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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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을 하는데.

포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게다가 같이 지낸 짬밥이 몇 년인데 포도가 자신을 피한다는 걸 도하가 모를 리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부터 포도는 자신과 아예 연을 끊을 듯이 굴고 있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속이 쓰려 위장약으로 버티던 강도하는 결국 회사도 못 가고 병가를 낸 뒤 며칠을 끙끙 앓아누웠다.

‘어쩌면 좋냐.’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이런 적이 없다. 도하는 상사병을 앓으며 천장의 무늬를 세었다. 세면서…… 포도를 생각했다.

‘포도야. 포도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네가 너무 좋다고.

‘나 진짜 네가 너무 좋다. 이렇게 혼자 앓다 죽느니 차라리 너한테 차이고 싶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래서 억지로 데려간 일박 이 일 워크숍이었다.

사실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포도야. 포도야. 나는 네가 좋다.

그는 워크숍 핑계를 대고 겨울밤바다로 포도를 데려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었다. 사실대로 모든 것을 다 이실직고할 생각이었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 너를 좋아해서 이제 내가 죽겠노라고, 정말로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할 생각이었다. 거절당할 확률이 백 퍼센트인 걸 알면서도 그는 그러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다.

―거절해도 괜찮아. 거절할 거 알아. 나는…… 내가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말하는 거야.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실연당하자. 도하는 배수진을 칠 장소로 장호항을 골랐지만 세상 일이 다 그러하듯 그의 예상대로는 돌아갈 리 없는 법이었다.

워크숍 첫째날 밤.

“…….”

도하가 포도를 겨울밤바다로 데리고 가려 뒤늦게 거실에 도착했더니 거기선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포도는 떡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 포도 씨가 이렇게 술 잘 먹는 줄 몰랐잖아, 진짜.”

“자! 자! 마십시다!”

“야호!”

인생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던 것이다.

털썩!

떡만 되면 좀 좋은가?

게다가 도하가 고백을 하기도 전 포도는 술자리에서 술을 들입다 마시고선 털썩 쓰러졌다.

“포도야!”

그래, 밤바다는커녕 화장실로 가려던 듯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나 싶더니 그대로 총 맞은 고라니마냥 다리가 풀려 엎어졌던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저 멀리서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지켜보고 있던 강도하는 그녀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기 전 얼른 받아들며 외쳤다.

직원들은 술이 취한 와중에도 난리가 났다.

“어머 어떡해! 나는 주는 대로 먹기에 그냥 잘 마시는 줄 알고!”

“포도 씨! 괜찮아요? 포도 씨?”

“포도야? 포도야? 포도야?”

도하는 포도를 흔들었지만 포도는 눈을 감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기 누가 포도 씨 좀, 저기 여자들 삼 층 방에…….”

“내가 데려갈게. 먹고들 있어!”

도하는 포도를 번쩍 업어들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겨울밤바다는 얼어 죽을.

“포도야. 정신 좀 차려봐. 응?”

도하는 삼 층 계단을 오르며 포도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포도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잘 마시는 줄 알았지!’

같이 술을 마실 일이 있었어야 말이지. 도하는 포도의 주량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 * *

오빠를 따라 워크숍에 온 날 나는 온종일 생각했습니다.

‘강도하. 개새끼.’

이 오지랖 넓은 개새끼가. 진짜 안 외롭게 해준다면서, 하고 말입니다.

그래요. 생각해보면 ‘겨울밤바다’, 그 낭만적인 단어에 홀린 내 잘못이겠지요. 나는 그 단어의 마력에 이끌려 오빠를 따라갔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개인 여행이 아니라 회사 워크숍이었습니다. 내가 또 혼자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나는 그날 점심부터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어머. 포도 씨 웬일이야?”

“포도 씨, 포도 씨, 이제 정사원 되는 거야?”

