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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25화 (25/111)
  • #25

    무서운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는 와중에도 곳곳에 골목의 풍경이 샐리의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에 골골대며 누워있는 사람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구걸의 용도인지 빈 깡통을 들고 다니는 어린아이, 어느 으슥한 골목에나 있을 법한 매서운 눈빛에 덩치가 큰 사람들까지.

    “여기면 괜찮을 거야.”

    한참을 달려 가빠오는 호흡을 진정시킨 페드로는 꾸불꾸불한 골목을 달리자 나온 어느 막다른 길 앞에서 멈춰 섰다. 뒤에서 쫓아오는 남자들은 어느샌가 보이지 않아 샐리도 경련이 일어나는 다리에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긴 어디야?”

    “그냥 도망치기 쉬운 곳 중 하나야. 다른 곳들도 많이 있는데 쫓기다 보니 제일 괜찮은 곳으로 왔어.”

    잠깐 달리면서 느낀 것이지만 골목 자체가 여러 갈래 길로 나누어져 있어 꽤 복잡했다. 게다가 페드로는 작은 체구로만 통과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이용하여 도망친 것이기에 뒤쫓는 남자들 처지에서도 그들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아지트를 어떻게 알았을까.”

    “꼬리를 잡아서 뒤를 밟은 거겠지. 여하튼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겠지? 시간 좀 보내다 나가면 큰길로 보내줄 테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다신 오지 마.”

    단호하고 진중한 태도에 샐리는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집을 피우기 어렵다는 것을 그동안 먹어온 눈칫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아지트로 쳐들어왔던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하나가 샐리와 페드로의 앞에 나타났다.

    퉁퉁 부은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밤새 술을 퍼마셔 붉게 충혈된 눈과 함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낼 때마다 보이는 누런 이빨은 불쾌감을 조성하기 딱이었다.

    “여길 어떻게….”

    막다른 길이라 완전한 안전이 보장된 장소는 아니었으나 빙빙 돌았기에 한 번에 이 장소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페드로가 생각하기에 이 남자가 곧바로 이 장소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누가 넘어간 모양이야.”

    그게 아니고서는 이 남자가 나타난 시간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곧장 이곳을 알고 와야지만 설명이 되는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괜찮을까.”

    샐리는 각기 다른 장소로 도망쳤을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페드로의 말대로 누군가 정보를 넘긴 것이라면 모두가 위험했다.

    “일단 우리 몸 먼저 건사한 다음에 생각해야지.”

    뒤로는 쉽사리 넘기 힘든 담이 막고 있었고, 앞에서는 숨겨둔 칼까지 꺼내든 채로 두 사람에게 조심조심 접근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완벽한 외통에 몰린 상황에 제아무리 영민하여 아이들의 무리를 이끄는 페드로라도 막막하기만 했다.

    “젠장, 저 칼만 없었어도.”

    흉기까지 소지한 주제에 조심스럽기까지 하니 도무지 번뜩이는 노림수를 던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페드로는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더 빨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역시나 남자가 들고 있는 칼이 그의 머리 회전을 멈춰 세웠다.

    “이 애 놔주시면 안 돼요?”

    금방이라도 칼을 든 손을 뻗을 기세인 남자의 앞에 샐리가 나서며 말했다.

    “너 미쳤어?”

    자신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서는 샐리를 향해 페드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목소리 자체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열불이 터진다는 감정은 그대로 녹아들어 샐리에게 전해졌다.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할게요.”

    샐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던 음흉한 시선을 잊지 않았다. 아지트로 쳐들어올 때도 전면에 서 있던 남자였고, 추측하건대 노예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신을 보던 남자의 더러운 눈빛과 표정에서 그의 취향이 어떤지 예상할 수 있었다.

    “정말이야?”

    제안이 솔깃하다는 듯 기뻐하는 남자의 얼굴에 샐리는 등에 소름이 돋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조금의 불쾌한 감정도 내비쳐서는 안 되었다. 남자를 방심시키기 위해서 샐리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처연한 얼굴로 불쌍한 척을 하며 남자의 동정심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너….”

    여기저기 정보를 수집하는 페드로가 눈앞의 남자의 더러운 소문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남자는 고된 일들을 견디지 못한 여자아이가 죽으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어둠 길드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걸 아는 페드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협상하려는 샐리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류하려던 페드로는 샐리가 허리 뒤에 있는 작은 손을 꾸물거리며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달라는 신호를 손짓으로 보내는 것을 목격했다.

    눈치 빠른 페드로는 그 신호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루가스를 넘기라는 신호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궁지에 몰려 모든 것을 체념한 줄만 알았던 그녀의 결단에 페드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최루가스를 자연스럽게 넘기기 위한 연기를 시작했다.

    “네가 그럴 필요 없어! 저 사람이 원하는 건 나라고.”

    이런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극이라면 신파만 한 게 없었다. 페드로는 다급하게 샐리의 어깨를 붙잡으며 그녀를 만류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목소리에서도, 동작에서도 어색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이 명배우가 따로 없었다.

    “약속 지키시는 거죠?”

    그렇게 최루가스를 전달받은 샐리는 자기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뿌리치며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완벽히 방심한 모습이었다. 당돌하기는 하지만 연약한 여자애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히히,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살결을 느끼고 싶었다구.”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볼을 톡 건드리더니. 남자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음흉함이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쾌함도 잠시. 샐리는 완벽히 틈을 내어준 남자의 두 눈을 향해 들고 있던 최루가스를 뿌렸고, 눈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를 두고 페드로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가자.”

    그런 그녀의 모습은 페드로에게 더는 철없는 귀족 아가씨로 비치지 않았다. 샐리가 보여준 깡은 결코 곱게 자란 귀족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느 어린 귀족 영애가 자기 몸을 더듬는 손길을 견디며 상대방의 허를 찌를 준비를 할까.

    “너 대체 뭐야.”

    “감사 인사도, 궁금해하는 이야기도 일단 여기서 빠져나간 다음에 해줄게.”

    장단을 맞춰주기까지 한 성공적인 계획. 그러나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페드로에게 샐리는 자신이 이런 기지를 발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음을 암시하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샐리가 페드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딜 가려고.”

    이제부터 조금은 순조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눈의 초점과 앞을 가리는 눈물에도 남자는 어떻게든 본능적인 감각을 통해 자신을 지나치는 페드로를 잡아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꽉 쥔 채 그대로 잡은 몸을 향해 쑤셔 넣었다.

    “샐리!”

    그러나 그 순간. 페드로는 자기 몸 어느 부위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통증에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눈앞에서 대신 칼을 맞고 힘없이 넘어가는 여자아이의 형체에 그는 처음으로 샐리의 이름을 부르며 다급하게 피가 철철 나기 시작한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크윽, 빌어먹을 꼬맹이들.”

    눈에 들어간 최루가스에 다시 바닥을 뒹구는 남자는 다른 하나를 찌르기 위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바닥에 손을 더듬기 시작했다.

    “피가 제법 많이 흘렀구나.”

    남자는 어떻게든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바닥에 묻은 피를 쫓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숨을 죽인 채 샐리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페드로에게로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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