 분명 정보원들을 지금의 위치로 성장시키기 위한 돈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 훔친 게 걸렸다면 맞아 죽었을 지도요.”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얘기하는 샐리를 바라보는 헨리의 얼굴에 착잡함이 묻어났다.

어쩌면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헨리 본인의 과거도 절대 순탄치는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군. 그래서 보석을 판 돈으로는 무엇을 했소.”

“도서관에 갔어요.”

“도서관?”

“공부가 필요했으니까요.”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틈만 나면 친구들이랑 도서관에 갔어요.”

“저택에서는 그대가 없어진 걸 몰랐나 보군.”

“저한테는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까요. 그리고 혹시 급한 일 있으면 메리가 도와줬어요.”

그녀에게 있어서 과거가 꼭 끔찍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필사적으로 찾는 모습이 애틋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헨리는 그런 샐리와 비교했을 때 자신의 과거를 떳떳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 옛날이야기를 하면 우리도 비밀을 공유한 사이가 되는 건가?”

헨리의 말에 샐리는 눈을 껌뻑이며 쳐다보다 뭐가 재밌는지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린 이미 비밀을 공유한 사이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라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으로 샐리는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태도에서 이내 헨리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뭔가 비밀이 있나 보네요.”

“그대만큼 많지는 않지.”

헨리의 말대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두 가지나 있었다.

첫째는 정보원들이 걸치고 있는 발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였고, 두 번째는 그녀의 상처를 치유한 신비한 힘에 관한 것이었다.

정보원의 힘이라면 아까 만난 칼이라는 소년에게서 얻은 정보로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으니 넘어갈 수 있어도 신비한 힘에 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말도 안 되는 치유력은 마치 성녀의 힘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 치유력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군.”

“어떻게요?”

헨리는 마탑과 관계가 있는 내셔스 백작에게 부탁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정체를 모를 그녀의 힘이 괜히 수면 위로 떠올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샐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선뜻 내놓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천천히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

“그래요, 그럼.”

샐리 역시도 자신에게 숨겨진 비밀이 궁금했다. 그 비밀이 제국의 성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란 것까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클로에는 숨기지 않고 제법 노골적으로 말로써 표현했으니까.

그러나 깊은 상처가 순식간에 낫는 힘은 분명히 제국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었다.

“약에 대해서는 알아볼 수 없을까요?”

생각해보니 실마리를 풀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셔스 백작은 틀림없이 믿을만한 인물이니 힘에 관한 것은 몰라도 약의 성분 정도를 알아보는 데 큰 부담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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