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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꽃-16화 (16/111)
  • #16

    “물론 꾸미지 않은 그대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한층 더 눈부시다는 뜻이었소.”

    “하하, 고마워요.”

    본인이 생각해도 어색한 웃음소리에 괜히 허공에 붕 떠 있는 손이 어색했다. 샐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상실한 손을 겨우 멈춰 세우고 나서야 머릿속이 조금은 점잖아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샐리를 보는 헨리 역시도 괜한 말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괜히 헛기침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원체 괜한 오해가 없는 깔끔한 마무리를 좋아하는 탓에 덧붙인 말이었다.

    그가 평소 하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을 뿐. 솔직한 성격에 나온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원래였으면 그저 덤덤하게 말을 끝마쳤을 텐데 괜한 말을 한 것 같은 민망함은 헨리로서는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샐리 역시 덤덤하게 넘기려면 넘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헨리였고,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는 티가 나는 데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 나가니 괜히 쑥스러웠다.

    “그보다 이번 파티는 우리한테 중요해요.”

    “스테판 공자가 문제인 거겠지?”

    “문제라기보다는 우리한테는 기회라고 할 수 있죠.”

    그나마 거슬리는 대상이 있다면 공작부인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파티에서 자기 아들을 밀착 마크하고 있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 기회를 틈타 샐리는 레너드의 속을 잔뜩 긁어버릴 셈이었다.

    안 그래도 분노를 조절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레너드였으니 조용한 곳으로 꾀어내어 일을 벌일 심산이었다.

    “그런 망나니하고 단둘이 있기에는 위험하지 않소?”

    “말했잖아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고.”

    지난번에 봤을 때도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기에 헨리는 걱정과 불안이 앞섰다. 비교 대상으로 친다면 최근에 있었던 제국의 남쪽 땅에 있는 산맥에서 있었던 야만족의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의 불안감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헨리는 많은 사상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전투를 앞둔 걱정과 지금 샐리에 대한 걱정이 비교 대상이 된다는 것에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헨리를 보고 있는 샐리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서로 맺은 계약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도 아니다. 부부가 될 것이기는 하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도 없는 계약상의 결혼일 뿐이다.

    원래였다면 이렇게 냉정한 말을 서슴없이 했을 터였다.

    한 번 냉정하게 말을 했다가 서운해 하던 그의 얼굴이 생각나니 샐리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내심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슬슬 든든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면 바로 소리를 지를 테니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장소는 테라스가 되겠군.”

    “맞아요.”

    순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단둘만의 장소로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좋기도 한 것이 샐리의 계획에는 딱 맞았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별걱정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기만 한 샐리를 앞에 두고 헨리는 당장 걱정보다는 그녀를 신뢰하기로 했으며, 이내 그녀의 계획에 대해 추리까지 하며 집중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공시적인 자리에서 그런 짓을 할지.”

    “무조건해요. 멍청하니까.”

    “그럼 믿겠소.”

    포장 따위 없는 거침없는 그녀의 말에 헨리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가 웃은 것보다 샐리에게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을 믿겠다는 그의 말 한마디였다.

    그가 대놓고 신뢰감을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저 힘내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신뢰받는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믿어요.”

    샐리 역시 곧바로 미소로 화답했다.

    처음에 헨리는 그녀가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방을 나서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진짜 위험해지기 전에 구하러 와줄 것이라 믿는다.

    그 뜻을 알아차린 헨리는 자신의 두 손을 꽉 쥐어 보였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 망나니의 손이나 칼이 그녀에게 닿기 전에 자신이 그자의 손목을 부러뜨려버릴 것이라고.

    ***

    황제가 직접 주최한 자리인 만큼 수도의 많은 귀족들이 참석한 모습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 많은 사람들. 이런 분위기는 샐리에게는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괜찮소?”

    이전까지 자신만만하던 샐리의 안색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낀 헨리는 샐리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냐며 물었지만, 샐리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어차피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처지였다.

    그녀가 염원하는 공작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이런 자리에 앞으로 수도 없이 얼굴을 비추며 참석해야 할 것인데, 계속 어려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차 적응해나갈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 수많은 이목이 두 사람의 등장으로 집중되어 더 힘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의 그림이 그려졌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실전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 일만 끝내고 나가자.’

    주위를 둘러보니 공작부인과 레너드가 한 귀족 무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들렸던 것처럼 공작부인의 안색에 아직 창백함이 다 가시지 않았지만, 오늘과 같은 자리를 기회로 삼기 위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인 것 같았다.

    “오랜만이오, 헨리 경.”

    헨리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넨 인물은 콘고 내셔스였다.

    제국에서 유일하게 마탑과 교류가 있는 인물로 그 힘을 통해 제국이 마법의 힘이 깃든 신식 무기들을 거래하는데 있어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마탑을 적대시하는 신전에서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으나 현 제국만큼 강대하면서도 신권에 대한 명분이 강한 국가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테판 공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하하, 이런 나이 먹은 아저씨를 만나 영광일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요즘 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인 공녀를 만나 뵐 수 있어서 제가 더 영광이지요.”

    내셔스 백작과 대화하면서 샐리는 꾸준히 헨리와 백작 사이의 분위기를 살폈다. 온화한 분위기를 보아하니 서로 우호적인 관계가 틀림없음을 알 수 있었다.

    “백작께서는 예전부터 날 도와주셨소.”

    “하하, 그리 말하니 조금 쑥스럽구먼. 난 단지 재능 있는 사람에게 투자한 것뿐인데.”

    헨리의 어린 시절이란 그가 속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 이 인연이 결코 가벼울 리 없다는 것을 샐리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쨌든 오늘은 바쁠 것 같으니 다음에 단둘이 따로 한 번 보세.”

    “그러지요. 제가 댁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거 좋구먼. 내 아들이 자네의 열렬한 팬이라서 말이야. 괜찮다면 방문했을 때 내 아들의 검술도 한 번 봐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거 고맙군.”

    두 사람의 대화가 훈훈하게 마무리되어갔다. 그러나 헨리를 찾아오는 인물은 내셔스 백작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귀족들이 헨리를 찾아와 인사를 나누며 담소를 나눴고, 헨리가 입을 벙긋거리며 사과를 건넸을 때 샐리는 괜찮다며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지금은 구석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드디어 등장한 황제와 그의 정부인 몰리 캐스터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소란스러웠던 장내는 황제가 등장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숙해졌다. 이윽고 황제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귀족들이 차례로 나서 값비싼 선물을 몰리에게 건네며 축하 인사를 건넸고, 몰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환하게 웃다가 이내 구석에 있는 샐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외모만큼은 출중했다. 황제가 사랑에 빠졌다고 한들 모두가 이해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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