그래요. 오전에 대절한 버스에 탔을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우리 옛 팀이 다 거기에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날 오전부터 정오 내내 나는 오빠를 코빼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빠가 선발대로 펜션에 먼저 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후에는 볼 수 있으려나?’

장호항에 도착한 것은 정오를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널찍한 펜션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중앙 건물에 거실을 두고 양편에 쭉 천장이 있는 복도가 있는 디귿 자 직사각형 건물은 아주 작은 시골 분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른쪽 날개 복도에 쭉 난 방이 여자 방, 반대편 왼쪽 날개 복도에 난 방이 남자 방.

“포도 씨. 내년부터 우리 회사 오는 거 맞죠?”

“난 포도 씨 좋았었는데. 내년에도 우리 팀 해요. 응?”

나는 오빠를 보는 일 없이 그중 한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할 때도 사람들은 말을 걸어주었지만 오빠는 머리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

나는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쓸쓸해졌습니다. 나는 문을 빠끔히 열고 복도 너머 창을 통해 마당에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 다른 남자 사원들과 함께 천막을 치고 있는 오빠가 보였습니다.

“…….”

그게 끝. 저녁은 같이 먹었는데 뭔 말을 걸어보려 할 때마다 오빠 곁으로 신입 직원이며 실장님들이 다가갔습니다. 나는 그냥 뒤로 밀렸어요.

‘하기야 우리 관계는 아무도 모르지.’

나는 오빠를 거기서 오빠라고 부를 수도 없었어요. 나는 호형호제 못하는 홍길동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몇 번 눈이 마주쳤고 오빠는 배시시 웃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차악…….

내 마음은 점점 물에 젖은 손수건처럼 바닥에 차악 달라붙었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에 왔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도대체 여기 왜 온 거지? 여기서 뭘 하려고?’

나는 또 착각하려고 여기 온 건가? 하는 그런 생각이…….

‘나 도대체 일박 이 일 동안 뭘 하러 온 거야?’

심지어 저녁 식사 후 술자리 시작 때도 오빠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에너지 드링크와 초록빛이 도는 양주로 예거밤이라는 것을 제조해 주었습니다.

사발로요.

후르륵!

안 그래도 술이 고프던 때였습니다. 나는 들입다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죽자. 그냥.’

어쩐지 생각이란 걸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도 못할 만큼 취해버리자.’

* * *

선발대로 워크숍 장소에 도착한 도하는 점심나절 직원들과 함께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캠프파이어를 할 장작을 쌓아 올렸다. 저녁에 술을 마시고 사람들 흥이 오르면 앞마당에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고 폭죽도 쏘아 올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캠프파이어 불빛에 정신이 팔린 동안에 포도를 데리고 겨울 밤바다로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헉.’

그런데 천막을 다 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도하는 예행연습차 바다에 나가보았다 그 추위에 약간 움찔했다. 문학 작품에 낭만의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겨울 밤바다엔 실은 낭만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곱만치도 없었다. 겨울 바다는 엄청나게 차갑고 삭막했다. 바닷바람에 모래까지 날려 뺨에 따닥따닥 우박처럼 부딪칠 정도였다.

‘어? 이거 안 되겠는데?’

도하는 바로 이때부터 자신의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는 것을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백사장을 걸으며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분위기가 잡히기는커녕 뺨을 맞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던 것이다.

‘아예 차로 데리고 나갈까? 난 술 안 마셔야겠다.’

먼저 밖에 나가보기를 잘했다 생각하며 도하는 이동 동선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바꿨다. 바다를 다 걸어 야간까지 하는 카페도 겨우 찾아냈다.

‘하, 다행이다.’

그러나 다행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도 일렀다. 펜션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포도가 무엇인가를 사발로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어?’

“포도 씨 괜찮아요?”

포도의 앞 테이블에 유난히 쌓여있는 소주와 병맥주, 에너지드링크와 양주.

‘아니 양주 누가 땄어?’

