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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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시 시간을 되돌려 난데없이 강도하가 이동원에게 김포도를 좋아한다 선언한 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김포도 씨……”

직장 상사에게 뜬금없는 고백을 들은 이 실장은 머리칼을 쓸어 올린 뒤 천천히 팔짱을 꼈다.

“……가 아니라 딴 사람 좋아해.”

“누구?”

그 말이 강도하로서는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었다. 도하의 눈이 반짝 빛났다. 동원이 빙긋 웃었다.

“강도라.”

순간 그 고유명사가 강도하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들렸다.

“뭐?”

잘못 알아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회사를 정리할 때도 두말할 것 없이 따라오기도 했고…….

‘설마?’

도하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저 네 마음을, 아니 네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중하지만 저, 나는 알다시피 김포도를…….”

“아니 너 말고.”

동원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너 말고 네 누나.”

그렇다. 동원의 짝사랑 상대는 강도하의 누나 강도라였다.

“뭐?”

상황파악을 한 도하는 한층 더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누구?”

“강도라 네 누나 말이야.”

“야, 왜? 아니 왜에에?”

도하가 진심으로 물었다.

“아니 도대체 왜에 그 강또라이를?”

동원이 눈을 치떴다.

“너 지금 누구더러 강또라이래?”

“허? 강또라이를 강또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인가?”

강도라, 강도하가 ‘강또라이’라고 부르는 하나뿐인 혈육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네가 우리 누나랑 언제 봤다고?”

그렇다. 그에게는 두 살 터울 비혼주의자인 국제변호사 누나가 한 명 있었다. 머리만 기른 강도하, 예일 로스쿨 졸업, 키 178cm에 예전에 여자 럭비 선수까지 했던 잘난 누나 말이다.

‘왜 하고많은 여자 중에 그런……?’

그렇지만 강도하에게는 수많은 남매 사이가 그렇듯 그저 미친년이 아닐 수 없었다. 추억이라곤 죽기 직전까지 대들다 맞은 기억밖에 없다. 도하는 어이가 없어 중간부터 생각이 멈췄다.

“그래, 뭐, 어, 거…… 취향 참.”

하는 말과는 달리 도하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팔짱을 낀 동원은 쓴웃음을 흘렸다.

“너는 네 누나니까 도라 씨 진가를 모르겠지. 얼마나 대단한 여성인데. 도라 씨한테 우리 전원 모두 고백했다 줄줄이 차였거든?”

“우리?”

“뉴욕 때 우리 회사 창립멤버 말이야. 광고 표절 문제로 소송 당했을 때 도와주셨잖아? 그때 우리 완전히 반해서…….”

“뭐어?”

‘그때가 언제야? 아니 그걸 지금까지 나한테만 말 안 한 거야? 어?’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이 엄청난 소외감, 도하는 난데없는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해서 뭘 어쩌겠는가? 동원이 비행기 타고 날아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만날 기약도 없으면서도, 혹시나 지금은 한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그의 누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이쪽도 단단히 미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 뭐, 그럼 잘해 보시든지.”

하지만 강도하는 그녀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꼴을 본 일이 없었다. 애초에 그럴 정도로 친하지 않다. 강도라가 남자를 좋아하기는 할까? 그 야망에 불타는 여전사가? 도하는 남 일이라고 생각하며 심드렁해졌다.

“잘해 보다니?”

그런데 동원이 되물었다.

“왜 남의 일인 것처럼 대답하고 있어?”

“뭘?”

“도와야지?”

“뭘?”

동원이 손으로 번갈아가며 도하와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네가, 내 사랑을.”

순간 턱, 하고 도하는 숨이 막혔다. 그 맷돌 손잡이 그거 있잖은가. 아주 어이가 없었다.

“내가? 강도라랑 니 사랑을? 왜? 왜에에?”

도하가 말하고 나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동원은 빤히 도하를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비죽비죽 웃기 시작했다. 순간 도하는 깨달았다. 동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말이지. 네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포도 씨가 이 나를…….”

“매형!”

도하가 외쳤다.

“매형! 매형! 아이고,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매형!”

이렇게 그는 자신의 앞길도 제대로 못 걸으면서 남의 연애 뒤치다꺼리를 해주게 되었던 것이다. 포도와 동원, 그것도 둘씩이나.

* * *

“포도야. 연애는 말이야.”

꽤 이른 시간에 나를 데리러 온 오빠는 도심의 백화점에 나를 내려놓더니 커피숍에 앉아 일장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사냥에 가깝다 생각하면 돼.”

“오빠, 일 안 바빠……?”

“바빠. 바쁜데 너 연애 도와준다고 지금 여기 나와 있잖냐.”

쪼오오오옥.

오빠는 내 말에 목이 다 탄다는 듯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빨아 마셨습니다. 큰 유리컵이었는데 순식간에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어요.

“그렇구나. 시간 내줘서 고마워.”

“그래. 아니 이게 아니고 연애는 사냥이라고.”

남은 커피를 얼음째로 한입에 마저 털어놓고 오빠는 자신의 연애철학을 설파했습니다.

“네가 만약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이라고 생각을 해 보자.”

“짐승?”

“그래, 야. 여기 이 컵이 동원이, 그러니까 네 사냥감이라고 생각을 해 보는 거야. 이게 바로 움직이는 사냥감이야.”

탁.

오빠가 빈 컵을 내 눈앞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습니다.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빈 잔이었습니다.

“잘 노려봐봐. 이걸 네가 딱 낚아채려면 네가 일단 뭘 해야 하겠어?”

