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사람의 꽃-1화 (1/111)
  • #1

    “아가씨, 아가씨!”

    문밖에서 들려오는 하녀 메리의 목소리에도 샐리는 여전히 따스한 아침 햇살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공작님께서 마차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집안의 가장이자 제국 공작의 죽음. 당연히 큰 이슈일 수밖에 없었던 뉴스는 수도 전역에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공작의 죽음에 어안이 벙벙하단 반응이었다.

    공작에게 어떠한 감정이 있든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스테판 공작의 사고로 인한 죽음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샐리는 아니었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이 들은 소식을 빠르게 보고하고 있는 메리를 앞에 두고도 샐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아몬드가 박혀 있는 쿠키를 입에 넣으며 입안에서 퍼지는 아몬드의 고소함을 즐겼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패륜적인 행동이라며 욕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애초에 샐리는 공작을 단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호의적인 감정이라면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공작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였고, 최근 제국의 정세를 봤을 때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두 번 다시는 없을 기회였다.

    “그랬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은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샐리의 곁을 지켜온 하녀로서 공작에게 좋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조금은 충격을 받거나 당황스러워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덤덤하고 태평한 아가씨의 반응에 메리는 처음 공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당황스러웠다.

    “놀랍지 않으세요?”

    “놀랄 게 뭐 있니. 사람이야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것을.”

    공작의 죽음이 놀라울 리가 없었다. 애초에 공작의 사고를 유도한 사람이 샐리 본인이었으니 놀라기는커녕 기쁜 티를 내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얽매고 있던 질기고 질긴 족쇄에서 풀려난 해방감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수도의 길거리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자신의 어머니에게 반했던 공작은 부인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아랫도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취했다. 그것도 뒷골목에서 유명한 한량들을 매수해 가판대를 부수면서까지 장사를 방해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제 뜻에 따르지 않는 여자를 결국 강제로 자신의 침실까지 끌고 오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게 바로 샐리였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샐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아이가 차마 감당하기 힘들었을 이야기였지만, 샐리의 어머니는 진실을 숨기고 싶지 않아 했다.

    공작부인에게 험악한 대우를 받고, 밤마다 공작에게 시달리는 인생에 대한 감정을 풀어놓을 곳이 딸 말고는 없었다.

    [엄마는 내가 밉지 않아요?]

    어린 샐리의 질문에 그녀의 엄마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샐리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한 궁금증이 묻어나는 똘망한 눈동자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던 모습. 그것이 샐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눈물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니. 엄마가 샐리를 왜 싫어하겠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하나뿐인 딸인데.]

    눈물에 잠긴 목소리였지만, 글자 하나하나 또박또박 들렸다. 아직도 샐리의 귀에는 그 먹먹한 목소리가 맴돌았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던 강인함 속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감정이 드러났지만, 딸에게 숨기고 싶어 애써 미소를 짓던 얼굴이 또렷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메리.”

    “네, 아가씨.”

    “편지 한 통 전해주겠니?”

    “편지요?”

    뜬금없는 편지 이야기에 안 그래도 정신없는 메리의 머릿속은 더 뒤죽박죽으로 뒤섞였다.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해 다른 귀족들과 알고 지낼 수 없던 샐리가 편지를 보낼 곳이 도통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크리스토퍼 경께 전해줄래?

    “네?”

    샐리가 언급한 크리스토퍼는 황실의 성이었다. 현 제국을 건국하여 이끌어가고 있는 주역이자 최고 권위자들이 가진 성이었다. 하지만 샐리가 그 성 뒤에 붙인 호칭은 위화감이 있었다. 황족에게 기사들에게 붙이는 호칭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메리가 얼어붙어 있는 이유였다.

    “언제 만나신 거예요?”

    “뭐가.”

    “크리스토퍼 경이요. 저 몰래 언제 만나신 거냐구요.”

    제국에서 황실의 성을 쓰며 기사에게나 쓰는 호칭이 뒤에 붙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헨리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 황실의 방계 혈통으로 들리는 바에 의하면 1 황자에 의해 견제받으며 기사단장으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메리는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인 샐리와 헨리 크리스토퍼의 접점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1 황자가 곱게 보지 않는 헨리 크리스토퍼는 매번 크고 작은 싸움을 위해 출정이 잦았고, 샐리의 경우 저택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만난 적 없어.”

    “네?”

    “그래서 이제부터 만나보려고.”

    “그게 무슨….”

    샐리는 연달아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일들을 머릿속에서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낑낑대는 메리가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샐리에게 있어서 메리는 충실한 하녀 그 이상의 관계였다. 공작과 공작부인에 시달리던 샐리에게 있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한 존재가 바로 메리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메리는 단 한 번도 샐리의 편이 아닌 적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맛있는 쿠키와 차와 함께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는 것도 메리의 고군분투 덕분이었다.

    “메리.”

    “네, 아가씨.”

    “나 믿어?”

    “물론이죠.”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어?”

    자신을 향해 빛나고 있는 푸른 자수정. 스테판 공작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타고난 샐리였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본 메리는 당연히 샐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꼭 설명해주셔야 해요.”

    “응.”

    메리는 샐리에게서 편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방을 나섰다. 의문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메리는 언제나 그렇듯 샐리의 부탁을 들어줬다.

    ***

    “단장.”

    아무리 방계 혈통이라지만 황실의 피가 흐르면서 현 제국 최고의 기사단장인 헨리를 이토록 편하게 부르는 인물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야닉.

    풍채 좋은 덩치와 얼굴을 뒤덮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은 숲 어딘가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어도 이상할 거 없는 외모였다.

    “무슨 일이지?”

    최근 변방의 야만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헨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야닉을 맞이했다.

    “손님 왔어.”

    “손님?”

    그제야 헨리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야닉을 향했다. 호탕한 성격답게 감정 숨기기를 잘 못 하는 야닉의 떨떠름한 얼굴로부터 헨리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인지했다.

    “스테판 가에서 하녀가 하나 왔는데.”

    스테판 가라는 야닉의 말에 헨리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고 있는 기사인 헨리였지만, 현재 자신과 부하들이 이토록 크고 작은 싸움에 나서며 고생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스테판 공작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갑작스러운 공작의 죽음에 헨리 역시 놀랐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아득바득 살아남을 독기가 있는 인물이었기에 처음에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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