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 (14/28)
  • 14

    “나 돈 있어!”

    나는 외쳤습니다. 양손에 쇼핑백 네 개를 들고요.

    “나도 있다고!”

    “알아.”

    백화점 매장 옷걸이에서 손으로 드르륵 옷을 일별하며 오빠가 말했습니다.

    “누가 뭐래? 그리고 니가 많음 얼마나 많아? 나보다 많아?”

    내게 입혀보지도 않은 옷이 이미 쇼핑백 네 개였습니다. 오빠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 돈 있으면 뭐 하는데. 너 꾸미는 데는 하나도 안 쓰면서. 너 돈 죽으면 관짝에 넣어갈 거야?”

    “…….”

    나는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옷 한 벌에 5만 원이 넘는 건 좀…….”

    “지금 너 쓰는 타블렛 값 얼마야.”

    “이백팔십오.”

    “언제 샀어?”

    “저번 주에.”

    “…….”

    오빠가 눈을 가늘게 뜨고 거 보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전문가용 타블렛 중엔 싼 거야! 그리고 쓰던 것보다 무게도 가볍고 손목에 피로감도 덜하고 부담 없는 가격에 실용성 사용도도 높다고!”

    “이것도 마찬가지야. 비싼 옷이 괜히 비싼 줄 알아? 너 입고 다니는 그거보다 이걸 입으면 열 배가 아니라 백배는 더 예뻐 보인다고. 이게 너한테 어울려. 완벽해. 퍼펙트. 이걸로 주세요. 이것도요.”

    오빠가 또 옷걸이에서 옷을 꺼냈습니다.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던 점원이 또 옷을 받아들었습니다.

    “자. 이건 너 지금 입어. 그리고 화장품 고르러 가자.”

    얼결에 옷을 받아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품? 그리고 이거 나한테 안 맞아. 너무 작다고.”

    “안 맞긴, 네가 너무 헐렁하게 입는 거야. 이거 맞아. 내가 알아. 딱 보면 견적 나와.”

    “어머, 남자 친구분이 참 세심하세요.”

    점원이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나는 오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알몸을 보기라도 했나요? 어떻게 본 것만으로도 치수를 알 수가 있나요? 나는 옷과 함께 드레스 룸으로 밀어 넣어졌습니다.

    그런데 딱, 옷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사이즈인데다 생각도 안 해본 디자인의 옷이어서, 거울 앞에 선 나는 어쩐지 나 같지 않았습니다.

    “맞지?”

    “아니. 맞긴 한데 좀 그래. 이건 좀.”

    “이뻐. 이뻐. 네가 최고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생각보다 편했어요. 예쁘고요.

    내가 든 쇼핑백 네 개. 오빠가 든 것 네 개. 나는 오빠의 뒤를 따라가며 오빠가 꽤 대충 집어넣은 듯한 옷들을 확인했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할 것만 같은 샤랄라한 원피스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장갑?’

    블라우스에 셔츠에 바지도 있고 코트도 있고 지금껏 내가 입지 않은 종류의 여러 가지 옷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오빠가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쑥 들어간 곳은 화장품 스튜디오였습니다.

    “여기 앉아봐.”

    지금까진 얼씬도 않던 곳에 오빠가 나를 앉혔습니다. 그곳은 메이크업 부스였습니다.

    네모난 거울과 테두리에 박힌 반짝이는 LED 조명.

    “…….”

    나는 자리에 앉아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거울 속 딱 보아도 완벽한 화장으로 무장되어 있는 언니가 상냥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빠는 말했습니다.

    “예, 오전에 전화드렸었는데요. 베이직 메이크업으로요.”

    거울 속 언니가 피부 상태 조견표를 꺼내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혹시 피부 프로파일 중에 특별히 케어할 만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이 중에서 한번 골라 보세요. 노화라든가 입가의 주름, 혹은 전체적인 수분 문제라든가.”

    “예?”

    그런 것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피부 프로파일은 무엇인가요? 나는 조견표의 도표들을 바라보다 도움을 구하듯 오빠를 바라보았습니다.

    ‘날 여기서 꺼내 줘!’

    오빠는 내 눈을 외면했습니다.

    “일단은 보습 라인으로 해주시고요. 아. 저 패치도 부탁합니다.”

    “화장은 지우고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무어라 할 새도 없이 화장이 씻기고 얼굴에 다시 무엇인가 덕지덕지 발렸습니다.

    “최대한 촉촉해 보이는 피부로 부탁합니다. 메이크업 베이스는 이거보다 한 톤 밝게요. 아이 메이크업은 전체적으로 핑크로 부탁드리고 립스틱은 섀도 컬러에 맞게 이 색과 이 색을 써보고 싶은데…….”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니 이미 사전 예약과 상담이 진행되었나 봅니다. 나 모르게요.

    “아니 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김포도 지금 아니면 기회 없다.”

    오빠는 말 몇 마디로 내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생각해 봐. 너 혼자서 여기 올 수 있겠어?”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요. 한 번쯤은 해봐도 괜찮을 성싶었어요. 하지만 그동안은 용기는 물론 할 생각도 기회도 없어서……. 나는 눈을 질끈 하고 감았습니다.

    “눈 펴. 눈 펴야 아티스트분이 화장을 하지.”

    고문받니? 하고 오빠가 말했습니다.

    아티스트님은 내 얼굴을 메이크업 베이스와 파운데이션으로 꼼꼼하게 채워나갔습니다. 순식간에 내 얼굴은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찹쌀떡처럼 되었습니다.

    “캔버스 작업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먼저 어떤 색조화장이든 발색이 잘 되도록 얼굴을 채워나간 후에…….”

    ‘으음?’

