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헤헤헤헤헤.
어쩐지 내가 짝사랑을 한다는 것을 들킨 날, 나는 차 안에 연기처럼 들이찬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많이 웃었지만 오빠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전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다 약간은 기가 차다는 듯이 하, 하고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습니다.
“저기, 그게 그렇게 티가 났어?”
웃을 상황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물었습니다.
“내가 오빠 회사 물 흐리는 건 아니지?”
오빠가 그 말에 놀란 듯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냐. 절대 아냐. 그러니까 회사 그만둘 생각하지 마. 알았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오빠의 이마에 떠오른 실핏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바로 앞 차창만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왜 좋아?”
그러더니 핸들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내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 네가 걔에 대해 뭘 안다고?”
“…….”
그 물음에 나는 시무룩해져 버렸습니다.
“글쎄…… 나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모르겠어.”
“…….”
“이유가 없어. 처음에는 상냥하게 대해줘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건가 봐.”
“…….”
“이상하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닌데, 계기라고 할 게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그것도 아리송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사소한 일을 좋아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사소한 계기들이 불이 꺼졌다고 믿은 내 마음에 스위치를 켰는지, 오빠, 난 잘 모르겠어.”
나도 많이 답답했나 봐요. 나는 오빠한테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내 꿈을 고백했을 때처럼요.
그리고 오빠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묵묵하게 들어주었습니다. 나는 혼자서 줄줄이 내 심경을 털어놓다 그만 부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해.”
“뭐가.”
“괜히 이런 일로 오빠 신경 쓰이게 해서.”
오빠는 그 말에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습니다.
“네가 좋다는데 뭘 어떡해? 야, 내가 언제 너 좋다는 거 안 도와준 적 있었어?”
그리고 손을 뻗어 내 머리칼을 헝클어뜨렸습니다.
“가봐. 늦었다.”
그제야 시간을 확인해보니 진짜 늦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차창이 내려갔습니다.
“문단속 꼭 하고. 혼자 사는 티 내지 말고.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 혼자 산 지가 몇 년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뭘 연애 코치를 해준대.’
전부터 생각했지만 오지랖 장난 아니라니까.
* * *
아무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에서부터 헐떡거렸습니다.
‘어떻게 안 거지? 정말 그렇게 티가 나나?’
정말 오빠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을까요? 내가 회사 안에서 마음이 드러날 만한 행동을 했던 것일까요? 나는 회사 안에선 그냥 얌전하고 말 없는 ‘아르바이트생 포도 씨’일 뿐이었는데요.
짝사랑을 한다고 해도 동네방네 소문낼 생각도 없었고 기름을 더 넣지 않은 등잔불이 그러하듯 잠깐 넘실거리다 사그라질 감정의 등고를 똑바로 바라볼 작정이었는데, 처음엔 사내연애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던 오빠가 갑자기 내 사랑을 도와준다고 말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 위로 손을 대고 헐떡였습니다.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튼 오지랖도 넒어.’
생각해보면 한국 와서는 이렇게 일자리도 알선해 주고(야근이 너무 잦긴 하지만), 또 고등학생 때는 내 꿈에 확신도 갖게 해주었습니다(그래도 많이 방황했지만). 그래, 나도 이 길이 맞나 싶어 갈팡질팡했을 때 오빠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능 성적도 정말 많이 올랐어요. 엄마가 집 앞에다 현수막을 걸어준다고 할 정도로요.
‘저렇게 착해서 어찌 산대.’
아주 나중에 나는 오빠가 과외를 해주던 때 내게 상품으로 줬던 선물들이 하나같이 과외비를 상회할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구형이라 쓰지 않는다던 컴퓨터도 다 신형이었어요.
오빠는 나한테 필요한 걸 다 주고 훌쩍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내게는 알리지도 않고요.
‘착했었지. 사람 착각할 정도로.’
나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는 옛날 일들을 한밤중 별 헤아리듯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오빠가 나한테도 아무 말 없이 유학 갔을 적에 나는 뒤늦게 알고 많이 울었어요. 일 년 동안 과외를 받아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어서, 마치 봉숭아 꽃물 들듯 나도 모르게 정이 정말 들었거든요. 대학에 가면 오빠가 나를 어린애 보듯 안 하겠지 싶었고, 또 놀 시간도 많을 줄로만 알았는데…….
‘저 상냥함을 정말 좋아했었지.’
사실 나는 어렸을 적에 오빠를 남몰래 좋아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마 동경 비슷한 감정이었겠지만, 공부도 잘하고 뭐 얼굴도 그럭저럭 잘생겼고 앞에선 틱틱거리지만 나한테 잘해주고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착각도 좀 많이 했어요. 어머, 저 오빠가 나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고요.
‘음, 그때 되게 부끄러웠지. 혼자 김칫국 들입다 마시고.’
사실 다 과외 선생님, 동네 오빠 한 번 좋아한 경험 있잖아요. 그렇죠?
‘눈치 빠른 사람이니까 어쩌면 내 마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알았어도 모른 척했을 거야. 오빠 눈에 나는 완전 애였을 테니까.’
나는 얇은 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습니다.
‘부끄럽다. 진짜. 그런데 그나저나 연애 과외를 어떻게 해준다는 거야? 아, 모르겠다, 자야지.’
어쨌든 사람에게 직접 털어놓으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보다 백배는 후련했습니다.
‘그래, 후련하다.’
그날 나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짹. 짹. 짹.
어찌나 잘 잤는지 눈을 감았다 뜨니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은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늦잠을 잤어도 되었을 텐데 나는 무의식중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확인했습니다.
[일어나면 전화해 곧장]
오빠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나는 세수를 하지도 않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
오빠는 곧장 전화를 받았습니다.
“깼냐?”
“응……. 왜? 뭐 뻑났어?”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왜?”
“왜긴, 만나자고 그러지.”
내 시간을 이미 돈 주고 산 듯이 오빠가 말했습니다.
“만나서 쇼핑 좀 하자.”
“응? 무슨?”
“그건 일단 만나서 얘기하고 나 지금 미팅 들어간다. 알겠지? 집으로 갈게.”
뚝.
전화는 끊겼습니다.
……꿈인가?
나는 전화가 끊기고 나서도 한참이나 전화기를 바라보았습니다.