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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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이 패턴 어디선가 많이 겪은 바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릴 적 오빠한테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져 턱이 깨지고 난 뒤 절대로 자전거 안 타겠다고 울고불고 한 다음 날부터 겪었던 어떤 패턴 말입니다.

―야, 나와.

오빠는 그 다음 날부터 매일 밤 우리 집 창문을 작은 돌멩이로 툭툭 친 다음 사탕과 반짝이 펜으로 꼬셔서 엄마 몰래 오빠 집 앞마당으로 불러냈습니다.

“싫어.”

“어허.”

그리고 자전거를 밤새 아주 쎄가 빠지도록 태웠습니다. 나는 내가 그때 자전거 경주에라도 나가는 줄 알았지?

“야. 넌 앞으로 삶에 장애물이 얼마나 많은데 턱 한 번 깨졌다고 자전거를 안 탄다고 그래? 이거 잘 타면 나중에 친구들이랑 멀리 놀러 갈 수도 있고 학교 통학도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데, 응? 이거 극복 못하면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장애물 극복하기 어려워지고 그러는 거야.”

“오빠? 그런데 극복이 뭐야? 패배감이 뭐야?”

“뭐 그런 거 있어. 살다보면 지겹도록 알게 될 거야. 타.”

“싫어. 아프단 말이야아아.”

“쓰읍, 내가 잡아준다니까 그러네. 오늘은 세 바퀴만 돌고 들어가자. 응?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오빠 말은 맞았습니다. 더 살다보니 자전거 타다 턱이 깨지는 일은 장난 수준이었어요. 세상에는 돌멩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장애물이 천지인데다 아무도 뒤에서 자전거 안장을 잡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오빠의 특훈으로 인해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되었고 요즘도 가끔 한강으로 라이딩을 나가곤 했어요.

생각해보니 나 공부 가르칠 때도 비슷했고요.

‘아무튼 오지랖 장난 없어.’

“야, 응? 여기 있다가 나 보고 가.”

나는 계속해서 나를 꼬드기려 드는 오빠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가르치는 거 적성에 잘 맞나봐. 차라리 학원 선생님을 하지.’

강남에서 데뷔했으면 오빠는 서울대로 학생들 여럿 입성시키는 전국구 스타 강사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싫어.”

그러나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습니다. 나는 집에 가 자고 싶었습니다.

“야아.”

오빠는 내 단호한 태도에 시무룩해서 중얼거렸습니다.

“왜, 나는 너 좋으라고 그러는 건데 진짜.”

* * *

나는 니가 내 친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지. 야, 내가 소싯적에 너 기저귀까지 갈아줬는데, 어?

포도야. 나는 너 좋으라고 하는 거지. 너 잘되라고 말이야.

내가 언제 너 잘못되게 한 적 있어?

너 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알면서 왜 그래?

‘나는 몰라도 오빠는 이런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자다가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나를 꼬드기는 데 실패한 오빠의 설득 퍼레이드를 떠올렸습니다. 하늘과 바다처럼 넓은 오빠의 오지랖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한테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나 가르치는 데 열심인 걸 보니 오빠는 정말로 박애주의자인 모양이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한테 친동생 같다며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내가 진짜 자기 친동생도 아닌데. 아무튼 오지랖이 장난 없어요.’

나니까 오해 안 하지 다른 사람이라면, 특히 여자라면 단단히 착각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나니까 오해 안…… 오해…… 오해.’

그 순간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이불을 뻥뻥 차고 싶어졌습니다.

‘아무튼 다 바람둥이 같애.’

더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그래, 자기가 잘하니까 막 연애 코치도 해주겠다고 그러는 거지. 진짜.’

이불을 발로 차는 대신 나는 이불로 푹 하고 머리를 가렸습니다.

몇 년 전 오빠에게 과외를 받았을 때, 나는 오빠에게 과외를 받는 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학교의 인기인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요.

“너 일요일에 서점에 같이 왔던 남자 누구야? 애인?”

“대박, 너 도하 오빠와 사귀어?”

“무슨 소리야. 그냥 친한 오빠라니까.”

동네는 참 좁고, 오빠는 우리 동네 만인의 오빠였으니까요. 그런데 과외를 하는 일 년 나는 오빠를 내 과외 선생님으로 독점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쭐우쭐

나는 나도 모르게 우쭐우쭐거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빠는 나와 좋아하는 것도 참 잘 맞았어요. 내가 성적이 오르면 오빠는 상을 준다며 데이트하는 것처럼 전시회니 서울 놀이공원이니 주말에 이리 데리고 다니고 저리 데리고 다니기도 했어요. 착각할 만했습니다.

‘맞나봐!’

착각은 무슨, 나는 수능이 끝난 날 코끝이 빨갛게 얼어 나를 기다리는 오빠를 봤을 때 확신마저 했습니다.

‘나 오빠를 좋아하나봐! 그리고 오빠는 나를……!’

그렇게 김칫국을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김치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왜 나한테 고백을 안 하지?’

오빠의 마음을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그때, 수능 점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때, 나는 오빠가 아무 제스처도 취하지 않자 오빠를 대놓고 찔러보았습니다.