    그리고 천천히 설명을 하며 눈썹부터 화장을 시작했습니다. 화장을 하는 동안 오빠는 팔짱을 낀 채 거울 뒤에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관객을 등 뒤에 두고 있자니 직원분의 설명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등에 식은땀이 다 났습니다.

    체감상 몇십 분 후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가 완성되었습니다. 오빠 손에는 또 쇼핑백이 들렸습니다.

    “가자.”

    ‘그만해.’

    “어딜?”

    “머리하러. 빨리. 문 닫기 전에 가야 돼.”

    오빠가 말했습니다. 이 다음이 더 있었단 말이야? 이미 녹초가 된 나는 단호하게 이 바비인형 놀이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싫어.”

    “어허.”

    * * *

    “싫어어어어! 집에 갈래에에에!”

    나는 금방에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듯 떼를 썼습니다.

    “커트랑 드라이만 해! 드라이만!”

    오빠가 질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렇게 예쁜데 왜! 머리도 하면 좋잖아! 오빠가 해준다는데!”

    완구놀이 마트에서 자주 일어나는 이 상황이 백화점 일 층 매장에서 연출되었습니다.

    고집 중 최고 고집이 강 씨 고집이라더니.

    “이것 봐. 예쁘잖아!”

    나는 결국 돈을 펑펑 쓰고야 말겠다는 오빠의 고집에 져 헤어숍에서 머리까지 마쳤습니다. 나오자 백화점 마감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포도 이렇게 꾸미니까 얼마나 예뻐?”

    오빠는 좋아 죽겠다는 듯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그치?”

    오빠가 동의를 구하듯 물었습니다.

    “으으응.”

    당연하죠. 그 무엇도 이 정도로 꾸미면 예뻐 보일 것이었습니다. 나는 흘끔흘끔 불이 하나둘 꺼져 유리처럼 변한 백화점 매장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안 보는 척하면서요.

    ‘어머.’

    싫은 척하기는 했지만 변신 수준이 마법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까 무도회에 가는 신데렐라에게 요정이 걸어준 마법 말입니다. 이 모습도 집에 가서 씻기만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겠지요.

    “아까 메이크업 받은 거 어떻게 하는지 생각이 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거 진짜 마법 같던데?’

    그래도 그 신기루는 아무려나 어쨌든 마법처럼 내 기분을 좋게 해주었어요.

    그날 저녁 나는 기적처럼 예쁜 옷과 얼굴을 하고 오빠의 차를 탔습니다. 오빠의 차 뒷좌석에는 쇼핑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어쩐지 차가 좀 느리게 갔으면 싶었어요. 이렇게 예쁘게 꾸몄는데 집으로 돌아가긴 싫었거든요.

    “이제 밥 먹고 차 마실까?”

    “지금?”

    “그래. 나 배고파. 그리고 예약해 둔 데도 있어.”

    오빠가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습니다.

    그날 나는 풀코스로 대접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와중에도 배가 빵빵했어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 너무 많이 쓴 거 아냐?”

    저녁을 사주고 싶었는데 오빠는 그것도 못하게 했어요. 쇼핑백들을 주섬주섬 끌어안고 내리려 하는데 오빠가 어디선가 또 작은 종이가방을 내밀었습니다.

    “자.”

    “뭐야?”

    “뭐긴, 너 머리하는 동안 샀어.”

    열어보니 안에는 물색 뮬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 발목 약해서 구두 신고 많이 못 걷잖아. 이건 캐주얼에도 정장에도 어울리니까 신고 다녀. 바닥도 푹신해서 너한테는 이게 딱이야.”

    “이건 또 얼마인데?”

    딱 봐도 비싸 보였습니다. 오빠가 혀를 찼습니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지. 무드 없기는. 누가 선물 줄 때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야. 남자 친구한테도 그럴 거야?”

    “고마워.”

    나는 얼굴이 다 붉어져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차에서 내리려 했습니다.

    달칵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오빠가 운전석에서 차 문을 잠갔습니다.

    ‘음?’

    “포도야.”

    등 뒤에서 오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나는 뒤를 돌아봤습니다.

    “우리 포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그런 날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던 오빠가 갑자기 왁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치 군대 구호를 외치듯 말입니다.

    “…….”

    그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뜬금없고도 어이없는 내용의 외침이었습니다. 오빠의 외침은 갈 곳 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오빠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따라해 봐.”

    오빠가 말했습니다.

    “뭘?”

    “이 세상에서 김포도가 제일 예쁘다! 하고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왜? 미쳤어?”

    “왜냐니?”

    오빠가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습니다.

    “네가 먼저 널 예뻐해야지 남들이 널 예뻐해 주지? 자, 따라해 봐. 어서.”

    저기요? 미쳤습니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격렬하게 거부했습니다.

    “내가 집에 가서 따로 말할게. 문 열어줘.”

    “싫어. 그럼 안 보내 줄 거야.”

    오빠는 장난을 칠 때 늘 그러듯 비죽 웃었습니다.

    “안 하면 여기서 안 내보내 줄 거야.”

    백미러를 내 얼굴이 보이게 돌린 오빠가 말했습니다.

    “자. 크게, 어서.”

    * * *

    “이 세상에서!”

    그리하여 나는 결국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김포도가 제일 예쁘다!”

    “배에 힘주고 더 크게!”

    이 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요.

    “그렇지! 한 번 더!”

    “이 세상에서 김포도가!”

    ‘미친놈! 이 미친놈아악!’

    그날 밤, 오빠 차 안에서 나의 목소리는 어쩐지 처량 맞게 울려 퍼졌습니다. 어쩐지 뭔가 잘 나간다 했어요. 정말이지 미친 오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