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1화 (11/111)

#11

“신기하네요.”

“그렇죠?”

신비한 현상에 대해 신기하다고 말했을 뿐인데, 클로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샐리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어 했다.

“성녀께서는 산책하시던 중이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실내에만 있다 보면 몸이 굳기도 하고 황궁의 정원이 아름답다 보니 자주 나오는 편이에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샐리는 어쩐지 눈앞에 있는 이가 불편하여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려 했다.

“괜찮으시다면 저랑 차 한 잔 어떠세요?”

그러나 바닥에서 떨어지던 발걸음은 성녀의 요청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성녀가 아닌 황족의 성을 쓰며 바로 옆에서 황제를 보좌하는 인물이었으니 밉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물론 아까 헨리가 급히 자리를 떠야 했던 문제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라면 알아서 해결했을 거라는 생각에 샐리는 일단은 성녀의 초대를 받기로 했다.

***

“생각보다 별거 없지요?”

“아, 죄송합니다.”

샐리 본인도 너무 노골적으로 방 안을 훑어봤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제국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주면서 황제를 보좌하는 성녀라는 인물의 방이라기에는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테이블, 침대, 옷장, 거울.

있을 건 있었지만, 가구도 어딘가 낡아 보였고, 방의 위치 역시 황궁의 구석진 곳에 있었다.

“차 맛은 괜찮나요?”

씁쓸한 맛이 깊은 여운을 남겨주면서도 뒷맛이 혀에 오래 남아있지 않는 깔끔한 차 맛.

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이제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하하 호호 떠들며 단순히 친목을 다지자는 이유로 자신을 초대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서로 일면식도 정보도 없었기에 지금 이 만남의 이유가 결코 단순할 리 없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랄까.”

“호기심?”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자신을 초청한 이유를 호기심이라고 말하는 클로에를 바라보는 샐리의 눈꼬리가 오히려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샐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여태껏 모습을 비춘 적 없는 공작가의 영애가 황궁에 방문하여 황제를 알현하였다. 그것도 제국 최고의 기사인 헨리 크리스토퍼와 함께 말이다.

“저한테 궁금한 점이 많으신가 보군요.”

“몇 가지 있긴 해요.”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었다. 클로에의 검은 눈동자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싶다는 의도를 숨기지 못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샐리는 그런 그녀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어쨌든 황제의 곁을 보좌하는 성녀였다. 과연 그녀가 단순하고 원초적인 호기심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까.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한 의구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가 황궁에 온 이유는 황제 폐하께 결혼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방문한 겁니다.”

“결혼이요? 공녀께서 결혼하시나요?”

“네, 헨리 경과 결혼하고 작위도 물려받을 생각이랍니다.”

클로에는 샐리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위를 물려받으시는 거라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는 거겠네요.”

“그렇지요.”

샐리는 덤덤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속으로 움찔했다. 어떤 의도에서 물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그 질문은 제법 날카롭게 속을 후벼 파는 질문이었다.

“아, 너무 제 할 말만 한 것 같네요. 공녀께서도 제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질문하셔도 좋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샐리 역시도 성녀에 대해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여신에게 선택받은 과정은 물론 치유력에 대해서도 궁금했고, 그녀의 출신 성분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원초적인 감성 이전에 지금의 대화는 의뭉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궁금한 점이 없다면 이만 일어나 봐도 될까요?”

샐리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의도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는지는 몰라도 마치 조사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샐리가 선택한 것은 그냥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었고, 클로에는 그런 샐리를 애써 막으려 하지 않았다.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좋은 차를 마실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이건 진심이었다. 자리가 불편해서 그렇지, 그녀가 대접했던 차 맛은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샐리는 찻잎을 조금 달라고 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문을 나서는 샐리는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던 한 남자와 마주쳤다. 단정한 복장이기는 했으나 입고 있는 옷이나 어딘가 날이 서 있는 자세를 보면 단순히 평범한 시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상반되는 평범한 흑발에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 튀는 것 없는 외모는 그리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흘깃 남자를 살피던 샐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남자를 지나쳤다. 남자 역시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런 그녀를 지나쳐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누구였어?”

“스테판 공녀. 정원에서 산책하는 데 우연히 마주쳤거든.”

“특별한 거라도 있었어?”

남자는 자연스럽게 클로에의 앞에 앉으며 방금 샐리가 나간 문 쪽에 시선을 가져갔다.

“밝은 빛이 요동치는 게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 같았어.”

대외적으로, 그리고 황제조차 모르는 성녀 클로에의 또 다른 능력은 바로 눈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보고자 하면 사람이 가진 생각과 감정들이 색의 움직임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샐리에게서 본 색은 긍정적이고 당차 보이는 하얀빛이 이리저리 심하게 요동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 스테판 공녀와 크리스토퍼 경의 연애 소식이 1면에 실렸던데.”

남자는 자신이 가져온 신문을 클로에에게 건넸다. 그의 말대로 신문의 머리기사에는 세기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자극했다. 거기에 스테판 공작가의 저택에서 헨리를 마중 나온 샐리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있었다.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가.”

남자는 클로에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샐리와 헨리 두 사람의 관계와 클로에가 봤던 요동치는 새하얀 빛과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했다.

“공녀와는 무슨 대화를 나눴어?”

“내가 너무 흥분해버려서 대화다운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어. 아, 하나 있다면 공녀께서 자기가 작위를 물려받겠다고 하셨어.”

“작위를 물려받겠다고?”

점잖게 가라앉아있던 남자의 눈동자가 일순간 예리한 빛이 감돌다가 사라졌다.

“하긴 최근의 새로운 법안이 제정되었으니.”

그래서 남자는 더 의문이 생겼다. 여자도 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법이 제정됨과 동시에 스테판 공녀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 공녀가 제국 최고의 기사와 결혼을 한다니.

그때 남자는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것인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스?”

“미안, 클로에. 갑자기 급한 볼일이 떠올라서 말이야.”

제이스란 이름을 가진 남자는 이내 클로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

“밖이 우리들 이야기로 떠들썩하던데.”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한 신문사는 수도 내에서 아주 이름값 높은 신문사는 아니었지만, 헨리의 기억 속에 들어본 적은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글로써 소식을 전했더라면 사람들의 반응이 이토록 뜨거울 리 없었다.

어디서 찍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스테판 공작가의 저택 내부에서 찍은 것이 분명했다.

“당신이 꾸민 일이오?”

“글쎄요.”

이도 저도 아닌 대충 얼버무리는 대답. 그 대답에서 헨리는 이번 일을 주도한 것이 샐리임을 단박에 눈치 챘다. 다른 무엇보다 저택 내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찍은 것 같은 사진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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