포도의 얼굴은 이미 제대로 술을 걸친 듯 불콰해져 있었다. 포도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항. 네. 어차피 취하면 올라가서 바로 자면 되는데요.”

도하는 흠칫해 근처 자리에 비집고 앉았다.

‘야!’

“포도 씨……? 너무 마시는 거 아니에요?”

‘포도야! 그만! 그만 먹어!’

그리고 손을 뻗어 사발을 뺏었다. 살짝 고인 걸 몰래 마셨는데 도대체 무엇을 섞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맛이 났다.

‘이거 사약 아냐?’

쓴맛에 도하는 인상을 썼다.

‘이걸 지금 사발 째로 마시고 있었다고?’

이제부터 그만 먹이자, 생각한 도하가 포도를 끌어 옆에 앉히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포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요?”

“…….”

도하가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화장실에 가나 싶었는데 포도는 말없이 자신과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가 비집고 앉았다.

‘어?’

“대표님, 어딜 갔다 오셨어요.”

“드세요. 드세요.”

“아…… 예.”

‘어어?’

도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술을 입술에 적시듯 홀짝홀짝 마시며 식은땀을 흘렸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잘못되고는 있는데 왜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도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야, 너 조금 이따가 나랑 밤바다 가야 한다구…….’

우리 그러기로 했잖아. 응? 눈치를 보듯 도하는 포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예 홱 하고 그를 향해 등을 돌리고 앉아버렸다.

‘어어어?’

그리고 삼십 분 뒤…….

털썩

“포도야!”

총 맞은 것처럼 포도가 쓰러진 것이다.

* * *

나는 사실 주량이라는 걸 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주량을 넘길 때까지 마실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맛이 없어서 술자리를 피하기도 했고 마실 일이 있어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그런지 고주망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술이 센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냥저냥 잘 들어가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지 원래 술이 약했던 건지.

깨달아보니 나를 들쳐 업은 오빠의 널찍한 등이 보였습니다.

우웩…… 주룩주룩

나는 그 등에 대고 토했습니다.

“와악!”

오빠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아랑곳 않고 오빠의 어깨와 등에 토했습니다. 토하면서 어쩐지 즐거웠습니다.

‘흥. 꼬시다.’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액체가 한없이 나왔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술을 주량 이상으로 먹으면 이렇게 토하는지 몰랐습니다. 나는 오빠의 바다같이 너른 등에 대고 토하면서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오빠의 새된 비명 소리가 들렸던 것입니다.

“으악! 포도야! 포도야! 괜찮아?”

‘그래, 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된 마당에 솔직해져 볼까요. 나는 사실 오늘 짝사랑을 고백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웨에에에엑.

그런데 이제 다 끝난 것입니다.

‘그래, 다 끝난 거야. 흑. 안 될 줄은 알았는데.’

술은 또 사람을 슬프게도 만드는 모양이었습니다.

‘안 될 줄은 알았는데!’

“어으어어어엉!”

토하고 나서 나는 웃던 걸 멈추고 이번에는 세상을 다 잃은 패전 장수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빠가 급하게 나를 어딘가에 눕힌 다음에 자신의 옷을 벗었습니다. 그 와중에 탄탄한 오빠의 복근이 드러났습니다.

“어흑, 우웨에에에엑!”

나는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다가도 토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의 바닥은 반들반들한 장판이었습니다.

“포도야! 아니 잠깐만.”

“어어어어어으어어엉!”

그리고 또 엉엉 울었습니다.

‘원래 끝낼 생각이었어. 끝낼 생각이긴 했는데 굳이 이렇게 더럽게 끝낼 필요는 없잖아.’

나는 이 상황이 웃기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서러워졌습니다.

‘고백은 못하고 이게 뭐야! 안 그래도 여자로는 안 보일 텐데 도대체 이게 뭐냐고.’

서럽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구마구 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떼쓰는 아이처럼요.