‘뭘 어떻게 해야겠어? 손을 뻗어야겠지.’

나는 커피컵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고백?”

“그게 아니지!”

탕!

오빠가 손바닥으로 탕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습니다. 순간 커피숍이 고요해졌습니다.

“네가 지금 동원이한테 고백한다고 해서 동원이를 잡을 수 있겄어? 손을 뻗기 전에 먼저 너를 봐야지. 너를! 포식자가 사냥감을 사냥하려면 먼저 자신이 그 사냥감을 잡을 만한 사이즈가 되는지 알아봐야 하는 거야? 어? 고양이가 물소를 사냥할 수 있겠어? 사마귀가 쥐를 사냥할 수 있겠어?”

오빠의 말에 나는 나의 ‘사이즈’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즈가 그 사이즈가 아닌데도 어쩐지 나의 가슴을 내려다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나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동원 씨를 떠올렸고, 어쩐지 또 간이 쭈그러드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사마귀 같고 그는 잘빠진 흑표범 같고…….

‘지금 이거 주제 파악하라는 뜻인가?’

“오빠, 그럼 나 포기할래…….”

“아니지!”

쾅.

오빠가 또 테이블을 내리쳤습니다. 또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습니다. 여기는 노량진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빠가 제발 카리스마 넘치는 학원 강사의 퍼포먼스 같은 짓은 그만두어 주었으면 싶었습니다.

“분에 넘친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부터라도 네 사이즈를 늘릴 생각을 해야지! 어! 사람이 왜 발밑에 깔창을 끼고 가슴에 뽕을 넣겠어? 이건 마치 짐승이 발톱을 가는…….”

“오빠!”

‘스톱! 진짜 별말을 다 해!’

나는 얼굴이 빨개져 오빠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턱대고 상대방에게 고백을 하기에 앞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보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가꾸고 또 예행연습을 충분히 해봐야 한다는 말이지. 원래 고양이가 나무에 자기 발톱을 갈고 쥐를 갖고 노는 거 있잖아? 그게 노는 게 아니라 실은 다 연습하는 거야. 사냥 연습.”

실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깨달아보면 오빠의 장황한 말을 나는 홀린 듯이 듣고 있었습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다년간 쌓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인 것일까요?

“오빠는 사냥 많이 해봤나 보다.”

“어? 아니! 아니이~?!”

내가 묻자 오빠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습니다.

“내가? 아니지!”

오빠가 빠르게 고개를 털었습니다.

“나 안 해봤어! 일하느라 그렇게 바빴는데 어? 내가 무슨? 내가 연애해볼 시간이 어디 있어? 뭐 어릴 때 잠깐, 다 그거 어린애들 장난이지. 장난.”

가로로 저어지는 머리뿐만 아니라 말도 모터를 단 듯이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난 있잖아…….”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개미가 기어갈 때 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난 안 해 봤어.”

“어?”

“오빠 난 사냥 그거 안 해 봤다고.”

“…….”

“나 사실 모쏠이야.”

점점 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차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손으로 부채질해 보았지만 촉촉해지는 눈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크흡, 사이즈, 사이즈는커녕 난 이게 첫 사냥이라구…….”

맞아요. 제가 고양이나 사마귀였다면 전 이미 굶어죽었을 겁니다. 쥐나 나비 한 마리 못 잡구요. 사냥이라니, 왜 다 같이 평화롭게 살면 안 되는 걸까요? 나 쥐 잡는 거 되게 못하고 싫어…….

“포도야. 아니 내 말은 너 이러라는 게 아니라…….”

내 태도에 오빠는 당황했습니다.

“그건 네가 어리고 아직 너는 너무 안 꾸며서 그렇지. 그런데 너 정말 한 번도……. 정말로?”

오빠가 내게 물었습니다.

“꾸민 거야!”

이번엔 내가 외쳤습니다.

“이것도 꾸민 거야! 치마잖아! 이거! 이십칠 년 평생에 제일 많이 꾸민 거라고!”

나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단 세 벌뿐인 원피스 중에서도 가장 샤랄라한 것으로 말입니다. 신은 건 나이키 운동화이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원피스를!

“야! 사람들이 들어!”

이번에는 오빠가 내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그, 살다보면 다 그런 거지. 바쁘면 그럴 수 있어. 그게 흠은 아니야. 그런데 왜? 누가 너 좋아한다고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

“…….”

“진짜로?”

나는 고개를 푹 수그렸습니다. 아예 없던 건 아니고 있긴 있었지만 그게 제대로 성사된 적은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알아서 눈치 채고 그만 물을 법도 한데 오빠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몇 번이고 연거푸 되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여기 남자들 눈깔이 다 삐었나. 진짜로 이렇게 예쁜데 아니 도대체 왜?”

“오빠 눈에나 그렇지.”

‘그만 물어. 그만 물으라고 진짜!’

“그런데 내 눈엔 진짜 너 예쁘거든. 빈말이 아니라.”

“그만해. 더 하면 나 화내. 영양가 없는 빈말 그만하라고!”

내 말을 들은 오빠는 푸욱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왜인지 뼈가 녹는 것만 같은 깊고 깊은 한숨이었습니다. 오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가자.”

“어딜?”

오빠가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디냐니? 너 사이즈 늘리러 말이지.”

“안 그래도 내가 한번 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히려 그랬어!”

동네 오빠 좋다는 게 뭐야? 오빠가 내 손목을 잡으며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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