“오빠 나 있지. 나 오늘 남자한테 고백받았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내 방 바닥에 앉아서 두꺼운 책들을 잔뜩 펼쳐놓고 내가 원서를 넣을 학교를 찾아보고 있던 오빠는 내 말에 책상 의자에 앉은 나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습니다.

“누구한테?”

“옆 학교 남자애한테.”

“잘생겼어?”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배배 꼬았습니다.

“음, 으응. 잘생긴 것도 같고 또 귀여운 것도 같고.”

“그럼 사귀어 보든가.”

그런데 오빠는 심드렁하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수그렸습니다.

“수능도 끝났겠다 너도 연애해야지.”

펄럭펄럭, 오빠가 큰 소리를 내며 대학 입학 관련 책을 펄럭였습니다.

와장창!

환상은 그날로 깨졌습니다.

“…….”

나는 말도 못할 정도로 충격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내가, 내가 도끼병이 있구나!’

‘그때인가 봐.’

생각해보니 그때 스타트를 잘못 끊었던가 봐요. 나는 내가 도끼병이 있는 줄 그때 알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짝사랑을 시작해도, 또 그 짝사랑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 내 착각일 것만 같아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어라? 나…… 왜 눈에서 땀이 나지?’

그래서 이때까지 솔로인 건가? 나는 난데없이 내 짝사랑의 기원을 깨달아 버렸습니다.

* * *

도하는 옛날 옛적 이야기까지 꺼내며 정말 온 힘을 다해 집에 데려다주겠다 꼬드겼지만 포도는 팽 하니 먼저 도망갔다.

―웃기지 마. 나 집에 갈 거야.

‘어차피 일 할 거면 여기서 하면 좀 좋아. 그럼 내가 집에 데려다 줄 텐데.’

동원이 일 말고는 난 메리트가 없나 하는 생각에 도하는 울적해졌다. 요즘 그의 정신 건강은 포도의 말 한 마디에 핑퐁 치듯 이리로 왔다 저리로 갔다 했다.

‘내가 남자로는 안 보이나? 역시 너무 오랫동안 봐서?’

연애는 타이밍인데 이미 한 번 놓쳤다. 자충수도 놓았다. 장기로 치자면 외통수에 몰린 상황이었다.

‘큽! 그렇게 동원이가 좋아?’

그는 오늘도 베개를 머리에 푹 하고 묻었다. 이젠 베개가 해질 지경이었다.

동원은 뭘 어쩌고 있을까. 짝사랑은 잘되어 가고 있을까. 묻진 않았지만 요즘 들어 동원은 참새 방앗간 들르듯 변호사 사무실로 들락거렸다. 그놈은 그놈이고 나는 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도하는 동원을 강하게 의식했다.

‘나는 혹시 내 욕심 때문에 포도에게 나쁜 짓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을 누른 돌덩이는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자기 사랑 하자고 드라마 속 악역처럼 내가 포도에게 다가온 사랑을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자기변명도 소용이 없다.

‘동원이는 애초에 포도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귀면 내가 공주님처럼 정말 잘해줄 테고…… 그럴 건데.’

깊은 밤.

“어흐…….”

베개 밑에서 신음이 깊어졌다. 강도하는 오늘도 제시간엔 자지 못할 모양이었다.

* * *

그래, 오빠를 짝사랑한 때도 있었지만 그때가 언제인데요. 원래 소싯적에 다 동네 오빠 좋아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나는 그런저런 옛 추억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너무 잠이 안 와서 중간엔 일어나서 작업도 했습니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는데 커피를 연거푸 들이마신 것처럼 가슴이 술렁거렸어요.

‘부정맥인가?’

나는 가슴에 손을 대었습니다. 심장이 전보다 빠르게 또 불규칙하게 뛰는 것도 같았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아침은 밝았습니다.

‘얼굴 푸석해진 것…… 아닌가? 왜 이렇게 얼굴이 매끈매끈해?’

나는 화장대에 앉아 스킨과 로션을 듬뿍 바르고 화장을 시작했습니다. 요즘 나는 잘 꾸몄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실장님이 나 있는 동안 회사에 들를지. 나는 오빠가 준 머리띠에 오빠가 준 귀걸이에 오빠가 준 옷을 입고 또 구두를 신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포도야.”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오빠와 마주쳤습니다. 감색 스웨터에 베이지 색깔의 면바지, 팔목만큼이나 굵직한 롤렉스시계 하나만 멋들어지게 찬 오빠의 눈 밑에는 요즘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일이 힘든가봐요.

“어이구, 우리 포도 오늘도 예쁘네.”

오빠가 날 빤히 보더니 푸스스 웃고는 내가 공들여 만진 머리를 그 커다란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습니다. 여전히 동네 꼬맹이를 귀여워하듯 말입니다.

“…….”

“이게 도가 지나치게 이뻐지네, 점점 예뻐져서 어떡해?”

오빠는 장난스럽게 말하곤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사라졌습니다.

꼴깍.

그런데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오빠가…… 저렇게 잘생겼었나?’

게다가 심지어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놀란 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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