“흐어어어어엉!”

“왜 그래? 수건 뜨거워? 어? 그래? 미안, 미안, 응?”

미안해. 미안해. 하고 내 얼굴을 무엇인가 따뜻한 것으로 닦아주며 오빠가 말했습니다.

“미안해. 응?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으엉! 으엉! 으어엉.”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먹는가 봅니다. 나는 다 소화되지 않은 안주와 짝사랑, 슬픔과 괴로움과 미련과 뭐 그런 것들을 여기 다 토해냈습니다. 게다가 수습은 다른 사람이 해주고 있었습니다. 나의 짝사랑 상대 오빠가 말입니다. 아, 망했습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망할 작정인가 보았습니다.

‘후후. 꼬시다……. 다 오빠 잘못이야. 그래, 오빠는 나한테 미안해야 한다고.’

그런데 망했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나는 무서울 게 없어졌습니다. 어차피 내 게 될 게 아니라면 힘이나 들었음 좋겠어요. 나는 약간 복수하는 듯한 심정으로 오빠가 물이 든 세숫대야를 가져다가 내 머리를 닦아주고 또 마룻바닥을 닦고 하는 걸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또 히죽히죽 웃는데 오빠가 또 새로운 수건을 가져와 내 손을 닦아주다, 갑자기 울컥 하고 화를 냈습니다.

“이 새끼들이 도대체 애한테 뭘 먹인 거야!”

그렇습니다. 후후후후후. 이런 식으로 내 짝사랑은 끝난 것입니다.

‘다 끝났다.’

이제 진짜 다 바닥을 쳤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도야. 포도야. 괜찮니? 응?”

‘망했엉.’

오빠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추욱 늘어졌습니다.

그날 밤 나는 술병이 났습니다. 오빠가 두 팔로 안아 침대에 올려주었습니다. 곧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났습니다. 나는 배가 아파서 잠에 들었다 깼다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습니다. 진짜 너무 아팠어요.

“오빠, 오빠아…….”

아프고 외로웠어요.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때마다 오빠, 오빠 하고 불렀습니다. 너무 아프고 슬프고 또 외로워서요.

“오빠아아아아…….”

“어? 포도야. 뭐 필요해? 물 가져다줘? 목말라? 목마르니?”

오빠는 내가 부를 때마다 재깍재깍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쩐지 오빠가 상냥해서 또 슬퍼졌어요.

“사랑.”

나는 말했습니다.

“오빠, 나 사랑, 사랑이 필요해. 사랑이 필요한데……. 크흡.”

술의 마력이란 진짜. 나는 약간 미쳐 있었던 모양입니다.

“큽, 크흡, 크으응. 사랑이 필요한데 없어.”

“…….”

“여기 없어! 나 진짜 사랑이 필요해에……!”

나는 또 다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뭐 대답이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랑이 필요한들 그걸 무슨 수로 오빠에게 빼앗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떼를 쓴다 한들 내가 그럴 수 있겠어요?

“아무도 나를, 흐업, 사랑, 흐엉, 흐어어어엉…….”

나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너무 술에 취했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던지라 그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주 한참 뒤에 내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는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포도야.”

약간은 떨리는 듯한 목소리.

“내가 너 좋아해. 내가 너 진짜 좋아하는데…… 포도야.”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하고 딱딱하고 커다란 손.

“좋아해서, 정말 정말 좋아해서 내가 진짜 죽겠다 포도야. 응?”

그 말에 나는 눈을 떠서 어둠 속에서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지만, 오빠의 얼굴은 구름 뒤의 달처럼 보이질 않았습니다.

“사랑이 필요해?”

오빠가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이렇게 좋은데 너는 다른 사람이 필요해?”

“…….”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술병이 날 정도로 걔를 잊질 못하겠니?”

“…….”

“아직도 동원이가 좋니?”

그러니까 그건 나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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